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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ㅣ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외수씨의 '들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책장에 오래 꽂혀 있던 것을 어느날 꺼내 읽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것이 냄새가 좋았다. '~있읍니다.'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카페에 앉은 두 남녀의 언어유희로 시작하는 소설은 끝까지 그 두 남녀를 중심으로 그린다. 주인공 남자는 폐교이자 작업장인 교실에서 들개 99마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그리고 죽는다. 탄탄한 구성이었고, 읽고 나서도 호흡이 긴 소설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의 소설 괴물을 읽었다. 총 두권이었는데 이틀에 걸쳐 읽었다. 고속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혼란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읽고나니 그게 끝이었다. 터널 하나 슥 지나간 기분이었다.
분명 재미있었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었다. 이런 구성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와 비슷한 것이었다. 읽을수록 등장인물들이 어느새 하나 둘 씩 늘어났다. 나중에는 읽다가 어떤 이름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곰곰히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생각이 나면 분명 이전에 나온 인물이었다. 아직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 박경리의 '토지'는 인물집도 따로 있을 정도다. - 소설을 읽은 경험이 별로 없었다.
다 좋았는데 결말이 조금 허무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말이 확실히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필우와 그녀의 관계는 막 발전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뚝 끊겼다. 소설의 주인공 전진철이 죽었기 때문이다. 또 박경서를 좋아하는 빨간솔개가 왜 빨간솔개인지 분명히 밝히지도 않았다. 분명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을태에게 나중에 그 사실을 말해주겠다고 했다. 기대하고 읽었는데 또 전진철이 죽음으로써 이야기가 뚝 끊긴다. 한길서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진랑호에서 선주 진랑과 풍류를 즐기던 중 그가 잠든사이 수습기녀가 진노인이 왔음을 알린다. 그는 한길서가 매우 만나고 싶어했던 인물이었다. 선주 윤나연도 그둘의 만남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는 일은 없다. 전진철이 죽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전진철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를 전개하면서 나머지 에피소드에는 신경을 조금 덜 쓴 것 같았다. 나는 확실한 결말을 원했는데 그나마 찾은 결말이라고는 전진철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이런 생각으로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소설이 진행되는 사이 조금씩 잊혀지고 잊혀지고 하면서 결국에는 중심이야기가 결말을 보면서 모두 잊혀지길 기대했던 것은 아닌지 감히 추측해 본다.
아무튼 기괴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