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코 지음, 이지민 옮김, 한정우 감수 / SISO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이 시스터즈 키퍼


뉴욕 타임즈 소설분야 베스트 셀러 1위

2008년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 별" 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9년이 지난 지금 2017년 오역들을 보완하여 "마이 시스터즈 키퍼" 리뉴얼 버전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더욱 완성도 있는 책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다. 2009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네이버 평점 9점을 받았다. 영화에서 보인 감동은 탄탄한 원작 소설의 기반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생명 윤리"에 대한 논란의 이 소설은 그간 많은 이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각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면 그 선택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 선택이 "생명 윤리" 문제와 연관 된다면 더욱 어렵다.

"저는 두 아이 모두를 사랑해요." 내가 풀어야 하는 방정식이다. (p224)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다. 하나의 인격이 형성되기까지 수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올바른 가치관은 어디까지나 사회 안에서 타협에 의해 형성된 보이지 않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과연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관성이 전혀 없을 수도 있지만 '착한 사마리아 법'이 문득 떠올랐다. 방관자에 대한 처벌도 존재하는데 자신의 아이의 병을 모른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입장에서 그 누군가에게 힘든 선택일지라도 놓을 수 없는 그 끈,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가 되니 더욱 안타깝다.


벽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를 위해 태어난 동생 안나.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안나는 케이트를 위해 제대혈, 줄기세포, 백혈구, 골수 등 케이트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언니를 위해 태어난 안나는 다른 10대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여느 10대들과 같은 삶을 살고픈 안나는 13살이 되어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특히 안나에게 많은 공감이 되었다. 언니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피해를 받은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다른 형제,자매와 사소하게 비교되는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안나를 보자.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꼈다.

소설이 아닌 실제라 할지라도 충분히 가능할 것만 같은 설정이다. 당장은 여러 윤리적 문제와 현실적 문제로 벌어지지 않을 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 혹은 100년 후의 세상에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고 만연하다면, 정말로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떠할까. 이 소설 속의 일이 현실이 될 날도 충분히 가능하다.

안나의 입장이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의 행동과 선택들이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도 전혀 공감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보다 어린 나이였다면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부모의 모습이 아이를 가진 현재의 시점에서는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안나의 부모가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의 폭이 예전보다 조금 넓어졌다는 정도라 생각한다. 방법은 잘못 되었다지만 아픈 아이를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못한 결말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소설 자체가 실제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제나 행복한 결말들을 봐온 탓인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문제인가. 쉽사리 결말을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결국은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작가의 의도였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덧붙임1)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대학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첫째 아이가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었다. 첫째 장남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몸이다. 일상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언어 부분의 약간의 장애를 가진 엄마는 첫째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하지만 둘째 여자 아이와 아빠 또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착한 동생, 착실한 아빠가 된다. 애정이 그리운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생으로 유난스레 밝고 다른 사람들을 잘 따랐다. 둘째 아이의 모습에서 안나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가 강요하지 않았을지라도 자연스럽게 희생이 강요되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둘째에게 오빠는 어떤 존재였을까. 사랑하지만 희생이 강요되었기에 내면의 불만이 쌓였을지 모른다. 항상 바르고 착하지만 그 아이가 걱정되었다. 가족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그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도 없을 것만 같다.

(덧붙임2)
영화 "아일랜드"는 인간 복제에 대한 생명 윤리에 대해 꼬집는 SF영화다. 본체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복제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가 사용 시기가 되었을 때 본체를 위해 희생되는 엄청난 반전의 영화였다. 그 즈음부터 였을거다. 생명 윤리의 어려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바로 이 영화에서 였다. 그 당시에도 역시 쉽지 않았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기본 윤리가 존재하는 한 그 어떤 목적으로든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