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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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서리꽃

짧았지만 진하고 뜨거운 슬픈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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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서리꽃>은 기존 작품들과는 살짝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랑'이라는 메인 스토리에 조정래 특유의 스타일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함께 여행하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었고, 특히 가독성이 매우 좋아 술술 읽힌다. 그 속에서도 사회적 문제를 절묘하게 녹여내어 조정래 작가만의 시선과 고유의 특성이 여전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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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서두에 작가의 말 '직업병의 행렬 속에서' 로 책이 시작된다. 평소라면 관심을 갖지 않고 넘겼을 부분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이며 '직업병'이란 단어가 주는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이 대목에 나는 조정래 작가에 대한 경외로움을 느꼈다.  조정래 작가가 오랜 글쓰기 노동으로 인한 탈장 수술과 복부 대동맥 팽창 수술을 경험했던 담담한 고백이 담겨있다. 80세가 넘은 거장의 삶이 이 직업병의 사례만으로도 얼마나 노력을 하고 깊게 몰두했는지 깊이가 느껴진다. 평생을 작품 창작에 바쳐온 그의 집념은 가히 '정신승리'라 불릴 만하다. <서리꽃>이 그의 마지막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이 작품이 한층 더 귀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또한 조정래 작가님이 건강을 특히 기원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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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리꽃>은 '이재이'와 '윤소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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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이는 부잣집 둘째 아들로 부모의 권유에 따라 경영학 유학을 떠났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철학 공부에 매진한 뒤 귀국한다. 귀국 후 친구 민태식의 도움으로 윤소인과 재회하게 되는데, 둘의 인연은 유학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졸업 작품으로 이재이는 시를 쓰고 윤소인은 그림을 그려 하나의 작품을 함께 완성했었고, 당시 이재이은 윤소인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유학에서 돌아온 이재이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수첩을 건네며 마음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연인 관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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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인 가정의 비극적인 배경 또한 안타까우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윤소인의 아버지는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빼앗긴 후 사업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기나긴 법적 공방과 소송 끝에 아버지는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윤소인은 막대한 비용과 빚을 떠안아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 이러한 그녀의 비극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재이는 윤소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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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인 가정의 비극에서 조정래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기업은 윤소인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절묘하게 변형해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부당하게 편취한다. 이에 맞서 아버지는 기나긴 소송을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결국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현실의 불합리와 대기업의 횡포, 그로 인해 무너지는 개인의 비극을 다루는 지점에서 조정래 작가만의 사회 비판적 시선이 짙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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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이의 사랑이 매우 가슴 아프면서도 소설을 읽으며 내 자신을 이재이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되었다. 나도 이재이처럼 누군가를 계산없이 그저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까? 순애보를 넘어서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이재이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 이상의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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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이는 자신에게 상속될 막대한 재신을 형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형에게 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윤소인 가족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가맹점도 내준다. 친구인 민태식의 가족의 시기를 살까봐 친구 가족에게도 가맹점을 내준다. 좋았던 순간도 잠시 그간 윤소인의 기침이 심상치 않았는데, 병원 진찰 결과 윤소인에게 폐암이 발견된다. 수술과 요양비 또한 이재이는 모두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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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함께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떠난다. 이 대목은 그저 순애보적 사랑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재이는 헌신적으로 윤소인의 요양을 도왔고, 그렇게 윤소인은 회복을 하게되고 두 사람은 결혼을 꿈꾼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소인은 아버지의 빛을 갚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그림을 마음껏 그리지 못했다. 이에 이재이는 기꺼이 윤소인에게 마음껏 그간 못 그렸던 그림에 몰두하게 돕는다. 다만 그림에 몰두하는 이 1년의 시간이 두 사람에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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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윤소인의 꿈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파리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작품에 대해 풍부한 자신들의 감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이 두사람의 모습이 아름답우면서도 매우 슬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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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언급된 반 고흐의 작품들을 직접 프랑스 파리로 가서 만나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이재이와 윤소인이 느꼈던 감상을 나 역시도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풍성한 정보를 이 책에 담고자 열심히 자료를 공부하고 모은 조정래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다면 나는 이재이와 같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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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의 시대 배경은 현대다. 스마트폰과 AI를 등장시켜 정보를 검색하는 모습 등이 자연스럽게 소설의 곳곳에 담겨 있다. 다만 이 소설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조정래 작가는 사랑 전문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말인 즉슨 조정래 작가가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지만, 전반적으로 약간 '올드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계적으로 깊어지고 감정이 차곡차곡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고 아쉬웠다. 또한 두 사람의 대화에 요즘 젊은 층이 잘 쓰지 않는 단어와 어조가 자주 사용되어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철학을 전공한 이재이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관념적이고 생경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여 대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조정래 작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던만큼 사랑 전문 작가와 콜라보나 검수와 같은 형태로 진행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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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정래의 소설 <서리꽃>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짧았던 반 고흐의 생애와 피어나지 못했던 그의 삶, 많은 관광객들이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싶어 관광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재와 대비되는 절묘함이 그려진다. 이 둘의 사랑은 마치 서리꽃처럼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랑의 온도만큼은 매우 뜨거웠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려냈지만 자신만의 높은 기준 탓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윤재인의 모습이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림에 몰두 했던 반 고흐와도 닮았다. 이를 아낌없이 지원하는 이재이는 반 고흐의 동생과도 닮았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들이 밀려온다. 소설이 주는 여운이 상당히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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