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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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책 속의 주인공 강무순을 만나보고 싶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항상 고민이 된다. 나에게 재미있는 책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과감하게 추천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재미있고 마지막까지 재미있다. 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반열에서 이미 이름난 박연선 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을 재미있게 쓴다는 말이 바로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긴장감을 유지한 채 재미를 더한 시나리오는 마지막까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극적인 순간, 한 장이 끝나는 시점에 예상치 못한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진 채 그 장을 마감한다. 드라마 한 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 주로 쓰는 그 기법이 이 책에도 적용되어 있다. 잠들기 전에 잠깐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장까지만 보고 자야지"를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내뿜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고 잘 수 없도록 만들어 그 뒤가 궁금해 미치게 만드는 극작가만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할머니 '홍간난' 여사, 할머니가 걱정되는 아들딸들은 삼수생인 손녀 강무순을 할머니 댁에 남겨둔채 몰래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졸지에 시골 오지에서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강무순은 무료하다. 무료한 강무순에게 보물지도가 나타난다. 6살 강무순이 남겨 놓은 보물지도!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안 난다. 무료하고 심심했던 강무순에게 보물지도는 재미난 놀잇감이다.


보물지도를 따라 땅 속의 보물을 꺼내고자 경산 유씨 종갓집 문 앞에서 땅을 파다가 좀도둑으로 오해를 받는다. 종갓집 외동아들 '꽃돌이'로 부터. 잘생겨서 '꽃돌이'다. 보물함을 열어보니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자전거탄 남자 목각인형을 발견하게 된다. 보물함에 담긴 물건들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15년 전 사건이 재조명된다. 네 명의 소녀가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 마을 어른들은 모두 온천으로 관광을 떠난 날이다. 그 당시 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수많은 경찰, 과학수사대, 무당 등이 동원되었지만 단서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는 그 사건! 15년 동안 미제로 남은 두왕리 네 소녀 실종 사건.


강무순, 꽃돌이, 홍간난 여사, 이렇게 세 사람은 사건을 하나하나 파 헤쳐 나간다. 단서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단서들을 통해 다른 단서를 찾아내고, 서서히 감춰진 사실들이 드러난다. 막무가내 4차원, 호기심 충만인 강무순과 경험 충만, 무대포, 직설 발언의 홍간난 여사, 인맥과 센스, 얼굴까지 무장한 꽃돌이의 조합은 막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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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의 소설은 번역된 외국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이 책이 영어를 포함한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다른 나라에 출간된다면 이 맛깔나는 표현들을 다 소화시킬 수 없다. 한국 특유의 표현들, 사투리, 정감어린 느낌들은 번역이 불가하다. 특히 이 소설에서 사용된 작가의 독특한 표현들은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하고 시골의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욕쟁이 할머니의 정이 담긴 욕을 어찌 번역할 수 있으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읽기가 정말 아쉬웠다.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강무순, 홍간난 여사, 꽃돌이와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책 속의 주인공 강무순과의 헤어짐이 아쉽다. 심지어 강무순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목소리의 톤을 가졌는지 허구의 인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만나고 싶다. 벌써 강무순의 팬이 된 느낌이다. 갑작스런 헤어짐보다 헤어질 시간을 알고서 헤어지는 이별이 더 가슴아픈 법이다. 어쩌겠는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을. 강무순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시겠습니까.


다임개술과 네 소녀의 비밀, 다임개술이 도데체 뭘까. 강무순이 적었으면서 그 의미를 몰라 알고자 하는 아리송한 단어 다임개술. 알고 보면 시시한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그 답을 찾기까지는 고달프다. 네 소녀의 비밀은 반전의 연속이다. 그 비밀은 네 소녀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그 베일이 벗겨지고 다시금 벗겨질 때 놀랍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그 반전이 허를 찌른다. 여튼 끝까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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