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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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목욕탕』이라는 제목과 표지를 보면 한없이 유쾌할 것만 같이 보인다. 표지의 핑크빛이 더더욱 그렇게만 보이게 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생각과는 다르다 ㅡ. 춤에는 항상 즐거움만이 깃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간 깨닫게 된다. 목욕탕의 맨몸이 주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ㅡ. 

 

 『춤추는 목욕탕』은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한 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미령, 호순, 복남 세 여자의 이야기 ㅡ. 현욱과 미령은 여행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3개월 후 의식을 되찾은 미령은 남편 현욱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친정어머니 호순과 시어머니 복남이 함께 섞이면서 이야기는 진행되어 간다. 탐탁지 않은 서로를 향해 오가는 원망, 고통과 상처가 곧 이야기가 되어 소설 속을 헤엄치고 다닌다. 한 남자로 인해 가족이 되었다가 타인이 되고, 상처를 받았다가 다시 치유가 되는 과정들이다. 그 과정의 시작이자 마지막이 바로 “목욕탕”이다. ‘벌거벗음’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고, 서로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공간이자 때를 밀듯 깨끗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공간 ㅡ. 그 공간은 그렇게 새로운 생을 향해 춤을 춘다 ㅡ.

대부분의 책을 읽다보면 끝에 가서 작가의 말을 -외국 작품일 경우에는 옮긴이의 말까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의 작품일 경우 때로는 ‘작품 해설’까지 만날 수 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생각이 많이 부족해서 일까?! 솔직히, 작품 자체보다 작품해설이 나에겐 더 어렵게 느껴진다. 『춤추는 목욕탕』에 실린 작품해설도 예외는 아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느니, 어떤 어떤 것이 무슨 상징성을 가진다느니.. 아, 참고로 나는 작품 해설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비방을 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과연 「김지현」이라는 -나에겐 낯선-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들었는가에 대한 것이고, 그에 대해 살짝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한없이 진지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찾아내지도 못할 만큼의 다양한 요소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고, 그 하나하나 모두를 찾기에는 벅차다는 느낌에서 드는 걱정일 것이다 ㅡ. 어쩌면 그건, 다른 걱정이 아니라 알고 보면 정말 재미있는 요소들인데 놓쳤을지도 모른 다른 아쉬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ㅡ. 

 

 “어느 순간 눈동자 색깔이 바뀌지. 세상이 달리 보이는 거야.
심장 뛰는 것도 전과 다르고, 웃고 우는 일도 전과 딴판이 될 때가 오지.
그럴 땐 몸이 한 뼘 자랐다! 라고 말하는 거야” - P 116

 『춤추는 목욕탕』에서 홀로 감당해 내야 할 슬픔, 그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몸이 한 뼘 자라는 순간을 보며 문득 나의 몸은 얼마나 자랐는지-혹은 자랄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홀로 감당해 내야 할 슬픔은 아직 얼마나 남았을까?! 그로 인해 나는 얼마나 성장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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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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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Carpe Diem. 라틴 시인 호레이스의 싯구로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

많은 사람들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나 역시도 그와 비슷한 말을 가슴에 담고, 또 그렇게 살기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말은 쉽지만 결코 행동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적어도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충실함 대신 “내일부터”라는 말을 더 많이 달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한다면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혹은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거의가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생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더욱 지친 채 삶의 마지막을 향해가지 않을까?! 



 

 『사랑이 떠나가면』댄과 카르멘 부부의 이야기이다. 댄은 ‘고독공포증(모노포비아. 고독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으로 충동적인 성적 욕구를 갖게 되는 심리 증상)’을 가진 쾌락주의자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그의 바람기를 잠재운 것이 카르멘이고 그들은 행복한 부부의 생활을 하게 된다. 적어도 카르멘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 그들의 삶은 달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지쳐가는 댄과 카르멘 ㅡ. ‘고독공포증’을 핑계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댄과 결국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는 카르멘 ㅡ.

아름답다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야기이고, 슬프다면 한없이 슬픈, 그리고 뭔가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까지도 고스란히 남겨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댄과 카르멘을 통해 새삼스럽게 다시 죽음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ㅡ. 그 순간들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대입하게 된다. 어쩌면 죽음을 생각한다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생각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고, 사랑이라는 것의 정의 보다는 그 표현과 방식의 다양함에 대해 생각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생의 마지막에 놓인 나는 카르멘처럼 이해와 인내로 무장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댄처럼 마지막을 앞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병을 핑계로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어떤 것이든, ‘이별’이란 놈은 익숙해지기에는 너무나도 큰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ㅡ. 보통 다른 일들은 겪을수록 무뎌지기 마련이지만, 이별만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옮긴이가 그런 이별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리고 이 작품의 작가가 그렇기에..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기에.. 더 가슴이 아프게 다가오는 책 『사랑이 떠나가면』이다 ㅡ. 그런 슬픔을 두고도 여기서는 생의 마지막에 “카르페 디엠”을 이야기하기에 그래도 아직 우리는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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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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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때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책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있다. 글이 시원시원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뭔지 모를 난해함에 그 당시에는 ‘뭐 이런 게 다있냐?!’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때의 혼란이 지금 또 다른 혼란으로 다가온다 ㅡ.‘장정일’이라는 작가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ㅡ.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ㅡ. 그의 생각들이 이 책에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는지, 또 나는 그의 생각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인 것인지도 궁금하며, 그 궁금함이 이제는 혼란스럽게만 다가온다 ㅡ.



  성장 소설에는 항상 심각한 위기로 출발하여 지난 삶에 대한 치유,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마무리되어진다. 『구월의 이틀』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 과정에 담긴 내용이 좀 무거울 뿐이었다. 『구월의 이틀』은 ‘금’과 ‘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청춘의 성장기이다 ㅡ. 금은 광주 출생이고, 은은 부산 출생이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금은 아버지가 대통령 보좌관이 됨으로 해서 서울로 가게 된 것이고, 은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서울로 가게 된다. 금의 가족이 조금은 힘들게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은의 가족은 큰아버지의 부로 인해 금의 가족과는 대조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앞으로 스스로가 찾아야 할 『이틀』의 시작이기도 한, 《구월의 이틀》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교향 수업을 통해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된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실제도로 전혀 다르지만 또 비슷한- 그들이 말이다 ㅡ.

책의 내용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나의 개인적인 이념적 성향을 비춰보더라도, 보수이든 진보이든 제대로 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작가 역시도 보다 건전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나라를 꿈꾸는 차원에서 ‘우익 청년 성장기’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된다. 동성애를 통해서 드러나는 위선들과 ‘무조건’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내세워 서로를 향해 날리는 날카로움 들은 우익이든 좌익이든 지양되어야 할 문제임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ㅡ. 그리고 마지막에서 ‘은’에게 순수한 우익으로의 기대감과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진정으로 보수주의를 선호해서 라기 보다는 진정함과 순수함이 깃든 이념이라면 그것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



 『구월의 이틀』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ㅡ. 보수와 진보의 대립, 혹은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부(富)로 인해 갈라지는 이념적 성향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미 시작부터 지역적 구도로 이념의 차이를 몰고 간 것은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지리적 상황에 의해서 그들의 성향이 미리부터 재단되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편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ㅡ. 그리고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 너무나도 급하게 말이다.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이혼, 외도 이야기로 ㅡ. 그리고 갑자기 변해버리면서 달라지는 두 청춘의 길과 마지막 장면의 어색하면서도 갑작스런 화해-화해하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의 움직임은 생뚱맞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년 전의 사실을 배경으로 쓰인 이 소설에는 대담함이 묻어난다는 느낌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모습을 담은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담함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리라 ㅡ. 불편하지만..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 인해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사회는 한 걸음 더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이틀’은 과연 언제로 기억될지 생각해 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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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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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믿지 못할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린 어떤 모습으로 그 시간들에 놓여있게 될까?! 좀 더 자세히 들어가서, 만약 누군가가 다가와 당신이 며칠 후 죽게 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힘들겠지만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할 것인가?! 그 누군가 처럼 마지막까지 사과나무를 심을 것인가?! 아니면 그 죽음 자체를 거부하면서 마지막까지 발버둥 칠 것인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결국 두려움이라는 놈은 당신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ㅡ.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예정된 미래에 놓여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형사인 톰 숀이 자살하려는 여자, 진 레이드를 구하게 되면서 그리고 그녀의 사연을 듣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죽음이라는 운명에 쳐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당신은 3주 안에, 정확히 자정에, 그것도 사자의 아가리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톰킨스라는 남자의 예언 ㅡ.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할란 레이드와 진 레이드 ㅡ. 그리고 그들을 도우기 위한 형사들의 움직임.. 과연 예언은 사실일까?! 아니면 단순한 누군가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까?! 그 끝을 향한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ㅡ. 그 과정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하게 된다 ㅡ. 

 

무엇보다도 신은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허락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건 금지했다.  - P42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선택에 놓여있을 때, 혹은 돈 걱정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끔씩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결과가 뻔히 보이니까 어떤 선택에 힘을 뺄 필요도 없을 것이고, 로또 번호라도 살짝 보고 온다면 크게 돈 걱정없는 삶을 살 수도 있을텐데’라는 생각들 말이다.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가진다면 훨씬 살기는 편하게 될지 모른다. 그 어떤 걱정도 없이..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미래의 모습에 자신의 죽음도 포함된다면 말은 달라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말 다행스럽게도 신은 우리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주지 않았다. 적어도 절대 다수의 대부분에게는 말이다 ㅡ. 

  너무 진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운명을 믿나요?!” 라는.. 우리의 삶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모두 정해져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정해진 미래를 운명이라는 또 다른 말로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이미 내 삶은 정해져 있기에 대충대충 살아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기에 괜찮을 것인가?! 아니면 운명은 내가 계속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인가?! 혹은 그렇게 바뀌는 운명 마저도 이미 예정된 운명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답과 질문들만이 가득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ㅡ. 결국 결론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나는 적어도 죽음 앞에서 벌벌 떨며 남은 시간만을 계산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지는 않겠지만, 언제인지 모를 마지막까지 그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설사 내일의 죽음을 알게 되더라도 말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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