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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BBC 선정 가장 영량력 있는 소설 100선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대표작 <모비 딕>(1851)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다른 소설들에 대해서는 아는 정보가 없었다. 미국의 대문호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출간 당시 외면 받았으나 뒤늦게 인정 받으며 걸작으로 평가된다. (나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꼭 읽고 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찾아봤고 <모비 딕> 이외에 한글로 번역된 다른 책들이 많지 않다.
<필경사 바틀비>는 허먼 멜빌의 대표 단편소설이다. 허먼 멜빌의 작품 스타일은 은유적, 비판적, 철학적, 모호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작가 허먼 멜빌의 작품 스타일을 미리 만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모비 딕>과는 그 결이 살짝 다르다고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고 또한 이 <필경사 바틀비>만의 매력과 그 가치가 충분히 있기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열린책들의 <필경사 바틀비>는 총 5편의 중단편 소설들이 담겨있다. 필경사 바틀비는 80여 페이지, 빌리 버드는 약 180페이지의 분량으로 중편의 분량이며, 나머지 3편은 약 20~30페이지 정도의 단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단편들은 <모비 딕>이 세상에 나온 이후의 작품들이며 짧지만 결코 그 무게감과 작품성은 가볍지 않다.
필경사 바틀비 (1853) - 82페이지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1855) - 32페이지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1854) - 32페이지
행복한 실패 (1854) - 18페이지
빌리 버드 (1924) - 176페이지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바로는 필경사들에 관해 쓴 글이 아직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제목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면 좋다. 필경사는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사람을 뜻하며,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 업무를 위해 고용된 인물이다. <필경사 바틀비> 소설을 읽고 좀 당혹스러웠다. 무슨 내용인지 단번에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틀비의 행동이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고 소설을 다 읽어도 어렴풋하게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기에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상상을 할 뿐이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기에 검색을 해보았고, 바틀비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 개인의 소외 및 무력감에 대해 다루고 있고, 비폭력 저항의 인물로써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우울증에 걸린 한 청년으로도 볼 수 있는데, 무기력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해 스스로 사회적 단절을 선택하고 있다.
바틀비가 자신의 그 은밀한 처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채,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온화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한번 상상해 보라.
조금 이상한 혹은 내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사람에게 더러 4차원이라는 표현을 쓰곤한다. 일반적이지 않고 그 행동이나 말을 이해하기 힘들기에 엉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4차원이라 말하는데, 나는 이런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바틀비에 대한 분석의 내용을 접하고 다시금 바라본 바틀비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단순히 이상해서 멀리하고 싶은 사람으로만 느꼈다면, 이제는 우리가 보듬어 주고 보살펴야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바틀비가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근무하다 해고되었다는 부분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죽어가는 편지들을 처리하는 업무가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을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지막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p87)"의 탄식에서 강한 연민과 깊은 여운을 느낀다.

<빈자의 푸딩>이 어찌나 쓰고 곰팡내 나는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한 입 떠서 조금 먹었을 뿐인데도 목에 턱 걸려 삼킬 수 없을 정도였다.
상황 1 빈자의 푸딩 역시 처음 한 번 읽었을 때는 좀처럼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 번 더 읽으면서 내용과 상황과 대화에 숨은 뜻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해가 되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짧은 단편이 이런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
화자가 가난한 시골 집에 방문해 콜터 부부의 환대를 받는다. "아이들을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의 창백함이었다(p150)" 을 통해 아이들을 잃은 가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에서 부부는 서로를 위하고, 슬픔보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빈자의 푸딩을 맛 보고 상당히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주 환경이나 음식이 소박하나 그들의 모습은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인다.
"앞으로 누구든 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잘난 체하며 나한테 <빈자> 어쩌고저쩌고하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걸세 ─ 나는 절대 그런 말을 쓰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야.(p161)" 단지 가난하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환기가 되지 않아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지만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얼마나 인심 넉넉한, 정말 관대하게 베풀어 주는 고귀한 자선 행사인지! 영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하는 광경 아닌가요? 영국은 걸인들에게도 황금빛 젤리를 먹이는 나라인 거죠.
상황 2 부자의 빵 부스러기는 풍자의 극치를 보여준다. 풍족하고 세련된 곳이지만 무언가 쓸쓸하고 배려가 없는 '풍요 속의 빈곤'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걸인들에게 황금빛 젤리를 먹인다는 것에 우리는 이상함을 느끼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정말 빈곤한 이들을 위한 자선이 아닌 자신들이 그들에게 나눈다는 행위에 만족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두 이야기를 대비시키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끔 현실을 보여주는 형태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행복을 진정으로 알고 정말 행복하다 말하기도 애매하고, 부자들의 모습이 그렇다고 엄청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다. 각자 자신의 상황 안에서 그저 살아간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감정, 생각 등이 혼란스럽게 섞이는 느낌이다. 내 스스로 무언가 결론을 지으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단단한 체격과 도덕적 품성, ... 그 <멋쟁이 배꾼>은 달랐다. ...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기에, 그보다 능력이 뒤처지는 동료들에게서 진정한 찬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 그 인물이 바로 18세기 마지막 10년이 끝나갈 무렵 영국 함대의 앞 돛대 망루꾼이었던 스물한 살의 빌리 버드,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서는 더 친숙하게 <베이비 버드>라고 불리던, 눈이 하늘을 닮은 빌리 버드였다.
"영국인이었던 잭 체이스, 그 사람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p195)"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멜빌이 군함에서 직접 겪을 일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처음엔 이 문구를 보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다 읽고난 후 다시 본 이 첫 문장이 주는 감흥이 남달랐다. 멜빌이 실제 비슷한 경험을 했다하니 더 다르게 느껴진다.
누구보다 바르고 품성이 곧은 어린 청년 <빌리 버드>는 우연히 군함에 오르게 된다. 바른 행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빌리 버드는 심성이 곧고 바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으나 오히려 그런 면이 심성이 뒤틀린 부사관 클래거트의 눈에 거슬리게 된다. 그 작은 거슬림이 점차 커지면서 빌리가 반란을 모의한다는 거짓을 함장에게 고하기에 이른다. 거짓 모함에 당혹스러운 빌리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분노와 당황에 의해 글래거트를 한 대 치는데, 클래거트는 쓰리지고 죽음에 이른다. 군법에 회부된 빌리, 군법과 양심에 갈등하는 함장, 이런 상황에서의 주변인들. 결국 빌리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교수형당한다.
「비어 함장님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로 그 순간 그들의 가슴속에는 오직 빌리만 존재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빌리 한 사람만 보였을 것이다. (중략)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이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선 채 얼굴을 들어 바라보는 가운데 빌리의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활짝 핀 장미꽃처럼 붉은 여명의 빛줄기를 한 몸에 받으며, 그렇게 공중으로 올라갔다.
비극적 결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순수하고 바르게 살았던 빌리의 단 한 번의 실수, 거짓 선동으로 죽음에 이른 클래거트, 법과 정의 사이에서 무엇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함장의 고민 등 다양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소설 속에서도 모두가 고민한다. 그럼에도 법을 어긴 사람에게 얼마나 관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쉽사리 답을 하기가 힘들다.
바르게 살아온 <빌리 버드>에 대한 희망찬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그 내용은 완전히 반대였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던지는 이런 질문이 상당히 무겁고도 세련되어 멜빌에게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렇기에 더욱 <모비 딕>이 궁금해진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나게 해준 멜빌에게 경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