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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친구의 추천때문이었다. 친구는 평소에도 고전문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주로 보통 애들이 읽는 책들은 읽지 않았다.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책, 역사에 오랫동안 남을 책등을 읽은 친구가 자신있게 추천해 준 책이었기에 나는 믿고 읽었다. 이것이 고전소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번역체투가 불러일으키는 답답함 때문인지 처음에는 읽기가 다소 힘들었다. 짧은 글 속에 많은 내용이 담겨 있으니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하지만 곧 대화체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소설을 읽는 것은 순풍에 돛 단 듯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나'는 소설가다. 여류소설가인 '나'는 스트릭랜드의 부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를 통해 스트릭랜드라는 인간을 알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무척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얼굴은 창백한데다가 큰 덩치에 비해서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그런 그가 어느날 부인과 자식들을 두고 프랑스 파리로 휙 떠나가 버린다. 잘나가던 증권중개인이었던 그가 홀연히 떠나간 것을 두고 혹자는 여자와 바람이 맞아 떠났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고, 그의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한없이 지조있고 교양도 갖췄다고 생각했던 부인의 모습이 일순간 바뀌는 것도 이 순간이다. 스트릭랜드가 떠나자 그는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나'도 수긍이 가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사실 확인도 할 겸 부인의 부탁을 받아 프랑스 파리에 그가 있다는 호텔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파리에서 스트릭랜드는 허름한 호텔에서 만나는 사람없이 사흘동안 갇혀 지내고 있었다. 그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나'는 뜻밖에도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나왔다는 사실을 직접 듣고 그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된다. 나이 마흔에 접어든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나'는 그를 붙잡교 몇 시간이고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해보지만 그의 무관심은 그들 가족에 대한 생각을 철저히 외면한 지 오래였다. 하는 수 없이 런던으로 돌아온 '나'는 그 사실을 스트릭랜드의 부인에게 전하고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나'는 삶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음을 느끼고 아무 계획도 없이 프랑스로 떠난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스트릭랜드가 살고 있는 파리였다. 그곳에서 2주쯤 지나고 나서 '나'는 정말 우연하게도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옛친구 스트로브도 만나게 된다.
먼저 스트로브는 그림을 그리는 친구였다. 그림에 대한 안목도 탁월하고 비판적인 식견도 훌륭했으나 그는 그런 위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인지 그는 줄곧 돈이 될 만한, 그것도 푼돈이나 벌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들은 '내'가 보기에도 썩 잘그린 그림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예쁜 부인을 두었고 그것을 신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침착하고 말을 아끼는 그녀는 '내'가 봐도 괜찮은 여자였다. 그들둘은 행복한 부부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느날 '내'가 스트로브에게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어봤다. 그는 '내'가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자신이 아는 한 그는 천재라고 말한다. '나'는 스트릭랜드의 형편없는 그림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럴리가 없다고 하지만 친구는 훗날 분명 그의 그림값이 수백만 프랑으로 뛸 것을 확신했다. 그만큼 그가 대단한 미술가라는 것이다.
카페에도 돌아다니며 체스도 두고하는 사이 스트릭랜드와 조금의 친분을 가진 '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딱 잘라 거절당한다. 자신의 그림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스트릭랜드가 몹시 아파 스트로브의 은거지로 오게 된다. 스트로브의 부인이 몹시 반대했지만 결국 스트로브가 무슨 예기를 하자 알았다며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허락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몇 주 지나는 동안 그는 스트릭랜드에게 자신의 화실을 빼앗기고 그림을 그릴수도 없게 됐다. '나'는 그가 멍청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스트로브는 그의 부인이 스트릭랜드를 따라 집을 나갔을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나'에게 간곡한 도움을 청한다. '나'는 스트로브와 그의 부인은 떼어 놓고라도, 남의 부인을 빼앗아 간 스트릭랜드에게서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몇일 지나지도 않아서 스트로브의 부인은 음독자살을 하게 되고 '나'는 뜻하지 않게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마음의 동요없이 모든일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의 무관심과 양심은 대중의 기대를 벗어난 것이었기에 '나'는 그를 구제 불능이라 여긴다. 헌데 그는 뜻밖에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대뜸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참아오르는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나'는 그의 화실로 들어섰고 그는 차근차근 한 작품씩 총 30여점을 '나'에게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그림에서 예술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비평가는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그림에 식견이 있었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예술성의 그 무엇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었다. 허나 '나'는 한가지 확실한 것을 발견해 낸다. 그것의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미친듯이 그리는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직 그리는 것에 대한 본능만이 그의 손을 놀려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렇게 '나'는 그의 집을 나서고 그와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후일담으로 '나'는 그가 여생을 바쳤던 섬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그에 관한 여러 소식을 전해 듣는다. 문둥병에 걸렸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 그는 결국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뜨게 된다.
서머싯 몸은 고갱을 모티브로 삼아 스트릭랜드를 그렸다고 말했다. 어쩐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사람 스트릭랜드가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실제 삶도 비슷하게 그려졌다. 고갱도 증권중개사로 나이가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갱은 가족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것을 포기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무슨 생각으로 만들어 냈을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길을 알았고 또 그것에 충실했다. 예술외의 것을 하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고 말했던 그에게서 나는 문득 솟아오르는 경외심을 감출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