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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기술 1 ㅣ NFF (New Face of Fiction)
채드 하바크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니 지금껏 나는 완전무결함을 꿈꾸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해내든 완벽해야하고, 작은 흠집하나 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실제로 나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그저 노력일 뿐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으니… 결국에는 흠집 나고, 상처받고,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이름의 존재들이 겪어가는 삶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완전하지 못함에, 그리고 무결하지 못함에 다시 -받아서는 안 될, 그럴 필요조차 없는- 상처를 받으며, 결국에는 조금씩 지쳐가며 잡을 수도 있었던 것들을 손에서 하나씩 놓아 버리고는 말았다. 이런 허무한 과정들은 전반적인 삶 속에서는 물론이고 사소한 물건에게까지 그대로 반영되고는 했다. 새로운 물건이 나에게 들어올 때면 새것이라는 사실 하나로 처음에는 조심히 다루었지만, 결국에는 흠집이 나고 헌것이 되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그 물건을 점점 나의 관심에서 내려놓는 것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실수도 할 수 있고, 흠집이 날수도(혹은 낼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인데 그 자체를 부정만하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과 나를 그리며 그런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분명 아니다. 삶이라는 불완전, 그 자체를 부정하며 살아왔던 나 자신을 『수비의 기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만나게 된 것이다. 거창하게 삶과 완전무결함, 그리고 불완전 등의 말들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수비의 기술』이라는 소설 그 자체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삶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그려냈으니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즐거움 후에 다가올 많은 생각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비의 기술』은 제목에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듯이 야구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야구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를 섞어놓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고, 그 시작만큼이나 즐거운 마음, 신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시작부터 야구를 하는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단순한 야구 이야기만 담은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야구 소설이었다. 야구 이야기로 시작되고, 계속해서 야구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펼쳐지고, 마지막 장면까지도 야구를 하는 모습들이 펼쳐지니, 야구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미 이 작품을 읽어본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을 그냥 그렇고 단순한 야구 소설이라고만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한 야구 소설을 뛰어넘는다고 해야 할까?! 그 사실이 그저 야구에만 집착했던 나를 살짝 당황스럽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결코 신나는 야구이야기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이 작품에 가장 많이 끌렸던 이유가 야구를 소재로 했다는 사실에 있었지만, ‘채드 하바크’라는 이 작가가 야구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그 이유 또한 그에 못지않게 나를 끌어당겼던 것이다. 여럿이 함께 하지만 그러면서 외롭기도한 스포츠가 야구이며, 뛰어난 선수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슬럼프에 빠지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작가가 야구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였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그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해 봤다면, 작가의 이런 이유로 채택된 야구와 이 소설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말이다. 잊고 있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되니 잠깐 느꼈던 당황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이 책이 가진 진짜 매력에 깊이 빠질 수 있었다.
볼품없는 체격의 유격수 ‘헨리 스크림섄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수비하나만큼은 끝내주게 한다. 타구의 방향을 예측해서 미리 수비위치를 선정하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송구로 아웃을 잡아낸다. 그럼에도 그의 왜소한 체격 때문에 특별히 누군가의 시선을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대학진로 또한 야구와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마이크 슈워츠’ 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헨리의 재능을 간파하고 자신의 학교, 웨스티지 대학으로 그를 스카우트를 하게 된다. 헨리는 슈워츠와 함께 야구를 하면서, 그의 도움으로 이제는 타격까지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여기까지만보면 그저 재능은 있지만 평범하게만 보이던 한 선수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상당한 실력의 선수로 거듭나게 되는 평범한 야구소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그저 올라가는 길만 보이던 헨리가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된 송구를 할 수 없게 되고, 슈워츠는 지원한 로스쿨에 하나씩 떨어지게 되면서 꿈꾸던 미래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헨리와 슈워츠 외에도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웨스시티 대학교 총장 ‘거트 어펜라이트’와 그의 딸 ‘펠라’, 헨리의 룸메이트이자 거트와 사랑을 나누는 ‘오웬 던’이 그들이다. 그들 역시 헨리와 슈워츠가 그렇듯 자신들만의 상처로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다섯 사람들의 삶-삶 전체로 보면 아주 짧은 순간들일 것이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수비의 기술』이다.
야구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보면서 투수가 아닌 ‘유격수’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처음 접해보는 것 같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투수가 그 중심에 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유격수라니… 분명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 물론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야구에서 투수를 중심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그를 뒷받침해주는 수비의 힘이다. 그리고 그 수비를 모두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유격수이다. 헨리가 그랬던 것처럼, 유격수라는 위치에서 그의 뜻대로 내야-때론 외야까지-를 지휘할 수 있다면, 그 자신감은 야구를 지배하듯, 인생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청춘-혹은 젊음?!-이라는 이름의 유격수라는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소설에서 그렇듯, 현실에서도 뭔가를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그렇게 믿었기에 그가 맞닥들이는 실패(혹은 현실)는 크나큰 좌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비의 기술』의 그들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격수에게 다가오는 불규칙바운드처럼, 우리들의 삶에 다가오는 불규칙바운드를 어떻게 수비하느냐는 것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우리는 바로 『수비의 기술』에서 그런 수비의 기술 중 하나를 만나볼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개인의 삶 모두에게 해당되는 정답-어쩌면 삶에 해답을 찾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몫일 것이다.
흔히 야구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더라도 언제 뒤집을지 모르는 것-9회 말 투아웃에 역전타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이 야구이고, 반대로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더라도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것이 야구이다. 사람들은 그런 극적인 경기를 보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론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다고도 한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야구, 그리고 그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어쨌든 경기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고, 우리들의 삶도 결국에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또 언제 어떻게든 될 수 있기에 더 흥미진진한 것이 우리 삶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는 의미들은 저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한 가지만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헨리, 슈워츠, 펠라, 오웬, 그리고 거트가 그랬고 또 앞으로 그러하듯이, 우리 역시도 아직은 삶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 충분히 드라마적인 요소를 찾아내며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누구든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그 어떤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 어떤 모습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이 전해주는, 그 누구도 얻어낼 수 있는 의미 중 확실한 하나가 아닐지…
역동적인 젊음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수비의 기술』은 솔직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는 그런 마음까지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핵심이 되는 말을 콕 집어 전달한다. 누군가의 첫 소설이라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쉽게 술술 풀리게 하면서도, 그 기본적인 사실들은 결코 잊지 않게 만든다고 할까. 이정도 힘이라면 ‘존경받는 세계 작가 23인의 여름휴가 추천 도서’라는 문구나 ‘2011 아마존 올해의 책 1위’라는 문구도 필요 없을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정말 괜찮다 싶은 책에는 많은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저, 추천하니까 꼭 읽어보라는 말 외에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삶이라는 불확실 속에서 감동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소설이라고 한다면, 그 감동 속에서 나를 찾아가며 내 삶의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소설이 『수비의 기술』이 아닐까?! 그 멋진 시간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