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다산책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노르웨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낯설다. 저자의 이름 '프로데 그뤼텐' 역시 그렇다. 노르웨이 현대 문학의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1960년 생으로 노르웨이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 브라게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고, 각종 상을 수상하며 인정받는 작가다.

  • 시집 <시작>(1983)

  • 연작소설 <벌통의 노래>(1999) 브라게문학상 수상, 노르딕평의회문학상 후보

  • 장편소설 <표류하는 곰> (2005) 리버튼문학상 수상

  • 단편집 <Rom ved havet, rom i byen> (2007) 뉘노르스크문학상, 멜솜문학상 수상

  • 소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


그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흘러갔다. 항해일지를 펼쳐 놓은 채 핸들 옆에 서서, 과거의 소리와 라디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11월의 하늘은 그의 머리 위에 있었고, 그의 발밑에서는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p38

처음엔 독특한 설정에 쉽사리 이해가 어려웠다. 페리 운전수 닐스 비크가 놀라는 기색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망자들을 만나는 상황에서 이 사람이 원래 망자를 보는 건지, 마지막 날이기에 망자를 본다는 것인지, 이미 죽어서 배를 타고 이승에서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인지 살짝은 당혹스러웠으나 약간은 다른 문화적 차이 혹은 작가가 준비한 소설의 세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탓인 듯 하다. 사실 우리의 문화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존재한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이 마중을 나온다는 이야기라던가 죽음의 순간 살아왔던 인생의 모습이 한 순간의 영화처럼 지나간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적이 있기에 매우 낯선 상황만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혔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잊혔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떠나가고 없다. 물살은 낮과 밤을 지우고, 모든 것을 서로 연관성이 없는 조각들로 분리한다. 피오르는 망각이다. (중략) 단지 잔잔하고 푸른 수면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이 지속된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과 함께.

p209

이 책을 읽을 때의 주안점은 바로 이런 표현들이다. 시적이고 함축적이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한 번만 읽고 이해하기는 살짝 갸우뚱해지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어 한 번쯤 다시 읽게 만든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단어들도 한 몫 하는데, 그 중 '피오르'는 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의미한다. '피오르는 망각이다.' 라는 표현이 나를 멈춰 세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기억들과 피오르를 오가는 한 노인은 망각이라는 단어로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페리 호를 운행하는 닐스 비크, 열다섯살부터 사람들을 배에 태워 옮겨 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그에게 마침내 오늘 생의 마지막 날임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바다에 배를 띄운 그의 앞에 평생 배에서 만났던 죽은 이들을 하나씩 만나게 된다. 죽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닐스가 살아왔던 그간의 삶을 함께 들여다 본다. 이 마지막 여정에는 세상을 먼저 떠난 강아지 루나가 닐스의 말벗이 되어 준다.



청소라는 것이 일종의 발굴 작업, 지난 시간과 삶을 천천히 발견하는 직업, 남겨진 모든 이들이 거쳐 가야 할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작업을 한다 해도 결국엔 마르타가 곁에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이라는 것을 잘 고 있던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물건은 그녀의 검은 웨딩드레스였다.

p88

그의 과거 이야기들은 마치 페리로 여행을 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과 같이 예상치 못한 이들을 만나는 가운데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다양한 에피소드들 가운데 이 소설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은 바로 사랑하는 아내 마르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얀 웨딩드레스가 아닌 검정 웨딩드레스를 골랐던 아내, 뇌졸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그녀와의 추억들은 삶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에게 약간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닐스가 로버트가 아내와의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는데 있다. 로버트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닐스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사랑이라면 이런 것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그럼에도 아내를 사랑했던 닐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나는 깊은 심연에 빠진다.

당신은 배에만 충실했어요. 항상 그랬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죽으면, 당신은 하루 종일 배에 있을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요?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그는 마르타에게서 수첩을 빼앗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바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p255

닐스 비크의 삶을 어쩌면 매우 평범해 보인다. 그 평범한 삶 안에 결코 평범치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안타까운 닐스의 동생의 이야기라던가, 아이를 낳지 않고 독립해서 살아가는 두 딸의 모습 등은 비극이라 보기보다 삶의 일부분이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삶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내가 삶의 마지막에 섰을 때, 비몽사몽 사리분간 하지도 못하며 그저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온 삶을 뒤돌아 보며 그저 잘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어쩌면 길지 않은 우리의 이 삶이 잠시 머물다 가는 쉼터처럼 아주 짧은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짧은 이 삶이 후회없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