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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막 7장 그리고 그 후 -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홍정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11월
평점 :
완벽함을 추구했던 것일까? 나는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보면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을 잊을수가 없었다. 먼 고국에서 떠나와 미국이란 낯선 나라에 정착한것이 고등학교 1학년. 요즘 사람눈으로 보면 조금 늦은 유학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초우트 입학총장에게 기초부터 다시배우고 오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에게 포기란 없었다. 애비스쿨에서 1개월 반동안 독해, 작문, 회화를 부단히 공부해 세 과목 모두 A를 받아 다시 초우트로 돌아온다. 입학총장은 그의 잠재성을 믿고 그의 입학을 허락해 주었다. 어려서부터 그의 우상이었던 캐네디가 졸업한 고등학교 초우트. 부푼 꿈을 안고 그는 그렇게 삶의 1막을 시작했다.
그는 동양인이었기에 낯선 이국에서 적응을 하기가 무척어려웠다. 아직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그도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공부에 전념할 뿐이었다. 밤 10시 반은 기숙사의 소등시각이었다. 사감들이 순찰을 돌고 나면 11시가 되었다. 그는 그때가 지나면 몰래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그는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한다. 보통 새벽 2시까지 했으나 어느날은 아침 청소부가 올때까지 밤을 새서 공부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공부에 강한 열정을 가지고 그것에 임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의 영어담당 선생님께서 드디어 그에게 B라는 점수를 주신 것이다. 선생님이 그에게 하는 말이 단기간에 이렇게 영어실력이 좋아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읽고 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2학년이 된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게 된다. 학생회장 후보 10명 중 그가 추천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칠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생회장이 되는 길이 그리 쉬워보이지만은 않았다. 강력한 후보 4명은 모두 물량공세로 학생들의 표를 얻어가고 있었다. 그는 돈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거 당일날 아침, 후보들의 연설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운이 나빴던 것인지 햇빛이 강해 그는 안경을 벗을 수 밖에 없었다. 연설에서는 상대방을 보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한데 안경을 쓰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단상에 올랐다. 물론 준비한 연설문은 안경을 벗은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서 앉아있던 자리에 두고 온 뒤였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장한 탓인지 대중들을 보고 말하기가 힘들었던 그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대중효과'의 덕을 본 것인지 거침없이 말을 뱉어냈다. 그의 솔직한 발언은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물량공세가 아닌 한 사람의 말로 홍정욱은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심어주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가 당선이 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기차를 타 뉴욕에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그는 점점 활발해져갔다.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축구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에게 주장자리가 주어졌다. 최종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경기에 지더라도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았다.
고등학교 4학년 때 그는 한국 88올림픽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 과감하게 NBC수습기자로 나서게 된다. 그는 물론 올림픽에 관련된 일을 주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대학가의 데모촬영의 임무도 주어졌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 진통이 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학생들의 민주운동으로, 그것을 NBC가 놓칠리 없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학생들의 데모는 대체로 평화적인 것이었다. 그는 다급해져 직접 그들 사이로 들어가 왜 폭력적인 데모를 하지 않는다. 그때 어떤 학생이 그를 보고 '한국인이십니까?'하고 묻는다. 홍정욱은 나중에도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미국에서 조금 머물긴 했지만 한국인이 아닐리는 없었다. 겉으로 보나 속으로 보나 분명 한국인이 맞았다. 하지만 왜 한국인이라고 물었을까 생각하던 중 그는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한국인이 분명했다.
그는 하버드에 보내는 에세이를 책으로 만든다. 그의 일생을 정리한 것이었다. 다소 오만하게 비쳐질수 있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도전하고 드디어 하버드에 합격하게 된다. 캐네디의 뒷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뜻하지 않은 방황이 찾아오게 된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엔진도 속력을 줄였다. 공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덜 공부하고서도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겪고 있는 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 동안 그에게 방황을 즐길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오직 하버드에 가기 위해 그는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막상 하버드에 와보니 무상감이 밀려드는 것을 그는 억제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휴학계를 낸 뒤 한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그는 전국여행을 시작한다. 한달동안의 여행에서 그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을 알게 된다. 그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란은 그의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 문학과 철학에 심취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그의 일기를 통해 증명된다. 일기에는 온갖 문학적인 표현과 철학자들의 명언들이 포자해 있다. 한 사람의 감성이 이토록 섬세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름대로 일기를 쓰고 있긴 하지만 그의 일기를 보니 내 표현력이 자못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느날 한국으로 돌아온다. 서울대에 편입하기 위해서 였다. 1년동안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새삼 우정이라는 것을 다시 절감하게 된다. 또 그는 어느날 갑작스레 북경으로 떠난다. 북경대에서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석사학위 1년을 남겨두고 하버드로 돌아온다. 젊은 시절 1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기가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에게 또다시 졸업의 순간이 찾아온다. 꽤 오래전부터 그는 졸업논문 준비에 한창이었다. 주제는 현대사회의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자료의 절대 부족을 절감하고 베이징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무려 150명의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80권의 책을 참고하며 기초자료를 수집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논문은 그 분야에서 탁월성을 인정받는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게다가 토머스 홉킨스상을 받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경외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서 그가 누누이 강조했던 '야먕'을 잊을 수도 없다.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 그가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또 그는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자신처럼 되는 것을 싫다고 하였다. 인생에 옳은 길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격려가 되고, 또 그의 야망이 그들에게 소중한 꿈을 키워 줄 수만 있다면 그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 '꿈'과 '야망' 그리고 '노력'을 다했던 홍정욱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누구나 '꿈'을 꾸고 '야망'을 가진다. 하지만 문제는 '노력'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노력'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배운다. 일찍이 맹자는 지성을 다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노력하는 자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것은 가장 평범한 진리이면서 또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