p259  

 가장 흔한 이주의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이 이주를 촉진하는 주요 동력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자본은 풍부해지는데, 그에 따른 노동 공급은 부족해진다. 출산율이 낮아질 뿐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력은 허드렛일하기를 거부한다. 저임금 분야에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노동의 가격이 올라가고, 생산성이 낮은 분야 또한 주변의 생산성이 높은 분야를 따라 노동의 가격이 올라간다. 이러한 사회나 나라에서는 값싼 노동력이 합법과 불법의 통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다. 같은 노동을 하고 몇 배, 몇십 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데 왜 이주를 마다하겠는가.

 노동은 풍부한데 자본이 부족해 일자리가 없는 곳에서, 한국과 같이 필요노동이 점점 부족해지는 나라로 노동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이러한 자본을 찾아 나서는 노동의 행렬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p268

...두 문화권 모두 가족/ 친족을 중심으로 한 끈끈하고 배타적 규준ㅇㄹ 가진 사회들이다. 멤버심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높고, 일단 멤버십을 획득하고 나면(대개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그것을 놓아버리기에는 가족과 친족 혹은 종교 공동체가 만들어놓은 의무와 혜택의 그물망이 너무 촘촘하다. 동아시아는 그것이 '논바닥'의 협업 공동체에서 기원하고, 이슬람은 종교 공동체에서 기원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p289

...역사적으로도 대공황과 같은 경제적 충격이 엄습했을 때 이러한 분리의 힘들이 강해졌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으로 무역 시장이 통합되고 금융화 및 외국의 직접투자가 증대되며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로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되면, 이 모든 현상은 이러한 분리의 힘(포퓰리즘의 발흥으로 확인되는) 물질적 기초로 작용한다. 이러한 힘들이 강해질 때 인종/민족 간의 차별과 계층화 현상 또한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p300

...이주자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자극한다. 인간은 태초부터 (혹은 정착 시절부터) 자신의 수렵/채취/경작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장벽을 쌓고, 때로는 타 집단을 공격하고 위협하며 자신들의 통제 영역을 넓혀가면서 문명을 이루었다. 문명화 과정 자체가 외부자의 폭력으로부터의 방어 혹은 외부자에 대한 폭력을 행사 과정이었다.

 이렇게 생존하고 번영한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내부자까리 뭉치고 외부자를 배제하려는 욕구가 존재한다. 가족은 그 최소 단위이며 국가는 그 최대 단위이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시민사회와 시장의 조직들이 다양한 형태의 '배타적' 멤버십을 유지해 가며 이 세계에서 생존을 도모한다. 트럼프는 이 인류의 생존 방식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바로 미 제국의 경영을 위해 19~20세기에 걸쳐 낮춰놓은 장벽을 다시 높임으로써, 이미 성벽 안에 들어온 자들의 특권을 보호하고 아직 들어오지 못한 자들을 배제하며, 더 나아가 공격하는 전략이다. 트럼프 이후에도 밴스와 같은 정치인들을 통해 이주자 배제의 정치는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p301

 ...소수자를 공격해서 편을 가르는 선동의 정치가 이 땅에서도 일어날까? 물론이다. 그럴 것이다. 세상에는 도덕적으로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이 있지만, 그것을 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아주 크다고 판단될 때 서슴없이 그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대중들은 - 특정시점에, 특정한 정치경제적 환경이 도래하면.- 이런 정치 지도자들에게 환호한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는 자신이 쉽게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 해주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열광하느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트럼프가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치 지도자의 이해와 대중의 이해가 유대인과 이주민이라는 희생양을 두고 일치하는 순간이다. 소수자를 언술로 공격하는 일은 정치인이 맡고, 이들을 일상에서 위협하는 일은 대중이 맡는다. 종국에는 정당을 통해, 이들은 이주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킬 것이다.  

p306

 ...예전이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사그라들었을 분노가 서로의 댓글을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SNS는 '지역마다 산재해 있지만 권위 있는 책임자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마을 회관, 게시판, 확성기 그리고 무기고와 같다. 전통 사회에서 몇 달을 거쳐 입에서 입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을 분노가 며칠 만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타오른다. 이렇게 마른 장작불같이 타오르는 '순간성'과, 특정 정치적. 문화적 성향을 증폭시키는 플터버블 매커니즘이 조성하는 '편향성'이 결합되면 몹mob이라 불리는 성난 군중이 출현한다.

 이 연쇄 고리에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SNS의 도래와 함께 발흥한 포퓰리즘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소수자를 공격한다. 그 약한 고리는 미국에서는 이주자였으며, 한국에서는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였다. 결론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는 경제적 양극화와 SNS의 휘발성이 맞물려,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발생한다. 그 휘발성에 불을 지르는 자들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다.

p310

 ...'도구에 관련된 기술'에 투자한 노동자일수록,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이주자들과의 경쟁에 더 쉽게 노출된다. 도구에 관련된 기술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경유하지 않기 때문에 이주자들이 바로 습득(을 결정)할 수 있고, 이미 기술을 보유한 자들의 경우 해당 산업에 바로 진입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 현장의 육체노동자들, 특히 어느 정도 숙련을 쌓은 노동자들(따라서 어느 정도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이주자의 유입에 가장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p330

 소셜 케이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혹한 '구분 짓기'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에게 강제하고 스스로 치러야 하는 '시간'이자 '비용'이다. 우리가 스스로 채취하고 생산한 것을 스스로 소비했던 자급자족 수렵/채취/ 농업 경제에서, 내가 생산한 것을 남에게 팔고 남이 생산한 것을 내가 사야만 먹고살 수 있는 상품 교환경제로 이행한 데 따른 비용일 수도 있다. 내가 적당히 만들어 적당히 먹고사는 자급자족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의 것을 바꿔 먹는 시스템이기에, 나아가 서로의 것 중 더 좋은 것을 골라 먹는 시스템이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는 것이다.

p338

 나는 학벌과 착종되어 있는 내부 노동시장과 연공제를 해체할 것을 -거듭- 제안하였다. 그러려면 엑시트 옵션이 더 많이 존재햐야 하고, 직무평가와 평판 조회 시스템이 더 일반화되어야 한다. 굳이 사족을 달면, SNS없이 살면 좀 심심하긴 해도 상당 수준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자아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다.

p348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조직에 - 안정적으로- 더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을까?'라는 산업화 세대의 질문은, '내가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은 어디일까?'로 바뀌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저 조직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스펙은 무엇일까?'(답: 좋은 대학 간판)라는 질문은, '이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은 무엇일까?'(답: 훈련을 위한 수업과 현장 직무 경험 혹은 실행 경험)로 바뀌게 된다. 물론, 욕심 많은 한국인은 둘 다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전자 없이 후자가 가능한 사회에서 굳이 전자를 즐비하게, 번쩍거리게 구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을 이유는 없다. 그냥 후자에 투자하면 된다.

p352

 국가가 상층을 위한 기회 확대 정책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상층 개인은 내버려 둬도 알아서 기회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전략을 짠다. 대치동은 국가가 개입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중하층이 상층을 지향하며, 상층의 계급 재생산 전략을 모방하면서 발생한다. 능력이 안되는데 상층을 따라 하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보험을 통해 중하층 노동자들의 마찰적 실업(자발적 실업을 포함하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고 정보격차를 해소해준다면, 노동시장은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협상력과 선택지 모두 확장될 것이다.

p357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 심각하게 침해받지 않을 때까지만 관대하다.

.......

 ...치유책은 민주주의 제도 내에 있지 않다(따라서 제도를 개혁해서 이 문제를 풀려는 이들은 연목구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의 발흥은 대통령제와 내각제, 단순다수대표 소선구제와 비례대표제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는 경제적 세계화와 SNS라는 기술의 진보가 민주주의 제도를 우회해서 민주주의의 기반인 대중의 선호와 행위 양태, 사고방식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와 정당정치의 상호작용을 통해 합의된 조율과 의식, 범위, 의제 속에서 합리적으로 관리되던 대중의 선호와 의사가 이제는 SNS에 의해 잘게 파편화되고 극단적으로 의식화된 데다 야비하게 선동된 팬덤의 함성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에 의해 야만화된 대중의 정치 의사를 어떻게 다시 합의제 민주주의의 틀안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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