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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평점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전작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들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책 두께가 얇고 크기도 작은 편이다. 글도 많지 않고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있어 부담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부담없이 펼친 책인데 그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치매로 세상과 이별 중인 할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만의 공간 속에서 할아버지는 손자 노아와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의 공간은 할아버지의 머릿 속. 그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 할아버지와 노아는 공간 속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상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묵직하고도 어려운 주제를 프레드릭 배크만은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치매라는 병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아름다운 동화 속에서 이별을 준비한다. 할머니와의 추억, 아들과의 추억, 손자와의 대화들. 수학을 좋아하고 유머가 서로 통하는 할아버지와 손자 노아노아. 노아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에요, 할아버지?~(p74)"
수학과 나침반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할아버지. 수학으로 한 때 잘나갔던 할아버지이지만 지금은 손자에게 이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가 가장 어렵다.
젊은 우리와는 다른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주변에 치매로 인해 고통받고 힘든 가족들이 많다. 동화같이 아름다울 수만도 없는 현실이 있기에 사실 책 내용에 반감이 들지 모르겠다. 힘든 현실은 잠시 내려놓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넓은 아량이 필요한 순간이다.
내용은 짧은 소설이지만 그 깊이가 남다르다. 단 한 번만 읽고서 그 구절의 속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할아버지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인지 할아버지 공간 속의 이야기인지 간혹 분간하기 어렵다. 치매로 인해 혼란스럽고 지금 어디인지 모르겠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일까. 한 구절 하나 하나 그 내용을 깊게 되새김질하며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p103)"
할아버지의 대답이다. 머리속이 아픈 할아버지에게 노아는 어떠한 기분이냐고 물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기분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공포심마저 잃어버린 그 기분은 과연 어떠할까. 그 고통, 힘듦은 가늠해볼 수 있지만 명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상황이 된 사람만이 아는 공포심에 대해 조심스레 생각해 볼 수 있다.
"할아버지랑 같이 길을 걸어드리면 되지.
같이 있어드리면 되지. (p151)"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 많지 않다. 할아버지와 그저 함께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마저도 쉽지 않음은 현실이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이렇게 묵직하다. 모든 게 사라지는 할어버지는 노아의 손을 꼭 붙잡는다.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싶은 마음에 노아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