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왕관 - 유럽 왕실을 뒤흔든 병의 연대기
여지현 지음 / 히스토리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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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토리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고통의 왕관

유럽 왕실을 뒤흔든 병의 연대기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 <고통의 왕관>을 추천하고 싶다. 유럽 군주들의 권력과 신분, 부귀한 삶은 평범한 이들이 넘볼 수 없는 범주의 것이었다. 그러나 질병은 이러한 사실과 관게없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오히려 그 질병이 그들에게 조금 더 가혹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기에 흥미롭게 느껴졌다.

과거에 비해 현대는 의학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질병들이 그 당시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그래서 그 질병들로 인해 고통 받았던 과거의 역사가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는 질병들이 미래에는 쉽게 치유될 수 있는 질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통풍은 "제왕의 질병"이라 불렸고... 신성로마 황제 중에서는 ... 카를 5세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28세에 처음으로 급성 통풍 발작을 겪었다고 하는데 1550년까지 거의 계속해서 신체적으로 약했다고 한다. (중략) 유럽과 신대륙에 걸친 카를 5세의 광대한 영토와 끊임없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 위협은 막중하고 피할 수 없는 책임과 결정을 수반했으며, 이는 통치자 개인에게만 달려 있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그의 건강 상태는 궁극적으로 이 영토들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왕들의 병: 온몸을 고통에 빠뜨리는 통풍, 국왕들만 걸렸던 이유는? (p28)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는 통풍에 대한 지식이 현대에는 많이 알려져 있다. 45세 이상 남성에게 흔한 질환이며, 요산의 축적으로 인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도 조기 발견하여 약으로 진행을 늦추고 식이요법으로 관리하면 증상이 많이 호전된다. 그러나 과거에는 약도 없고 정확한 의학적 지식이 없기에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제왕의 질병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당시 일반인들은 고기와 술을 자주 먹지 못하였을 것이다. 고기와 술을 마음껏 먹던 군주들이 겪어야 했던 통풍은 어쩌면 저주와도 같은 질병으로 비춰진다. 또 하나의 측면으로 납 중독과 관련된 부분이 흥미롭다. 그 당시 와인 제조 과정에서 납 성분이 들어가고 귀족들이 와인을 즐겨하면서 납 중독에 걸렸다. 이것이 통풍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매순간 선택을 해야하는 황제의 입장에서 통풍의 고통은 일상 생활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통증으로 인해 어떠한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결정을 미루는 일이 많아졌으며, 이로 인해 전쟁이 연장되기도 하였다. 또한 우울증도 생겼다고 한다. 질병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유전적 계통은 부친인 켄트 공작 에드워드의 혈통을 타고났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의 한 유전적 분석에 따르면, 부친 에드워드 쪽에서 유래된 유전자 변이가, 빅토리아가 보인하고 있던 혈우병 유전자의 원천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저주받은 피: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러시아 황실을 몰락시키다 (p55)


X염색체의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혈우병이 발병한다. 빅토리와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 사이에 여덟 번째 자녀, 막내 아들인 레오폴드는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베아트리스 왕녀는 스페인의 미래 국왕인 알폰소 13세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아스투리아스공작 알폰소와 곤잘로는 혈우병 환자였다.

현대는 혈우병이 있어도 과거와 달리 관리를 통해 장수도 가능하다. 하지만 혈우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조차 없었던 그 당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린 시절 작은 출혈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청소년기를 넘기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빅토리아로 인해 왕족 가문의 혈통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빅토리아 증손녀 중 잠복 보인자 가능성으로 인해 두려움이 남는 것이다. 왕족의 혈통을 약화하는 유전병인 혈우병은 역사적으로 의미있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은 1347년 당시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데 니키포로스 그로그라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 재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덮쳤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었다." (중략) 요안니스 6세의 저술은 그가 흑사병 당시의 황제였기에 (중략) 그의 아들 안드로니코스까지도 그로 인한 사망자였다.

검은 사신의 그림자: 중세의 악마 흑사병, 2천 년 로마를 멸망시키다 (p145)

중세의 흑사병은 높은 치사율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광범위한 무역과 전쟁이 질병 확산에 기여했다는 측면이 있고, 항생제가 없던 그 당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경우가 많다. 지금도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면 위험한 병이라고 하니 그 당시에 얼마나 위험했을지를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최근 코로나 팬데믹의 시기를 겪었기에 그 무서움을 알고 있다. 제국을 쇠퇴의 길로 들게 만드는 중세의 흑사병처럼 코로나 시대는 장기간 세계를 얼어 붇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흑사병 시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방역 수칙, 개인 위생 ,백신 등에 대해 몸소 경험하고 병을 이겨냈다.

그 당시에는 위생 관념이 없다시피하고, 항생제도 없었으며, 방역 수칙 또한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질병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이 흑사병이 부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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