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5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진료실에서 나와 수납을 하면서 상담비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니 한 시간에 99000원인데 한 달치를 선결제해야 해서 39600을 한꺼번에 내야 한단다. 한 달에 고작 네 시간 하는데 40만 원에 달하는 돈을 내야 한다니, 나를 위해서 이렇게 큰돈을 써본 적이 있었나. 선뜻 결정할 수 없어 상담을 보류하고 돌아섰다.

; 보통 아줌마의 마음이지...

p49

 불교에서는 주어진 환경이나 유전적 영향으로 태초에 형성된 습관을 '카르마'라고 한다. 법륜 스님을 소멸되려면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거나, 전기 충격기로 살을 지지는 정도의 강한 충격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셨다. 그만큼 습관은 고치거나 버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p54

 장애는 얻을 때가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할 때 상태가 더 악화된다고 한다. 스스로가 화려한 장미인 줄 알았는데 그저 길가에 핀 풀처럼 별것 아닌 게 된 듯 했다. 그런데 또 그러면 어떤가. 길가에 핀 풀처럼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살아내면 되는 것을. 내가 화려한 장미인 줄 알았을 때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과 그 결과로 돌아오는 무력감 때문에 늘 불안하고 힘들었다. 어차피 내가 잘못을 해서 얻은 장애도 아니고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치료제가 있고 나를 도와줄 전문가가 있으니 이제는 어떤 평가나 거창한 기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를 마주할 용기가 생겨난다.

p85

 나도 모르게 긴장할 때 과거와 현재를 구분지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나의 단점을 드러내도 인간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았고, 내가 유능하지 않아도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나라는 사람의 가치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어쩐지 내가 살았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느낌이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 그렇게 애쓰며 살지 않아도 괜찮았다.

; 자연스럽게 그냥 살면 되는거지. 타인의 반응에 너무 신경쓰지 말자.

p87

 우리는 자신의 기질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합쳐서 '기억'이라는 벽돌을 쌓는다. 감정이 동반된 기억은 개인의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다시 행동이 되고, 행동은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 내 안의 벽돌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p124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내면의 상처를 감추고 사랑만 받았던 것처럼 살아가려니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됐다. 오랜 세월 상처를 밖으로 해소시키지 않고 안에 담은 채 살다보니 어느새 그것은 내 삶의 본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상처를 드러낼 누군가를 찾고 싶었다. 상처를 보이면 나를 멀리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아닌, 상처를 보여줘도 괜찮은 안전한 그릇이 필요했다.

p128

 "믿을 수 없겠지만 그런 훈련을 해보세요. 그러면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나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집니다. 부정적인 상상을 계속하면 끝이 없어요. 지옥은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계속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에요. 고작 이게 전부일 것 같은 행복도 내가 꿈꾸고 바라면 더 큰 행복이 찾아와요, 분명."

 처음에는 이런 훈련법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집중도 잘 못하고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대신 책에서 보고 와 닿은 글귀나 드라마에 나온 멋진 대사들을 핸드폰에 메모하고, 언젠가 이런 말을 할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점점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다.

p138

 타인의 행복에서 어떻게든 흠을 잡아내려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우리 마음은 간사해서 누군가 슬퍼할 대 어깨를 내주는 것보다 기쁜 일에 함께 웃어주는 걸 더 어려워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그런 일이 눈앞에 닥치면 태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감정이 앞서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분노를 표출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 충분히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감정은 나도 미숙한 사람임을 반증하는 것이니 내 감정의 근원부터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치우쳐 쉽게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싫어할 사람들은 내가 뭘해도 나를 싫어한다. 하지만 다행히 이런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내 뒤에서 나를 묵묵히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존재다.

p141

...화이부동이란 다른 이와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함께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적당한 거리 두기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일관되지 않아요. 어떨 때는 나쁜 짓도 했다가 어떨 때는 좋은 짓도 하면서 그 평균값을 찾아가죠. 어느 한 순간을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위험한 일이에요. 좋고 나쁨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격차가 큰 사람도 있기 마련이에요. 그럴수록 관계 속에서 내가 단단히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장단점을 발견했든 흔들리지 않고 나는 나대로 독립적으로 설 줄 알아야 해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힘들면 내게 기대"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만나봤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제는 누군가 호의를 보이면 감사하게 생각할 뿐 섣부르게 기대거나 기대하지 않여 한다.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되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되 적당한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p155

 우리는 세상의 전부를 보지 못한다. 보고 싶은 만큼만 본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에서 '내심외경'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세상은 나의 거울이다"라고 말한다.

 "스스로가 싫은 점이 있는데요. 상담사 님께서도 많이 지적해주셨지만, 조급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어요. 근데 그게 실제로 맞을 때가 있어요. 많이 맞아요."

 "사람들은 본인이 맞는 것만 기억합니다. 틀린 것은 잘 기억하지 않죠. 내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알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다른 사람이 더 잘 압니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와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을 조합할 때 가장 정확한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죠. 그것이 진정한 자기 성찰이에요."

 부정할 수 없었다. 내 판단이 틀릴 대가 있다. 생각보다 많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틀렸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혼돈의 순간에서 조급해지는 내 마음을 바라보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침착하게 대응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76

 가장 중요한 건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다. 상대가 내 아픔을 알게 됐다고 해서 반드시 나를 배려하고 이해해줄 의무는 없다. 내가 바라던 선의가 돌아오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는 무심함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타인과 나를 공정한 마음으로 대해야 상대도 나를 진심으로 대해준다.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온 몇 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사랑을 주고받고 행복을 느껴야 한다. 당신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기를, 그래서 불완전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돼주기를 바란다.

p182

 "성인이 된다는 건 책임감을 갖고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창피하든 자랑스럽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 내 삶에 당당해질 수 있어요. 이것을 '자기 통제감'이라고 합니다. 내 삶을 내가 결정 내리고 그 결과도 내가 관리하는 거죠. 이 자기 통제감을 잃을 때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을 느낍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거예요."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엄마를 내 삶에서 분리시키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내 책임을 피하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임을 진다는 건 무섭고 무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삶을 중단해야 했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을 자처하기보다 인생이라는 링 위에 홀로 설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아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아도,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잃어 만신창이가 된다하더라도 홀로 일어나 내가 가진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한 나는 내 인생의 챔피언이니까.

p196

 저 멀리에서는 울창한 숲의 아름다움만 볼지라도 그 안에서는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오늘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멀리 떨어져 희극처럼 봐야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가까이서 비극을 마주봐야 할 때도 있다. 어느 순간에도 담담하기를, 좀 더 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p205

...앞으로도 내 인생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계속해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은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알게 됐으니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지키리라 믿는다.

p218

 제일 미운 증상이 있다면 바로 페이드아웃이다. 상대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 머릿속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대는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같은 잡념들이 마구 떠오른다. 그러다 다시 현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전혀 생뚱맞은 대답을 하고야 만다. 그래서 직장에서 신뢰를 잃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 또한 ADHD의 증상이라니 좀 슬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