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25주년 기념판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린다 블레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리건이 처음 악령에 대해 감지할 때 "악마가 보여요."나 "내 안에 악마가 있어요." 같은 것이 아니라 "침대가 흔들려요."라는 말은 참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에는 많은 흔들림을 보여주지요. 카톨릭 신부인 데미안은 신부들 사이에서 가장 인정을 받지만 정작 자신은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예측됩니다. 하나는 영화 처음에 보여주는 유적지 발굴지역에 있던 도깨비를 닮은 조각이나(저는 도깨비를 좋아하는데 좀 불만입니다) 동물들 조각상을 발견합니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카톨릭에서 불교나 이슬람교, 혹은 유교나 샤머니즘의 존재는 그것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할 겁니다.


다른 하나는 데미안 신부에게는 노모가 있는데 그가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면 아픈 어머니를 열악한 노인 보호시설에 있거나 너무 먼거리에 살아서 노모의 임종을 돌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가(카톨릭) 과연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 어떤 도움을 줄 수가 있는가의 무력함에 대한 회의겠지요.


악령에 씌인 리건의 가정도 그렇습니다. 남편없이 혼자 딸을 키우는 크리스는 딸의 생일에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고 남편을 타박합니다. 가장의 부재는 가정의 흔들림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건의 어머니 크리스 맥닐이 찍는 영화도 대학생들이 정부가 개입을 하지 자율권을 달라고 합니다. 기존의 권위나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 흔들림 사이에 악령이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침입합니다.


영화를 보는 초기에 왜 그 악령들린 집에서 이사가지 않고 그 안에서 해결하는가 답답했습니다. 최소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구요. 하지만 이 영화는 문제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습니다.


현대 의학을 위시한 과학의 맹점은 너무 해부학적이고 가학적인데 있습니다. 리건의 이상행동에 대해 무조건 뇌의 문제라고 판단해 그 소녀의 목을 뚫고 뇌사진을 찍는 등 고문에 가까운 검사를 합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너무 많은 자연 파괴를 하고 생명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지요.


초자연적인 일에 대해 자연적인 의학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퇴마사인 데미안 신부가 투입되지요.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멀린 신부와 함께 구마활동을 합니다. 그들의 대화에서 데미안 신부가 "소녀에게서 3명을 발견했습니다."라는 말에 멀린 신부는 "한 명이네."라고 말합니다. 악령은 인정하지 않고 유일신을 믿는다는 듯. 카톨릭 사제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한다면 외부는 어떻든 자신의 신념을 밀고 가야겠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딸에게 얻어맞기까지 하지만 믿음을 잃지 않고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요.


리건의 악령이 데미안 신부를 자꾸 유혹하자 자꾸 흔들리던 데미안은 결국 그것을 껴안고 희생합니다. 그저 악령을 쫓아내는 내용이었다면 밋밋했을 텐데 자신을 극복하고 타인을 위하는 부분이 제작된 지 30년이 지나도 영화에 대한 감동을 주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덧붙임. 제가 영화 장르 중 가장 안 보는 장르가 공포물인데 이 영화는 그리 무섭지도 않고 갑자기 악한 존재가 튀어나오는 그런 장면은 없어서 좋습니다. 특히 '링'이나 '주온' 같은 영화에 비하면(링은 친구가 보자고 해서 극장에서 봤는데 1주일간 전등 켜놓고 잤습니다. 주온은 채널 돌리다가 보면 눈을 감고 채널을 바꿉니다) 별로 안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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