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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잠실동 사람들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그 사실적 묘사가 가히 놀라웠다. 이야기 하나하나 지루함이 없을 뿐더라 1인칭 시점으로 마치 등장인물이 내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각적 묘사와 심적 묘사까지 세세한 표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정아은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어찌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음에도 그들의 세세한 마음 하나 하나를 이렇게 글로써 표현해 낼 수 있는지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라는 푸념어린 생각까지 하게 만들 정도이다. 정아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긴다.
글 소개에 보면 "모든 것은 일상적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일상이 문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책을 읽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그 멘트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들의 삶을 살아 간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볼 수록 무언가 삐그덕 거리는 느낌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진정한 문제라고 말하자니 누구나 그런 고민들이 있을 것도 같다. 여기서 한번 비틀어 표현한 "그 일상이 문제다."라는 말이 가슴 속 깊이 사무친다. 이들의 일상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 어찌 이리 공감되는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이야기의 주 무대는 잠실동이다. 잠실동은 중산층과 서민층 하층민이 혼재된 독특하면서도 어찌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동네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반지하 주택을 나와 길을 건너면 높은 아파트들이 있고, 또 그 뒤에는 빌라촌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롯데 월드와 백화점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동시에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삶도 바로 몇 블록 안에 공존한다. 이렇게 보니 무언가 색다른 곳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관심이 없을 뿐이지 대한민국의 어느 곳이나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원룸에서 성매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회사에서 라인을 잘 못 타 전전긍긍하는 한 집안의 가장, 아이의 영어 공부에 목메는 아내, 과거 왕따의 아픔에서 악몽을 꾸는 영어 학원 상담원, 한국의 이상한 모습에 어리둥절한 외국인 강사, 아내와 이혼 후 자신의 이력을 속이고 아이들의 영어 과외를 하는 과외 선생님... 각자의 시점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어느 하나 완벽할 수 없는 어리 둥절한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상위 계층의 삶을 꿈꾸며 우리 아이들은 나와는 다르게 성공시키리라 다짐하며, 무리해서라도 학원이며 과외며 혹여나 남에게 뒤쳐질까 전전긍긍하며 교육에 몰두한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엄마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두 마음이 공존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저 욕심처럼 보였던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