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8
진화의 계통수에서 인간으로부터 좀 더 떨어진 곳을 보면 훨씬 더 장수하는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무 중에는 적어도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노화란 게 없어 보이는 것도 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사망할 확률이 증가하지만 나무는 점점 더 커지고 강건해지고 단단해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망 확률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적어도 키가 너무 커져서 태풍에 쓰러지기 전가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사고로 죽는 것이지 노화 때문은 아니다.
이 말은 몇몇 나무들은 정말 오래 산다는 것을 뜻한다...
p36
댄 뷰트너는 문화적 관점에서 이들 지역의 장수를 해명하려고 시도했다. 그 지역 주민들의 두터운 가족 사랑, 그들이 즐겨 먹는 음식, 활기차면서도 느긋한 삶의 방식, 그리고 주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삶의 의미가 장수촌이 된 이유라는 것이다.
뷰트너의 주장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입증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얻지는 못했다.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세계화의 바람이 숨 돌릴 짬도 주지 않도 이들 블루존에 들이닥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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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키나와와 다른 블루존의 변화를 대체로 발전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는 있다. 세계화로 인해 비만과 건강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낙후했던 그 지역은 현대 의료 기술과 깨끗한 물을 접하게 되었고 굶주림의 고통으로부터도 벗어났다. 전체 손익을 따져 보면 니코야반도는 과거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역에 닥친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과거 블루존의 장수 비결을 이해하는 데에 애로 사항이 생긴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알길이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p44
유전율은 다소 전문적인 용어다. 어떤 특성의 유전율이 1이라면 개체 간의 모든 차이가 유전자 때문이라는 것을 뜻한다. 가령 키의 유전율이 1이고 어떤 이가 다른 이보다 더 크다면 둘 사이의 키 차이는 0이라면 차이는 오로지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수명의 유전율이 0.15내지 0.33이라는 말은 개체 간 수명 차이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유전이 아닌 다른 요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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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확인 된 것은 장수의 유전율이 낮다는 점이다. 즉 유전자가 갖가지 특성에 큰 영향을 미치더라도, 장수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캘리코 연구원들은 쌍둥이 연구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유전자가 훨씬 덜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혈연관계가 아닌 부부가 친남매보다 더 수명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대체로 어떤 집안의 평균수명과 그 집안과 혼인으로 관계 맺은 사람들의 평균 수명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었다....
p62
...'돌연변이 축적 이론'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 죽을 때가 닥쳐서야 발현되는 해로운 변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제거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생로병사의 굴레를 피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제 이 가정을 뒤집어 보자. 실명을 초래하는 변이가 생애의 15년 동안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은 중립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유익한 작용을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 변이가 호랑이가 늙어 시력을 잃는 대가로 젊은 시절에는 시력을 더좋게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변이를 갖는 호랑이는 생애 초반부에는 더 많은 먹이를 구할 것이고 더 많은 새끼를 낳아서 기를 것이다. 마침내 그 변이가 호랑이를 누멀게 하고 굶어 죽게 만들더라도 어쨌든 그는 보통의 호랑이보다 더 많은 후손을 보게 된다. 이런 논리를 '적대적 다면발현'이라고 한다. 이 논리의 핵심은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애 초반에는 유익하게 작용하지만, 후반이 되면 해롭게 작용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생애 초반이 중요하다면 이 유전적 변이가 우세하게 될 것이고, 생애 후반부가 되면 그 해로운 효과가 발현되면서 소위 노화라 부르는 육체적 노쇠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현제 생물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은 손상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해서 노화가 온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이론은 생물이 노화에 맞서 싸우지만 결국에 가서는 싸움에 필요한 수단이 바닥나 버린다고 주장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같은 논리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노화는 싸움에 패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정란에서 아기, 어린이, 그리고 성인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발생 프로그램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호화 예정설'이라고 일컫는다. 단순히 생각하면 상당히 그럴싸한 논리 아닌가? 만약 모든 동물이 영원히 산다면 결국 동물이 너무 많아질 것이며, 먹잇감은 바닥날 것이고, 마침내 모두 굶주리게 될 테니 말이다.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화 예정설은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들릴지 몰라도 논리적, 수학적 문제가 심각해서 논란이 된다. 집단적 수준에서 진화는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첫 번째 문제점은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환경을 보전하거나, 세금을 내거나, 공유 주방의 청소를 어떤 식으로 분담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직면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다. 공동의 이해가 걸린 일에서 수고는 하지 않으면서 이득만 챙기려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공유지의 비극'은 자연계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다...
p66
인간 사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꼼수를 써서 혼자만 득을 보려는 수작이 통하지 않도록 사회적 대응을 마련하다. 우리는 세금을 탈루하는 자를 벌주고, 환경오염을 저지르는 기업체를 적발하고, 공유 주방의 청소를 기피하는 자에 대해서 비난을 한다. 그러나 그런 대응책이 수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을 보전하고 세금을 거두고 공유 주방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 사회의 경우도 그런데, 하물며 자연이 대처하는 상황은 훨씬 열악핟. 자연은 앞으로 닥칠 문제를 예견하지도 못하고, 닥친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따져 보지도 못한다. 진화는 자연의 맹목적인 진행 과정일 뿐이고,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최적의 해결책은 흔히 자진해서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노화 예정설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비록 (애초에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노화 유전자가 어찌어찌 진화의 단계를 밟는다 하더라도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생명체의 유전자에 노화를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이 변이에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노화 프로그램에 결함이 생긴 개체가 태어날 것이다. 이 개체는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불멸이어서 엄청난 특권을 보장받게 된다. 프로그램대로 기꺼이 늙고 죽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훨씬 많은 자손도 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불멸하는 개체가 그 종 전체의 지배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운데 불멸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노화 프로그램이 유전자에 들어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내가 노화 예정설을 언급한 것은 자연에서 그리고 실험실에서 그렇게 보이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p84
...장수의 비결은 고난의 시기를 겪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고난이 엄습했을 때 견뎌 내는 능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p97
...뇌하수체는 성장호르몬을 분비한다. 하지만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성장호르몬은 적어도 직접적으로 성장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성장호르몬은 간으로 가서 성장호르몬 수용체와 결합한다. 이 결합으로 인해 간이 IGF-1(인슐린 윳성장인자-1)이라 불리는 또 다른 호르몬을 분비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IGF-1이 성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이 사실은 라론 증후군을 성장호르몬이 아니라 합성 IGF-1로 치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p108
...우리는 맨 처음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에서 탐구를 시작했다. 다음에는 간에 도달한 성장호르몬이 IGF-1의 분비를 촉진한다느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IGF-1의 분비를 촉진한다느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IGF-1이 세포 수용체와 결합하면 그것은 mTOR라고 불리는 단백질 화합물을 활성화한다.따지고 보면 mTOR는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중에 많은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노화와 가장 명백히 관련된 역할은 mTOR가 세포 쓰레기 수집체계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특히 mTOR가 활성화되면 자가포식이 차단된다. 결과적으로 mTOR를 활성화하는 모든 성장 촉진 신호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때문에 라파마이신이 mTOR를 차단하면, mTOR의 자가포식 차단 작용을 도로 차단해서 그효과를 상쇄한다. 조금 혼란스럽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핵심은 성장 신호를 차단하면 결국 자가포식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라파마이신은 자가포식이 우너활하게 작동할 때에만 실험실 동물들의 수명을 연장해 준다. 자가포식 기능이 고장 나면 라파마이신도 효과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