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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세트 - 전5권 ㅣ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오공훈 외 옮김 / 시공사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영롱하고도 감각적인 표지들이 아름답네요. 총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세트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낯선 땅 이방인』, 첫 휴고상 수상작인 『더블 스타』, 국내 최초 출간되는 하인라인 중단편 모음집 『하인라인 판타지』 등…. 그 구성만으로도 국내 사이언스픽션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와 함께 ‘세계 3대 SF 거장’이란 칭호를 지니고, 미국 SF 작가협회가 뽑은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라는 영예를 가진, 말 그대로 ‘레전드’ 작가입니다. 스티븐 킹, 커트 보네거트, 코니 윌리스, 폴 앤더슨, 톰 클랜시 등등의 엄청난 후배 작가들이 서슴없이 존경을 표현하는 거목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의 걸작선 다섯 권을 읽노라면, 어느새 이런 거창한 작가의 이력과 위상 따위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하인라인 특유의 속도감과 필치에 푹 빠진 채 몇 시간이고 책의 스토리를 탐닉하게 되는 거죠. 후대 SF 작가들에게 묻어있는 ‘하인라인의 흔적들’을 찾는 일은, 책장을 덮고 난 뒤에 따라오는 소소한 재미입니다.
여러분께도 로버트 하인라인 읽기의 재미를 작게나마 나눠드리고 싶군요. 여기선 그의 걸작선 다섯 권 중에서 8개의 문장을 골라 보았습니다. 80개의 금싸라기 같은 문장들에서 1/10로 줄이느라 괴로웠습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을 읽으세요, 여러분. (인생과 책에 대한) 묵은 체증과 지루함이 쑥 내려가리라고 감히 자신합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1)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쇼 비즈니스의 가장 오래된 금언이다. 아마 딱히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에는 보통 논리적 증명이 필요 없는 법이다.”
― 『더블 스타』, 59페이지
# 왕년엔 잘 나가던 퇴물 배우 로렌스 마이스가 정치적 음모와 투쟁이 얽힌 우주적 무대로 진출(?)하는 순간, 로렌스의 단상입니다. 『더블 스타』의 주인공은 까칠하고도 매력적인 성격을 지닌 배우인데요. 하인라인이 연극/영화 예술과 배우들의 작업에도 관심이 컸다는 게 소설 전반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2)
“만약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윤리적 기초가 존재한다면, 그 윤리는 화성인과 인류 모두에게 진리일 것이다. 어떤 항성 주변을 도는 어떤 행성에서도 진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결코 별을 지배하는 자리에 서지 못할 것이다. 보다 나은 다른 종족이 표리부동하다는 이유로 인류를 단죄할 테니까.”
― 『더블 스타』, 183페이지
# 서양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지배하고 수탈했던 역사의 경험처럼, 지구인이 우주인을, 또는 우주인이 지구인을 일방적으로 억압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먼 미래에 정말로 인간이 우주의 존재와 접촉한다면 피해갈 수 없는 ‘정치적 화두’가 되겠죠. 『더블 스타』에 아주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3)
“하지만 젠장, 아무리 난감한 일을 당해도 사람을 믿어야 해. 안 그러면 한쪽 눈을 뜨고 잠들어야 하는 동굴 속 은둔자와 다를 게 없지.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길은 없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거지. 숙명이야. 결국에는.”
― 『여름으로 가는 문』, 276페이지
#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힐 배신을 당했던 천재, 댄 데이비스. 그러나 그가 다시금 타인을 믿기로 결심하며 ― ‘여름으로 가는 문’을 택하면서 ―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결국은 숙명이라는군요.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4)
“마이크는 키스 솜씨는 없어요. 하지만 그는 키스할 때 다른 것을 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마이크의 온 우주가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해요. 그는 어떤 계획도 없고 아무데도 가지 않으니까요. 그저 키스만 하는 거죠. 정말 황홀한 경험이에요.”
― 『낯선 땅 이방인』, 341페이지
# 1960년대 미국 히피 운동의 성서(聖書)가 되었다는 SF 소설, 『낯선 땅 이방인』입니다. 마이크, 즉 밸런타인 마이클 스미스는 유인 우주선에서 태어나, 25년이 넘게 화성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오죠. 지구의 모든 일들을 낯설어 하는 화성인의 키스 솜씨가 저렇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5)
“사람들이 왜 웃는지 알아냈어요. 그건 상처받기 때문이에요. 상처받는 것을 멈추려면 웃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 『낯선 땅 이방인』, 591페이지
# 마이크가 ‘화성인’에서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인간의 웃음에 관한 마이크의, 즉 로버트 하인라인의 통찰은 이후에도 몇 페이지가 이어지는데 아주 흥미롭답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6)
“죽어가는 문화에는 반드시 개인적인 나태함이 포함되게 마련이네. 나쁜 행실, 타인에 대한 사소한 배려의 부족, 부드러운 태도의 상실은 폭동보다 더 심각한 증세야.”
― 『프라이데이』, 427페이지
# 로버트 하인라인은, 좋게 표현한다면 ‘건강한 개인주의’에 관한 강력한 신뢰를 자신의 모든 작품들 곳곳에 심어두고 있습니다. 하인라인에게 이 세계를 바꾸는 건 정부나 정치 집단이나 이익 단체가 아니라,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독립적인 ‘개인’입니다. 『프라이데이』에서도 워낙 잘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7)
“젠장, 어린아이는 자신의 여가 시간 전부를 우표 수집 따위에 쏟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 『하인라인 판타지』, 「월도」, 323페이지
# 천재는 외롭고 괴팍하다는 속설이 있는데, 근무력증을 앓으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등진 ‘월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위의 문장은 월도의 은인이자 삼촌 그라임스가 그를 안타까워하며 읊조리는 말입니다. 어린아이 월도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명문장(8)
“결국 사랑은 행복하게 끝나지 않는 법이니. 삶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희망과 공포가 풀려났기 때문에.”
― 『하인라인 판타지』, 「조너선 호그의 기분 나쁜 직업」, 419페이지
# 『하인라인 판타지』의 중/단편 8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중편 소설이었습니다. 작가가 작품 앞머리에 인용해 둔 찰스 스윈번의 시 구절 중 일부인데요. 「조너선 호그의 기분 나쁜 직업」의 분위기를 은근하고도 다소 오싹하게 요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인라인의 세계에선 다소 이질적이지만, 정말 멋진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