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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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닻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빅터 프랭클의 인생에서 배우는 완벽한 마음가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익히 유명한 책이다. 많은 이들의 추천 속에서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까지 성공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읽고 싶은 책을 빌려 놓으면 잘 읽지 않는 잘못된 버릇때문에 시간이 흘러 그대로 도서관에 반납하고 말았다. 그러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책을 만났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편안한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무조건 읽어야만 하는 강렬한 자기 암시에 빠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이 책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를 읽고 나서 빅터 프랭클의 광팬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책의 서두 프롤로그에 언급된 '일요일 신경증'이라는 말에 굉장한 공감을 받고 시작했다. 왜냐하면 정말 내가 평상시 느끼는 바에 대해서 명확하게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무기력하고 살아감, 인생, 회사 생활, 삶 등에 대한 의지가 바닥을 보이는 40대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매우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강한 공감의 흡인력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빅터 프랭클의 철학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에서 감탄을 했고 어서 이 책 다음으로 그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p14

수용소에서 매일 죽음의 기로에 서있던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말한다. 선뜻 이해되지 않았으나 외부 자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그 반응을 굳건하게 선택해 나갔던 그였다. 운전할 때 종종 우리는 상대 차량의 비매너 운전 및 무개념 행동으로 인해 위험한 순간 만나곤 한다.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 화를 참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욱해서 보복 운전을 하지 않고 동승자의 안전을 위해 더욱 안전 운전을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욕을 하지 않고 조금 더 조심해서 운전하는 나로 거듭날 수 있다. 모두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 즉 나의 반응을 내가 선택할 자유가 있다.


프랭클은 훗날 이렇게 썼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단 하나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 나는 이 문장에서 한참을 멈춰섰다.

p24

그저 상황을 탓하는 우리들에게 정말 귀감이 되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 상황에 따른 그 자극에 따른 우리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은 나를 만드는 아주 작은 출발점이다. 이 선택들이 모여 나를 만들고 나의 태도를 만들고 나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나의 행동을 선택할 자유를 가진다. 




근거 없는 낙관은 그렇게 두 번 사람을 죽인다. 한 번은 직면해야 할 현실을 못 보게 해서, 또 한 번은 그 환상에 철저히 배반당했을 때

p39

근거 없는 낙관이 무너지는 순간 그 스스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 낙관이 아닌 직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에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힘을 얻는다. 근거 없는 낙관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그 차가움에 직면하는 그 마음은 우리를 굳건하게 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상이다.

p46


 무너진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심판을 하는 행동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가혹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상실 혹은 갑작스러운 퇴직과 같은 불가항력의 상황)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을 겪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평상시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다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일을 왜 햐야 하는지 모를 때 무너진다. 사람이 힘들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이 관계를 왜 유지해야 하는지 답할 수 없을 때 무너진다. 가난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이 가난을 통과해 도달해야 할 어떤 자리가 보이지 않을 때 무너진다. 고통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무의미가 사람을 죽인다.

p53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의미 치료에 대한 부분인데, 인간을 쾌락의 노예로 본 프로이트와 권력의 추구자로 본 아들러와 다르게 인간은 의미를 갈구하는 존재이며 우리는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산다는 빅터 프랭클의 철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 깨달음을 준다.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무의미가 사람을 죽인다는 말에 매우 공감되었다. 지금 내가 왜 무기력한지 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쾌락은 목적의 결과물이지 목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중략) 자극이 끝난 자리에는 자극이 시작되기 전보다 더 황량한 들판이 펄쳐져 있다. (중략) 견뎌야 할 무게가 무거울수록 우리는 가벼운 자극으로 도망친다.

p89

현실이 힘들고 무거울수록 가벼운 자극으로 도망친다는 그이 말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쇼츠와 릴스에 중독되어 시작을 죽이는 사람들이 마치 가벼운 자극으로 도망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런 이들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과도 같다. 회사에 출근하기 싫어서 잠시나마 짧은 쇼츠 내용이 빠져 이불 속을 뒹구는 나는 쾌락을 갈망하는 외로운 회사원이자 아빠이거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견뎌야 할 이유와 살아야 할 까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자주 던진다. 첫째,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가. 둘째, 벗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p122

수용소에서 해방되기만 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 순간 사람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만약 내가 지금의 이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할까. 벗어나고 싶은 그 무엇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 방황하지 않을까. 벗어난 다음이 중요하다. 벗어난 다음, 무엇을 향해 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프랭클은 이처럼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것을 가리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Copernican turn'이라 불렀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를 묻는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반대로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하는가를 묻는 책임의 주체로 돌아서는 것이다.

p163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삶 안에서 나는 원망하고 주저 앉는 선택이 아니라, 그 상황을 통과하고 나만의 새로 빚는 길을 가야 한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하는가를 묻는 책임의 주체로 돌아서는 일! 이것이 빅터 프랭클이 전하는 어쩌면 가장 핵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당신을 가장 무겁게 누르고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그 조건을 한번 정직하게 적어보라. 가정환경, 경제 상황, 인간관계, 건강, 시대의 분위기, 무엇이든 좋다. 적은 다음에 그 옆에 한 줄을 더 적어보라. 그 가혹한 조건 안에서, 그럼에도 내가 오늘 결단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태도는 무엇인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고통 앞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내면의 고요한 저항.​

p190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만이 아니다. 그의 철학은 지금 내 삶과 내 주변의 조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불합리한 상황과 환경이 존재한다.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있다. 이런 환경과 가혹한 조건을 어떻게 이겨낼지는 나의 가장 작은 태도에서 시작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말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내 자신이 굳건하고 곧은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어렴풋한 위로의 말보다 빅터 프랭클의 확신에 찬 강한 어조가 나는 더욱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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