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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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
리처드 니스벳 지음

처음부터 읽으려고 집은 책은 아니었다.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에 우연히 발견하여 빌려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동양과 서양의 사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관심만 많았지 실제로 아는 것은 별로 없는 편이다.

이 책은 겉보기엔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사례와 연구가 다양해서 읽기가 쉽다. 읽기 쉬운 반면에 제시된 사례들이 계속 공통된 말을 해서 조금 지루한 면도 있다. 내가 이해한 것은 동양사람들은 전체 속에서 나를 보며, 서양사람들은 내면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을 때 보통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혹은 자신의 지위를 통해서 이야기하기 쉽다. 예를 들면 나는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든지 나는 회사에 맡은 일을 잘 해낸다든지 하는 식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성격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해바라기에 대한 인식부분이다. 번역본 139p에 나와 있는 실험이다. 실험 대상은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들이며 표적 사물과 집단 1, 집단 2의 그림이 주어져 있다. 문제는 이 표적사물이 집단1과 집단2 중 어느 집단과 더 비슷한지 각 나라의 대학생들에게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집단 1은 모두 다 다른 해바라기 그림이지만 한 송이를 빼고는 표적사물과 같이 꽃잎이 둥글다. 반면 집단 2는 한 송이의 꽃만 표적사물과 꽃잎이 같고 공통점이라면 줄기가 굵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접하고 주저 없이 집단 1을 선택했다. 책에 나온 것을 보니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반면에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은 집단 2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학생들이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집단 1을 택했다면, 미국 학생들은 ‘줄기가 직선이다’라는 ‘규칙’에 의하여 집단 2를 택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에 비해 규칙을 만들고 사물을 범주화하는 데 더 익숙함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읽는 내내 내가 가장 의문스러웠던 부분은 ‘그래, 그런 동서양인의 사고방식 차이가 그럼 왜 생기는 건데?’하는 거였다. 공자가 그렇게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말했다는 데 그건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들도 분명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이런 사고방식의 차이에 증거는 되지만 이유는 못 된다.

그러던 중 나는 이 책의 7장에서야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동서양 사고 방식 차이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은 고대 중국과 그리스의 서로 다른 생태환경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에 덧붙여 사고과정, 인식론, 주의, 사회구조, 경제, 생태학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발생시키는 동서양 사고 방식의 차이를 짤막하나마 흥미롭게 이야기 해준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7장 부분이 사실은 원서에서 2장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고 밝힌다. 그 이유는 이 부분이 다소 추상적이고 어려울 수 있어 뒤로 옮겼다는 것이다. 원서의 목차대로 번역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며, 이 두 문화의 통합이 각 문화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보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사족이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책 말미에 나와있는 참고문헌의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과연 이 많은 책을 다 읽고 참고하였을까 하는- 물론 다 읽고 참고했겠지만, -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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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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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씨의 '들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책장에 오래 꽂혀 있던 것을 어느날 꺼내 읽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것이 냄새가 좋았다. '~있읍니다.'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카페에 앉은 두 남녀의 언어유희로 시작하는 소설은 끝까지 그 두 남녀를 중심으로 그린다. 주인공 남자는 폐교이자 작업장인 교실에서 들개 99마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그리고 죽는다. 탄탄한 구성이었고, 읽고 나서도 호흡이 긴 소설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의 소설 괴물을 읽었다. 총 두권이었는데 이틀에 걸쳐 읽었다. 고속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혼란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읽고나니 그게 끝이었다. 터널 하나 슥 지나간 기분이었다.

  분명 재미있었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었다. 이런 구성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와 비슷한 것이었다. 읽을수록 등장인물들이 어느새 하나 둘 씩 늘어났다. 나중에는 읽다가 어떤 이름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곰곰히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생각이 나면 분명 이전에 나온 인물이었다. 아직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 박경리의 '토지'는 인물집도 따로 있을 정도다. - 소설을 읽은 경험이 별로 없었다.

  다 좋았는데 결말이 조금 허무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말이 확실히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필우와 그녀의 관계는 막 발전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뚝 끊겼다. 소설의 주인공 전진철이 죽었기 때문이다. 또 박경서를 좋아하는 빨간솔개가 왜 빨간솔개인지 분명히 밝히지도 않았다. 분명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을태에게 나중에 그 사실을 말해주겠다고 했다. 기대하고 읽었는데 또 전진철이 죽음으로써 이야기가 뚝 끊긴다. 한길서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진랑호에서 선주 진랑과 풍류를 즐기던 중 그가 잠든사이 수습기녀가 진노인이 왔음을 알린다. 그는 한길서가 매우 만나고 싶어했던 인물이었다. 선주 윤나연도 그둘의 만남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는 일은 없다. 전진철이 죽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전진철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를 전개하면서 나머지 에피소드에는 신경을 조금 덜 쓴 것 같았다. 나는 확실한 결말을 원했는데 그나마 찾은 결말이라고는 전진철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이런 생각으로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소설이 진행되는 사이 조금씩 잊혀지고 잊혀지고 하면서 결국에는 중심이야기가 결말을 보면서 모두 잊혀지길 기대했던 것은 아닌지 감히 추측해 본다.

  아무튼 기괴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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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막 7장 그리고 그 후 -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홍정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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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함을 추구했던 것일까? 나는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보면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을 잊을수가 없었다. 먼 고국에서 떠나와 미국이란 낯선 나라에 정착한것이 고등학교 1학년. 요즘 사람눈으로 보면 조금 늦은 유학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초우트 입학총장에게 기초부터 다시배우고 오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에게 포기란 없었다. 애비스쿨에서 1개월 반동안 독해, 작문, 회화를 부단히 공부해 세 과목 모두 A를 받아 다시 초우트로 돌아온다. 입학총장은 그의 잠재성을 믿고 그의 입학을 허락해 주었다. 어려서부터 그의 우상이었던 캐네디가 졸업한 고등학교 초우트. 부푼 꿈을 안고 그는 그렇게 삶의 1막을 시작했다.

  그는 동양인이었기에 낯선 이국에서 적응을 하기가 무척어려웠다. 아직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그도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공부에 전념할 뿐이었다. 밤 10시 반은 기숙사의 소등시각이었다. 사감들이 순찰을 돌고 나면 11시가 되었다. 그는 그때가 지나면 몰래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그는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한다. 보통 새벽 2시까지 했으나 어느날은 아침 청소부가 올때까지 밤을 새서 공부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공부에 강한 열정을 가지고 그것에 임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의 영어담당 선생님께서 드디어 그에게 B라는 점수를 주신 것이다. 선생님이 그에게 하는 말이 단기간에 이렇게 영어실력이 좋아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읽고 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2학년이 된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게 된다. 학생회장 후보 10명 중 그가 추천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칠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생회장이 되는 길이 그리 쉬워보이지만은 않았다. 강력한 후보 4명은 모두 물량공세로 학생들의 표를 얻어가고 있었다. 그는 돈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거 당일날 아침, 후보들의 연설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운이 나빴던 것인지 햇빛이 강해 그는 안경을 벗을 수 밖에 없었다. 연설에서는 상대방을 보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한데 안경을 쓰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단상에 올랐다. 물론 준비한 연설문은 안경을 벗은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서 앉아있던 자리에 두고 온 뒤였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장한 탓인지 대중들을 보고 말하기가 힘들었던 그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대중효과'의 덕을 본 것인지 거침없이 말을 뱉어냈다. 그의 솔직한 발언은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물량공세가 아닌 한 사람의 말로 홍정욱은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심어주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가 당선이 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기차를 타 뉴욕에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그는 점점 활발해져갔다.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축구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에게 주장자리가 주어졌다. 최종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경기에 지더라도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았다.

  고등학교 4학년 때 그는 한국 88올림픽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 과감하게 NBC수습기자로 나서게 된다. 그는 물론 올림픽에 관련된 일을 주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대학가의 데모촬영의 임무도 주어졌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 진통이 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학생들의 민주운동으로, 그것을 NBC가 놓칠리 없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학생들의 데모는 대체로 평화적인 것이었다. 그는 다급해져 직접 그들 사이로 들어가 왜 폭력적인 데모를 하지 않는다. 그때 어떤 학생이 그를 보고 '한국인이십니까?'하고 묻는다. 홍정욱은 나중에도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미국에서 조금 머물긴 했지만 한국인이 아닐리는 없었다. 겉으로 보나 속으로 보나 분명 한국인이 맞았다. 하지만 왜 한국인이라고 물었을까 생각하던 중 그는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한국인이 분명했다.

  그는 하버드에 보내는 에세이를 책으로 만든다. 그의 일생을 정리한 것이었다. 다소 오만하게 비쳐질수 있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도전하고 드디어 하버드에 합격하게 된다. 캐네디의 뒷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뜻하지 않은 방황이 찾아오게 된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엔진도 속력을 줄였다. 공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덜 공부하고서도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겪고 있는 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 동안 그에게 방황을 즐길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오직 하버드에 가기 위해 그는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막상 하버드에 와보니 무상감이 밀려드는 것을 그는 억제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휴학계를 낸 뒤 한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그는 전국여행을 시작한다. 한달동안의 여행에서 그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을 알게 된다. 그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란은 그의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 문학과 철학에 심취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그의 일기를 통해 증명된다. 일기에는 온갖 문학적인 표현과 철학자들의 명언들이 포자해 있다. 한 사람의 감성이 이토록 섬세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름대로 일기를 쓰고 있긴 하지만 그의 일기를 보니 내 표현력이 자못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느날 한국으로 돌아온다. 서울대에 편입하기 위해서 였다. 1년동안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새삼 우정이라는 것을 다시 절감하게 된다. 또 그는 어느날 갑작스레 북경으로 떠난다. 북경대에서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석사학위 1년을 남겨두고 하버드로 돌아온다. 젊은 시절 1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기가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에게 또다시 졸업의 순간이 찾아온다. 꽤 오래전부터 그는 졸업논문 준비에 한창이었다. 주제는 현대사회의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자료의 절대 부족을 절감하고 베이징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무려 150명의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80권의 책을 참고하며 기초자료를 수집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논문은 그 분야에서 탁월성을 인정받는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게다가 토머스 홉킨스상을 받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경외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서 그가 누누이 강조했던 '야먕'을 잊을 수도 없다.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 그가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또 그는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자신처럼 되는 것을 싫다고 하였다. 인생에 옳은 길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격려가 되고, 또 그의 야망이 그들에게 소중한 꿈을 키워 줄 수만 있다면 그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 '꿈'과 '야망' 그리고 '노력'을 다했던 홍정욱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누구나 '꿈'을 꾸고 '야망'을 가진다. 하지만 문제는 '노력'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노력'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배운다. 일찍이 맹자는 지성을 다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노력하는 자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것은 가장 평범한 진리이면서 또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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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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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친구의 추천때문이었다. 친구는 평소에도 고전문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주로 보통 애들이 읽는 책들은 읽지 않았다.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책, 역사에 오랫동안 남을 책등을 읽은 친구가 자신있게 추천해 준 책이었기에 나는 믿고 읽었다. 이것이 고전소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번역체투가 불러일으키는 답답함 때문인지 처음에는 읽기가 다소 힘들었다. 짧은 글 속에 많은 내용이 담겨 있으니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하지만 곧 대화체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소설을 읽는 것은 순풍에 돛 단 듯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나'는 소설가다. 여류소설가인 '나'는 스트릭랜드의 부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를 통해 스트릭랜드라는 인간을 알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무척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얼굴은 창백한데다가 큰 덩치에 비해서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그런 그가 어느날 부인과 자식들을 두고 프랑스 파리로 휙 떠나가 버린다. 잘나가던 증권중개인이었던 그가 홀연히 떠나간 것을 두고 혹자는 여자와 바람이 맞아 떠났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고, 그의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한없이 지조있고 교양도 갖췄다고 생각했던 부인의 모습이 일순간 바뀌는 것도 이 순간이다. 스트릭랜드가 떠나자 그는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나'도 수긍이 가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사실 확인도 할 겸 부인의 부탁을 받아 프랑스 파리에 그가 있다는 호텔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파리에서 스트릭랜드는 허름한 호텔에서 만나는 사람없이 사흘동안 갇혀 지내고 있었다. 그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나'는 뜻밖에도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나왔다는 사실을 직접 듣고 그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된다. 나이 마흔에 접어든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나'는 그를 붙잡교 몇 시간이고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해보지만 그의 무관심은 그들 가족에 대한 생각을 철저히 외면한 지 오래였다. 하는 수 없이 런던으로 돌아온 '나'는 그 사실을 스트릭랜드의 부인에게 전하고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나'는 삶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음을 느끼고 아무 계획도 없이 프랑스로 떠난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스트릭랜드가 살고 있는 파리였다. 그곳에서 2주쯤 지나고 나서 '나'는 정말 우연하게도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옛친구 스트로브도 만나게 된다.

  먼저 스트로브는 그림을 그리는 친구였다. 그림에 대한 안목도 탁월하고 비판적인 식견도 훌륭했으나 그는 그런 위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인지 그는 줄곧 돈이 될 만한, 그것도 푼돈이나 벌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들은 '내'가 보기에도 썩 잘그린 그림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예쁜 부인을 두었고 그것을 신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침착하고 말을 아끼는 그녀는 '내'가 봐도 괜찮은 여자였다. 그들둘은 행복한 부부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느날 '내'가 스트로브에게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어봤다. 그는 '내'가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자신이 아는 한 그는 천재라고 말한다. '나'는 스트릭랜드의 형편없는 그림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럴리가 없다고 하지만 친구는 훗날 분명 그의 그림값이 수백만 프랑으로 뛸 것을 확신했다. 그만큼 그가 대단한 미술가라는 것이다.

  카페에도 돌아다니며 체스도 두고하는 사이 스트릭랜드와 조금의 친분을 가진 '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딱 잘라 거절당한다. 자신의 그림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스트릭랜드가 몹시 아파 스트로브의 은거지로 오게 된다. 스트로브의 부인이 몹시 반대했지만 결국 스트로브가 무슨 예기를 하자 알았다며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허락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몇 주 지나는 동안 그는 스트릭랜드에게 자신의 화실을 빼앗기고 그림을 그릴수도 없게 됐다. '나'는 그가 멍청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스트로브는 그의 부인이 스트릭랜드를 따라 집을 나갔을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나'에게 간곡한 도움을 청한다. '나'는 스트로브와 그의 부인은 떼어 놓고라도, 남의 부인을 빼앗아 간 스트릭랜드에게서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몇일 지나지도 않아서 스트로브의 부인은 음독자살을 하게 되고 '나'는 뜻하지 않게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마음의 동요없이 모든일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의 무관심과 양심은 대중의 기대를 벗어난 것이었기에 '나'는 그를 구제 불능이라 여긴다. 헌데 그는 뜻밖에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대뜸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참아오르는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나'는 그의 화실로 들어섰고 그는 차근차근 한 작품씩 총 30여점을 '나'에게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그림에서 예술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비평가는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그림에 식견이 있었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예술성의 그 무엇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었다. 허나 '나'는 한가지 확실한 것을 발견해 낸다. 그것의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미친듯이 그리는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직 그리는 것에 대한 본능만이 그의 손을 놀려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렇게 '나'는 그의 집을 나서고 그와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후일담으로 '나'는 그가 여생을 바쳤던 섬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그에 관한 여러 소식을 전해 듣는다. 문둥병에 걸렸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 그는 결국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뜨게 된다.

 

  서머싯 몸은 고갱을 모티브로 삼아 스트릭랜드를 그렸다고 말했다. 어쩐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사람 스트릭랜드가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실제 삶도 비슷하게 그려졌다. 고갱도 증권중개사로 나이가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갱은 가족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것을 포기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무슨 생각으로 만들어 냈을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길을 알았고 또 그것에 충실했다. 예술외의 것을 하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고 말했던 그에게서 나는 문득 솟아오르는 경외심을 감출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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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 거꾸로 읽는 책 22
유시주 지음 / 푸른나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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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느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매우 다르다. 그것은 신화와 현실의 문제를 연결시켜 생각한 것은 담은, 아주 먹음직스러운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보았는가. 아니 진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보았는가. 이 책을 읽고 현세를 보자. 특히 이 책에서 추천되는 '시지프스의 신화'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정말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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