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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군대에 있을 때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책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있다. 글이 시원시원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뭔지 모를 난해함에 그 당시에는 ‘뭐 이런 게 다있냐?!’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때의 혼란이 지금 또 다른 혼란으로 다가온다 ㅡ.‘장정일’이라는 작가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ㅡ. 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ㅡ. 그의 생각들이 이 책에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는지, 또 나는 그의 생각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인 것인지도 궁금하며, 그 궁금함이 이제는 혼란스럽게만 다가온다 ㅡ.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postfile/1/2009/11/22/18/bunnywj_8363737552.jpg)
성장 소설에는 항상 심각한 위기로 출발하여 지난 삶에 대한 치유,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마무리되어진다. 『구월의 이틀』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 과정에 담긴 내용이 좀 무거울 뿐이었다. 『구월의 이틀』은 ‘금’과 ‘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청춘의 성장기이다 ㅡ. 금은 광주 출생이고, 은은 부산 출생이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금은 아버지가 대통령 보좌관이 됨으로 해서 서울로 가게 된 것이고, 은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서울로 가게 된다. 금의 가족이 조금은 힘들게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은의 가족은 큰아버지의 부로 인해 금의 가족과는 대조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앞으로 스스로가 찾아야 할 『이틀』의 시작이기도 한, 《구월의 이틀》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교향 수업을 통해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된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실제도로 전혀 다르지만 또 비슷한- 그들이 말이다 ㅡ.
책의 내용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나의 개인적인 이념적 성향을 비춰보더라도, 보수이든 진보이든 제대로 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작가 역시도 보다 건전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나라를 꿈꾸는 차원에서 ‘우익 청년 성장기’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된다. 동성애를 통해서 드러나는 위선들과 ‘무조건’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내세워 서로를 향해 날리는 날카로움 들은 우익이든 좌익이든 지양되어야 할 문제임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ㅡ. 그리고 마지막에서 ‘은’에게 순수한 우익으로의 기대감과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진정으로 보수주의를 선호해서 라기 보다는 진정함과 순수함이 깃든 이념이라면 그것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postfile/1/2009/11/22/18/bunnywj_8686898199.jpg)
『구월의 이틀』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ㅡ. 보수와 진보의 대립, 혹은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부(富)로 인해 갈라지는 이념적 성향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미 시작부터 지역적 구도로 이념의 차이를 몰고 간 것은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지리적 상황에 의해서 그들의 성향이 미리부터 재단되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편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ㅡ. 그리고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 너무나도 급하게 말이다.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이혼, 외도 이야기로 ㅡ. 그리고 갑자기 변해버리면서 달라지는 두 청춘의 길과 마지막 장면의 어색하면서도 갑작스런 화해-화해하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의 움직임은 생뚱맞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년 전의 사실을 배경으로 쓰인 이 소설에는 대담함이 묻어난다는 느낌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모습을 담은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담함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리라 ㅡ. 불편하지만..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 인해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사회는 한 걸음 더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이틀’은 과연 언제로 기억될지 생각해 본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