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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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점차 다양한 장르로-혹은 장르파괴로?!- 국내 작가들이 활동 영역을 넓어가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완성도 있는 국내작품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이 작가(?!)의 등장으로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게끔 만든 이는, 이미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도진기’ 라는 이름의 작가이다. 현직 판사라는 타이틀로 그 관심이 쏠리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타이틀과는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7개의 중,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 『순서의 문제』를 들고 나타났다.

 

 『순서의 문제』는 ‘진구’라는 주인공의 활약(?!)이 담긴 이야기들을 엮어 놓았는데, 그 시작인 「순서의 문제」에서부터 이 친구의 캐릭터가 팍팍 드러난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희고 갸름한 얼굴, 선량한 눈빛을 가진 그이지만, 대학을 중퇴한 채, 현재는 고시원의 작은 방에서 생활하며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리운전을 하다가 우연하게 일을 하나 맡게 되면서 그의 어떤 감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약간의 불법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그는 살인사건을 우연히 알게 되고, 그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하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아~ 진구란 친구는 참~ 정의로운 녀석이구나, 하겠지만, 사실 그가 원했던 것은 돈이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뭐 이런 녀석이 주인공이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할까?! 어쨌든 진구는 원했던 돈을 얻고 고시원은 아파트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사건들이 하나씩 하나씩 일어나고 그는 어김없이 돈 냄새를 맡으며, 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순서의 문제」에 이어지는 「대모산의 너무 멀다」는 방에 가만히 앉아서 여자 친구의 단순한 관찰만을 가지고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놀라운 능력의 진구를 만날 수 있고, 「막간: 마추피추의 꿈」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또 다르게 너무나도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우리들을 뜨끔하게 만든다. 「티켓다방의 죽음」에서는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사건을 깔끔하게 풀어내고, 끝에 가서는 통쾌함까지 보여주는 진구를 만나게 되고, 「신(新) 노란방의 비밀」에 이르면 진구의 전혀 다른 놀라운 모습-그래도 진구는 진구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뮤즈의 계시」와 「환기통」은 진구의 여자 친구인 해미와 얽힌 이야기로 그녀와의 만남, 그녀를 향한 진구의 마음을 엿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진구라는 캐릭터가 그리 탐탁지 않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돈이며,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 따위야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충분히 있을법한 캐릭터인데, 그럼에도 왠지 거부감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적어도 소설 속에서 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그나마 마음속에 작게나마 남아있는 양심이 지켜내는 거부감의 작용이라고 한다면 속이나 편할까?! 사소한 단서로 시작되는 사건일지라도 깔끔하게 해결하고야마는, 천재라고도 불리지 않을까 싶은 만큼 놀라운 능력을 가진 그이지만, 그가 향하는 곳이 항상 돈이었기에 이 책의 시작에 있어서만큼은 진구라는 인물은 정말 정이 가지 않는 친구였다. 하지만 「신(新) 노란방의 비밀」을 시작으로 점차 이 친구의 알듯모를듯한 매력에 빠져들어 가고, 결국에는 처음과는 반대로 정이란 놈이 계속해서 쌓여만 가는 것을 느낀다. 결론적으로는, 그래도 진구라는 녀석, 참 매력적인 캐릭터임에 틀림없는 친구라는…

 

 너무 캐릭터 이야기에만 치중해서 중요한 내용을 지나갈 뻔 했다. 흠… 앞서 간략하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물론 진구를 중심으로…- 했지만, 모든 작품에서 풍기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결국은-당연하게도!- 작가의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동안의 한국 추리 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던 어색함이나 엉성함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 논리적으로-놀랍게도,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저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치고나와서 그 빈 공간을 채워준다!- 풀어내고, 심지어 재미까지 있다. 더군다나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과정도 꽤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이다. 잠깐만 봐야지 하면서 읽어 내려갔던 것이, 처음 앉았던 그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쭈~욱 파고 들어갔으니, 뭐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이런 국내 추리 소설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읽을 준비가 되어있다. 아,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추리 소설 좀 읽었고, 웬만한 트릭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라고 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추리마저도 심심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순서의 문제』는 국내 추리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단 한권의 책이지만, 이제는 ‘도진기’라는 이름만으로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는 않겠다는 확신까지 들었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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