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91  

...우리가 매년 독감 백신 접종 운동을 벌이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게절성 사망은 피할 수 없고, 세계적 팬데믹이 있을 때마다 고연령층의 생존은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자초한 위험, 즉 더 길어진 기대 수명을 향유하게 된 성공의 이면이다. 결국 가장 취약한 게층을 격리하고, 더 나은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죽음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294

 또 다른 종류의 뻔한 소리는 위험 평가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자발적이고 익숙한 위험은 습관적으로 가소평가하는 반면, 비자발적이고 낯선 위험은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또 최근의 충격적 경험에서 기인하는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집단 기억과 제도적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의 위험은 과소평가한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든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이 생전에 세 번의 팬데믹을 겪었다. 그러나 코로나 19팬데믹이 덮쳤을 때 1918년의 사례를 압도적으로 자주 언급했다. 또 1950년대의 소아마비와 1980년대의 에이즈가 남긴 두려움은 광범위하게 기억하는 반면, 덜 치명적이었지만 시기적으로 가까웠던 세 번의 팬데믹은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피상적인 인상만을 남겼다.

 이런 기억상실의 이유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2009년 팬데믹은 계절성 독감과 대체로 구분되지 않았다...미국과 세계의 경제에 대한 통계자료에서도 20세기 후반기에 덮친 두 번의 팬데믹으로 장기적인 성장률이 크게 떨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1968~1970년은 해외 항공 여행이 크게 확대되던 시기였다. 동체가 넓은 최초의 제트여객기 보잉 747이 처음 비행한 때가 1969년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내내 뉴스를 내보내며 사망자 수를 실시간으로 전하는,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케이블 방송이 없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장,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는 인터넷도 없었다. 따라서 역사를 초월해 뉴스를 발작적으로 퍼뜨리는 수단도 없었다.

 ....10년에 한 번 혹은 한 세대나 한 세기에 한 번 발발하는 바이러스성 팬데믹처럼 파급력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은 위험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

p324

 ...스웨덴의 화학자로 일찍이 노벨상을 수상한 스반테아레니우스는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배 증가하면서 지구 표면 온도 또한 상승했다는 계산 결과를 처음 내놓았다. 아레니우스는 그 논문에서, 지그온난화가 열대지방에서 가장 적게, 극지방에서 가장 크게 느껴질 테고, 밤과 낮 사이의 온도 차이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두가지 결론은 모두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요즘은 북극이 과거보다 더 빨리 더워진다. 반사되는 방사선의 양이 급격히 줄어 눈과 얼음이 녹고, 그 결과 온난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것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설명은, 기후 시스템에서 구름과 수증기 그리고 에너지가 극지방으로 이동하는 방법까지 아우르는 복잡한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밤 기온이 낮 기온의 평균보다 더 빨리 상승하는 주된 이유는, 경계층(지상 바로 위의 대기)이 낮 동안에는 수 킬로미터에 달하지만 밤에는 수백 미터로 무척 얇아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밤이 온난화에 더 민감하다.

p326

 지금가지 탈탄소화에서 효과적이고 상당한 결실을 거둔 것은 분명한 몸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추진한 정책 덕분만은 아니다. 오히려 탈탄소화의 성과는 과학기술의 전반적 발전(한층 높아진 에너지 전환율, 더 늘어난 원자력발전과 수력발전, 줄어든 폐기물 처리와 상품 제조 과정), 생산과 관리 방식의 전환(석탄에서 천연가스로 전환, 에너지를 덜 사용하면서도 더 일반화한 재활용) 에 따른 부산물이었다. 애초에 그런 전환의 시작과 추진은 온실가스 배출을 시도하려는 시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게다가 앞에서 지적했듯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고 풍력 터빈으로 전기를 생산하려는 근래의 탈탄소 움직임은 중국과 아시아의 다른 곳에서 온실 가스 배출이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완전히 무색해졌다.

p349

 ...그들은 임읮거으로 설정한 목표(2030년이나 2050년까지 탄소 제로)로 시작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식이다. 실질적인 사회. 경제적 요구와 기술적 역량에는 거의, 아니 전혀 관심이 없다.

 따라서 현실은 양쪽 모두에서 압박을 받는다. 탄소에 의존하는 활동의 전체 규모와 비용 및 기술적 과정을 고려할 때 그 모든 것을 수십 년 내에 완전히 사용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요의 규모와 비용이 엄청나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이산화탄소 포집을 신속한 탈탄소화의 결정적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이고 임의적인 목표를 과시하듯 내세우지 않고도 우리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컴퓨터로 계산한 학문적 연구에서는 주된 업적이 0이나 5로 끝나는 해에 이루어지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중단과 역전, 예측할 수 없는 일탈 등으로 가득하다. 석탄에 의존하던 전기 발전을 천연가스(메탄올 누출하지 않으면서 채굴하고 운송하면 석탄보다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나 풍력과 태양광을 통한 발전으로 대체하는 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척시킬 수 있다. 또 SUV를 멀리하고 전기 자동차의 채택률을 높일 수도 있다. 지금도 건축 현장과 가정, 기업의 에너지 사용에는 비효율적인 면이 많으므로 그런 부분을 찾아 줄이거나 없애면 상당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100억 톤 이상의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그 에너지를 17테너와트 이상으로 전환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한 세기 동안 꾸준히 상승하던 세계 소비 곡선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급격히 떨어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p359

 사회의 진화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궤적의 급작스러운 변동, 국가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고, 유의미한 변화를 시행하려는 우리의 능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실은 본질적으로 복잡해서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파악할 수 없는 생물권의 순환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숲이 탄소를 흡수하는 동시에 발생시키는 것처럼 자연 과정에는 모순되는 면이 적지 않아, 우리가 2030년이나 2050년에 화석연료 소비, 탈탄소화 속도, 환경 상황 등에서 어디쯤에 잇을지 자산 있게 말할 수 없다.

 특히 여전히 의심쩍은 부분은 중대한 문제에 실질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집단 결의'이다. 환경문제에는 세계 모두의 집단 결의가 필요하다. 해결책, 조정방향, 적응 방안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부유한 국가들은 일인당 평균 에너지 사용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고, 그렇게 하더라도 삶의 질을 안락하게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삼중 유리부터 내구성이 더 뛰어난 자동차 설계까지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널리 확산하면, 상당한 누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세계 육류 소비의 구성에 변화를 주면, 식량 공급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래의 저탄소 '혁명'을 지겹도록 떠벌리면서도 이에 대한 처방은 없고, 있더라도 우선순위에서 저 아래에 있다. 아직 가능하지도 않은 대규모 전기 저장, 비현실적인 대규모 탄소 포집과 영구적인 지하 저장에 의존하는 '혁명'을 노래할 뿐이다. 이런 과장된 예측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다.

p370

...연필과 종이로만 계산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예측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복잡한 시나리오로 옮겨가면, 필요한 계산을 하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기가 더 쉬워지지만, 가정을 세워야 하는 필연적 위험을 없애지는 못한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경제. 사회. 기술. 환경과 관련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결합하기 위해 모형이 더 복잡해지면, 더 많은 가정이 필ㅇ하고, 따라서 더 큰 실수를 범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p378

 ...복잡한 시스템에 내재한 관성의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에 근거한 결론, 필연적이지는 한지만 무척 개연성 높은 결론일 뿐이다. 그 복잡한 시스템의 한쪽 끝에는 장기적으로 항상 내재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있고, 반대편에는 기술적 요인(가전제품의 등장, 전기 저장 분야의 획기적 돌파구)이나 사회적 요인 (소련의 붕괴, 더욱 독해진 팬데믹)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단절과 중단이 있다. 여하튼 요즘 들어 에측하기가 더 어려워진 이유는 중대한 변화가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p382

 대규모 의존 관계의 필연적인 관성은 궁극적으로는 극복할 수 있다. 1920년 이전에는 미국 농지의 4분의 1이 말과 노새에게 먹일 사료를 재배하는 데 할애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라. 그러나 급격한 전환과 관련한 과거의 많은 사례는, 어떤 성과를 거두기에 적합한 기간을 짐작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빨랐던 데는 이유가 있다. 전환 규모가 비교적 작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기술 수단이 과거에 비해 많은 점에서 우월하지만, 새로운 전환(탈탄소화)을 향한 속도는 전통적인 생물 연료가 화석연료로 대체되던 속도보다 느리다.

p188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세계화 과정은 새로운 게 아니다. '노동의 차익 거래', 즉 임금이 낮은 국가로 공장을 옮기는 행위는 세계화의 여러 동인 중 하나일 뿐이다. 세계화가 미래에 반드시 확대 및 강화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세계화에 대한 가장 큰 착각이라면, 세계화가 사회.경제적 진화에 의해 미리 예정된 역사의 필연이란 생각일지 모르겟다. 그렇지 않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말했듯 세계화는 "자연에서 바람이나 물과 같은 힘"이 아니다. 세계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여러 면에서 세계화가 지나치게 확산해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요즘 점점 힘을 얻고 있다.

p383

 전자화한 새로운 세계에서는 모든 게 훨씬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결론을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얘기이다. 이런 결론 뒤에는 범주 오류가 있기 십상이다. 정보와 접속이 더 빨라지고, 새로운 개인 장치의 채택도 더 빨라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실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휴대폰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충분한 물 공급을 확보하고, 작물을 충분히 재배 및 가공하고, 가축을 먹이며 도살하고, 엄청난 양의 일차에너지를 생산해 전화하고, 원자재를 채굴해 적절한 용도로 변형해야 한다. 그 규모는 수십억 명에 달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기반시설은 대체 불가능한 것들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은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을 새로 작성하고, 더 값비싼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행위와는 확연히 다른 범주에 속한다.

 게다가 이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많은 기술은 거의 낯선 게 아니다....

p390

 관례의 반복은 망각만큼 중요하다. 새로운 시작과 대담한 출발이라는 약속이 등장하지만, 곧 과거의 패턴과 접근법이 되풀이되며 또다시 실패할 환경이 조성된다. 이 말이 의심스러우면 2007~2008년 금융 위기가 진행되던 동안, 또 그 직후의 정서를 점검해보라. 금융 질서가 거의 붕괴했는데, 그 사건에 책임진 사람이 있었던가? 막대한 신규 자금 투입 이외에 의심쩍은 관행을 개혁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근본적 조치가 있었던가?

p392

 간혹 중대한 사건에서 우리가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데 성공했던 것은 통찰력 있게 미래를 내다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로 결정해 단호히 추진한 덕분이다.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해 소아마비를 근절한 사레부터 더 믿음직한 비행기를 제작하는 동시에 더 나은 항공관제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상업용 비행의 위험을 낮춘 사례까지, 똑 적절한 식품 가공에 냉장 기술과 개인위생 향상이 더해지며 식품 병원균 감염을 낮춘 사례부터 화학요법과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소아 백혈병의 생존율을 높인 사례까지, 자랑스러운 사례를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거듭 말하지만, 실패를 예방하는 우리 능력이 일괄적으로 나아졌다는 명백한 징휴는 어디에도 없다.

p398

 최근의 팬데믹을 통해 다시 깨달았듯 점점 커져가는 세계적 문제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본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세우고 따르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우리는 이번 팬데믹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한 국가에서도 대책에 일관성이 없고, 국제적 공조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위기를 겪는 동안 드러난 결함에서, 우리가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세우고 관리하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되었고, 그에 따라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쯤에서 이 책의 독자들은 기본적인 것에는 식량과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이 반드시 포함되며, 그 모든 것을 환경에 가급적 적은 영향을 주며 공급해야 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미래의 지구온난화 정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단계들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며 수행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어렵고 벅찬 전망이고, 성공할 거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실패하리라 지레 겁먹을 것도 없다.

 먼 미래에 대해 불가지론자가 된다는 것은 정직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 지구적 문제에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 전진과 후퇴 및 실패가 앞으로도 우리 진화의 일부일 것이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궁극적인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며, 어떤 종류의 특이점에도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축적된 지혜를 끈기 있고 단호하게 사용하는 한, 때 이른 종말은 없을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이루어내는 성취와 실패로부터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똑똑해지고 운까지 좋아 미래의 모습과 특징을 부분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세대 후조차 여전히 전체 모습은 오리무중이다.

p402

 과거와 현재, 불확실한 미래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게 우리 앞에 펼쳐질 불가지의 시간에 접근하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우리가 미래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진보와 후퇴, 극복할 수 없을 듯한 어려움과 기적에 가까운 발전이 뒤섞인 미래가 가장 그럴듯한 전망이라는 건 알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이미 결정된 게 아니다. 미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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