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맞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도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이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맛있는 책 냄새가 폴폴 풍겨서 사람들이 모이고, 숨겨뒀던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고 위로하고 격려받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p74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긍정적 미래가 열리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하고 시우는 얼마나 마음이 까슬했을까. 시험을 준비한 3년이 실패라는 꼬리표와 함께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밤, 시우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오랜 침묵을 깨고 찬욱에게 전화를 걸 용기를 낸 시우는, 그동안 어떤 어른이 된 걸까.

 "여기가 3년째 버려져 있었던 집이었대. 볼품없던 땅이 소양리 북스 키친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내가 함께했거든, 마지막에 인테리어 공사까지 긑난 펜션이랑 북 카페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내가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더라. 그래서 그냥 나답게 뿌리내리고 살면 되겠구나, 싶었어."

......

 ...꿈이란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 걸. 인생의 미로에 얽히고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

p86

 나윤은 오랜만에 자신의 감정과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막연함, 두려움, 소외감, 무기력함, 아쉬움 같은 감정을 애써 밀어내며 살아왔다. 긴장한 상태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며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집에서는 그저 쉬고 싶은 생각뿐이라 내면 상태가 어떤지 돌아볼 기력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감정을 제대로 만나보니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거대하고 울창한 밀림 같은 감정 속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서 발을 들이지 않고 살았던 자신에게 미안했다.

 p109

...클래식은 좀 어렵고, 케이팝은 비트가 좀 빠르고, 인디 음악은 좀 난해하고.....그런데 재즈는 뭘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도 부담이 없어서 좋더라고요. 책 읽을 때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을 만한 클재즈 위주로 듣다 보니, 익숙해진 정도예요.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단계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p115

 삶에서 완벽한 순간이란 오지 않는 거였어요.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다, 어느 순간이 오면 암전되듯 끝이 오겠죠. 그런데 저는 20대에 줄곧 그걸 잊고 살았던 거예요. 저는 한국에서 요구하는 시험에 꽤 부합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어요. 승부욕도 센 편이고, 기준이 정확한 객관식 시험에 거부감도 크지 않았으니까요. 정답이 명확한 객관식 시험을 요령껏 파악해서 풀어내는 눈치가 있었죠. 그래서 운 좋게 괜찮은 대학에 지낙했고 로스쿨 과정도 무사히 지나서 정신없이 일하는 중이었어요.

p118

 인생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치나 과정에 대해서 작가는 많이 물어봐요. 결혼이나 학업, 성공 따위에 대해서요. '도대체 왜?'라고, 지루한 글을 읽거나 일장 연설을 듣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고 소중하다고도 얘기하죠. 자신만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마음을 짜릿하게 하는 문장을 읽으라고 얘기하는 책이에요.

 ,,,,,,,

그러니까.....기회인지도 몰라요.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게 아니라, 진짜 인생을 살아볼 기회를 선물받은 건지도 모르잖아요.

p119

 적도 위쪽 세상에서는 북극성이 변치 않는 지표가 되잖아요.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기준처럼. 다들 그 기준을 따르는 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고 살죠. 그런데 적도 아래 세상에서는 정상의 기준이 다르더라고요. 호주 브리즈번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전 생각했어요. 사막에 밤이 찾아와 길을 잃었을 때, 별이 이야기하는 방향은 각자 다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눈이 내린 산속을 헤맬 때, 북반구에서는 북극성을 찾겠지만 남반구에서는 희미한 남극성을 바라봐야겠죠. 도넛이 중간이 동그랗게 뚫려 있는 게 당연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넛은 원래 구멍이 없는 빵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정상적으로 산다는 기준이 꼭 하나는 아닐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p132

...지순이 기억하는 한, 언제나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언제나 환하게 웃어줬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사실 그건 부모님이 지훈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인생 교육이었다. 덕분에 지훈은 든든하고 안정감 있는 아이로 컸다.

p138

...지훈의 가족은 사람은 누구나 평범하고, 평범함의 옷을 입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 때 빛이 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있는 척하는 삶이 주는 순간의 짜릿함과 우월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그정도는 벌어봤는데.", "내가 살다보니 이런 경우도 있었는데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허세의 기운은 세 가족의 어떤 구석에도 스며들지 못했다.

p157

...우린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살아. 누군가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때로는 나에게서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가끔은 그냥 현실 세계를 떠나고 싶어서.

p195

...수혁은 인생이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었고, 밤새도록 날았는데도 쉴 곳을 찾지 못한 새처럼 지쳐 보였다.

p198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이 똑같아요. 우선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내면적으로는 허무함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에요. 그러다가 어떤 작은 계기로 모든 걸 버리고 무작정 떠나요. 자그마한 시골 마을로 가서 이름도 바꾸고 외모도 바꾸고 직업도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요.

........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나를 감추고 완벽하게 살아가는 제 2의 삶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

 그 이후부터는 우울하거나 화가 나면 정신없이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들었어요. 탐정 추리 소설이나 판타지 이야기 같은 거로요. 소설 속 세계에 빠진 순간만큼은 진통제를 삼킨 것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어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책의 세계에 빠져 있다 보면 등장인물이 문득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거든요. '인생에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이 생기지? 진짜 이정도일 줄 몰랐지?'하고요.

.......

 책이 진통제라는 얘기는 난생처음 들어보네요.

p207

 쭉 뻗은 고속도로는 위로와 휴식의 순간에서 일상의 리듬으로 전환하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수혁은 텅 빈 집에 들어가 혼자 점심을 먹을 자신을 떠올려 봤다. 차가운 정적이 모든 게 반듯하게 정리된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p252

 나윤은 조카 채은이를 생각햇다. 다섯 살 채은이는 곧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그리고 스무 살 새로운 채은이가 등장하면, 다섯 살의 채은이는 사진이나 영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었다. 대학생이 된 스무 살의 채은이는 눈송이를 입으로 먹으며 놀았고 혀가 꼬부라진 듯 말이 제대로 안 나왔던 다섯 살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추억은 주변에서 채은이를 지켜봐 준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영원히 존재할 분이다. 인화되지 못한 필름 카메라의 사진처럼. 그렇게 생각하자 나윤은 갑자기 목 아래쪽을 누가 꾹 누른 것처럼 뭉클해졋다.

p270

...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 깊은 우물 속 같은 마음을 꺼내며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거야. 아버지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화려한 시절도 지나가고, 미칠 듯한 열정과 환희의 순간도 빛이 바래지. 하지만 이야기는 영원히 남아. 이야기는 마음속에 남는 거니까. 어디 닳어서 없어지지도 않고, 깨어져 부서지지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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