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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 - 황선미 첫 번째 에세이
황선미 지음 / 예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
황선미 첫번째 에세이집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
첫번째 에세이집이라는 말에 속아선 안된다. 초보작가가 낸 첫 작품이라고 오해하면 안된다. 그러한 점을 노린 것일까? 초보인 척 독자들의 뒷통수를 칠 요량일지도 모른다. 황선미 작가는 이미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모두가 한 번은 들어봤을 제목이다. 2000년에 출간되어 160만부가 팔린 책이다. 물론 동화이지만 운 좋게 사랑받은 것만은 아니다. 그녀의 내공이 담겨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황선미 작가는 진정한 베테랑임을.
작가 황선미는 마흔 일곱 동갑 내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다. 동화 작가로 활동하며 그간 써온 글들을 모아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366페이지의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는 작가로도 살고 촌부로도 살고 아내로도 어머니로도 산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다. (p97)
요즘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하는 소설보다 생각날 때 문득문득 부담없이 펼치는 에세이집에 손이 더 간다. 만남에 부담이 없는 친구를 보는 느낌이랄까? 불편한 느낌이 없고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존재다. 이런 에세이집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의 삶을 엿보는 느낌도 든다. 앞에 마주앉아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 듣다가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내일 못다들은 이야기를 이어서 들을 수 있다. 조급하지 않고 여유롭다. 에세이집의 매력에 이미 빠져버렸다.
겉으로 보기에 시골은 평온하다. 사람들이 순하고 넉넉하고 정이 넘친다는 편견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 시골 생활 첫해의 슬픈 그림이 이웃집 농부였다는 사실은 아마다 잊기 어려울 것 같다.(p109)
이웃집 농부 이야기는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귀농 후 이웃집의 농부 아저씨가 제초제를 먹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온하고 무탈하다 생각한 시골도 결국은 사람사는 곳이다. 각자의 설움이 있고 말 못할 고통이 있다. 일찍 친구가 되었더라면 괜찮았을까 하는 의미없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감당키 힘든 상황이라도 일상은 이어지고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이란
공기와 같은 축복임을 때닫는다. (p154)
친구가 김치통을 돌려주며 석류를 건낸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의 남편은 항암치료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울먹이는 친구를 별스레 위로하진 않는다. 메마르고 단단한 석류 껍질 안에 알알이 반짝이는 석류를 먹으며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나를 위해 빈 자취방 연탄불을 피우고 간 스물 두살이었던 친구를.
황선미 작가, 그녀의 작가로서의 생각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니 나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거라는 나의 착각을 송두리채 앗아갔다. 3부의 "어른의 꿈도 진행 중" 부분에서는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힘든 출판 시장과 강연과 간간히 들어오는 인세를 제외하고는 넉넉하지 않다. 고독하고 쓸쓸함이 느껴진다.
무심한 듯 툭툭 내던지는 그녀의 화법이 매력적이다. 가볍게 시작하지만 결고 가볍지 않은 글들이다. 아무 생각없이 읽다가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 시간 생각을 했다.
에세이의 매력이 푹 빠졌다. 짧은 단편 이야기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야기의 몰입을 위해 등장인물들을 파악해야 하는 수고가 없으며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녀를 통해 전해 듣는다. 카페에서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떠는 느낌이랄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런 친구와 같은 존재를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