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 

 그래서 소설 <패스트>로 유명한 작가 알베르 카뮈는 그의 책<시지프 신화>에서 가장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 자살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는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p34

...타인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죽음이 관계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 산다. 어쩌면 관계가 이 세상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도 관계성 안에 존재한다. 양자물리학에서 양자 얽힘도 관계성 안에 존재한다.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을 보면, 생명과 물체 사이에도 관계성이 있는 것 같다. 전자는 내가 보면 입자의 모습을 보이고, 내가 보지 않으면 파동의 모습을 보인다. 관계가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핵심 이론인지도 모르겠다. 

p48

...시간의 제한 안에 있는 나를 인식하고 내 유한함을 아는 것이 인간다움의 주요한 특성이다. 그리고인간이기에 보이는 많은 성질이 이런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이차적으로 드러난다.

p50

...인류학자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인간과 다른 말로, 사람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개념의 정의이고, 사람은 사회적 개념의 정의다. 신생아는 인간이다. 신생아가 생무학적으로 인간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은 아닐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태어남과 동시에 신생아는 사람으로 인정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p64

 우선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인식한다는 것은 그것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주관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객관식 시험처럼 1등부터 마지막까지 한 줄로 세울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삶의 의미 역시 모두에게 각자 다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나는 무엇에 열정적인지, 나는 무엇에 감사하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새볔녘에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걷히고 이후에는 맑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위가 두렷해지듯 나에 대한 질문 이후에 내 삶의 의미가 뚜렷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흐릿하더라도 삶을 통해 살아가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도 자연스럽게 점점 더 뚜렷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대로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한 선택이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내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은 삶이란 생명이라는 그릇에 많은 경험으 ㄹ채워 넣어 나만의 특색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며, 살아 있을 때 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 그릇 안에 무엇을 넣을지는 내가 정할 수 있고, 법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를 자기결정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p82

...타조가 머리를 모래에 박고 있는 것은 자신의 머리를 식히고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이거나 모래 안에 낳은 알을 굴려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p110

 한편으로 어린 물고기처럼 바다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것도 어리석고, 바다에 갇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다. 바다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물고기를 보면서 바다 안에 갇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앞의 생을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바다 안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주위에 있는 물을 마음껏 헤엄치며 사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먼 훗날 있을 죽음은 내 삶의 끝이 아니라 내 삶에 이어진 마지막 완성이 될 것이다.

 삶의 반대는 죽음일까?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삶과 이어지는 한순간이다. 특별히 죽음은 내 삶에서 마지막 결론의 순가이다.....굳이 죽음의 반대를 찾자면 태어남이 아닐가. 삶이 어렵고 힘들면 삶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삶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죽음이 그 해결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사오항에서 죽음은 도피일 뿐이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낳아진 존재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감사할 일이다. 만약 나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더 나쁜 상황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일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고민하고 좌절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나의 존재의 의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 그리고 모든 순간이 존재의 의의다.

 해방 노예 출신이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픽테톳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있다. 판단, 의욕, 욕망, 형오처럼 무릇 우리(마음)의 움직임에 의한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속하지만, 육체나 재산, 타인으로부터의 평판, 지위 등 우리의 움직임에 의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원래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며,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은 취약하고 예속적이며 방해받고, 자신의 것이 아니다."

p112

 지위나 명예, 재산 등은 흔히 우리가 욕망을 품는 대상인데, 이거슬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즉 '우리에게 달려 잇지 않은 것' 들이다. 이런 것은 진정한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노력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것은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내 것이 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의 의지나 노력으로 내 것이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건강과 생명도 그렇다. 어던 사람은 건강을 위해 날마다 좋은 것을 먹고 구준히 운동하는데도 어느 날 암이 발생한다....나는 잘못이 없는데 상대방 운전자의 잘못으로 내 생명이 사라지기도 한다. 흔히 온전한 내 것으로 생각하는 내 건강이나 생명도 온전히 내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삶의 목적으로 하거나 행복의 가치로 둔다면 언제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평판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시대에 타인의 평판은 연예인이 아니어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평판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남에게 속한 것이고, 남의 생각을 내가 조절할 수 없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내 생각뿐이다.  

p116

...그렇다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식의 정신 승리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질병이나 신체적인 장애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질병이나 신체장애로 인해 어느 정도는 의지가 약해지며 삶의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성 대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와 같은 합리적인 판단까지 흐려지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신경쓰기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모리 교수가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기도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정신을 집중한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어도 좋다. 그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다만 계속 울고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

p123

 의사에게는 환자의 건강 상태 등과 당시의 의료 수준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상당한 범위의 재량권이 인정된다. 그렇지만 환자의 몸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수술과 같은 의료행위가 시행될 대 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의사는 환자에게 진단명, 수술과 같은 의료행위의 필요성이나 내용,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후유증 및 이후 요양 방법 등을 설명해준 후 환자가 자신에게 행해질 의료행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164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살아 있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것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과학적 지식도 어쩌면 우리의 제한적인 경험에 기초해서 이해해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한이 무한을 담을 수는 없다. 물고기는 바다 안에서 자유롭세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바다 안에 갇혀 잇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과학 또는 지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도 우리 이성의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해되고 납득되는 것일 뿐이다. 죽음에 대해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다. 다만 법의학을 통해 우리가 죽은 후 우리 육체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있다.

p184

 ...폴 발레리의 시<해변의 묘지>의 시구처럼 하루하루의 삶 중에서 의지를 놓지 말아야 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p208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 치료 종결이 선언되고 가망없는 퇴원이라는 형식을 통해 퇴원함으로써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던 과거의 관례는 점점 더 어려워졌고,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마지막까지 치료가 이어지다가 홀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적 문제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정신적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었고, 과거에 치료 종결이 선언되었을 법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중환자실 침상이 사용되면서 정작 중환자실의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중환자실 치료를 받기 어려워졌다. 환자 자신 역시 자기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는 상실되었다.

p233

 삶에서 끝이 있음을 인정하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삶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이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중에도 이런 삶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