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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평점 :
* 해피북스투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대작"
제 11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작
1968년 대만 태생, 아홉 살 때 일본으로 가서 후쿠오카현에 지금까지 거주 중
2002년 <터드 온 더 런>으로 제1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은상, 독자상 수상
2003년 <도망작법> ('터드 온 더 런'을 고쳐쓴 작품) 으로 데뷔
2009년 <길가> 제11회 '오야부 하루히코상' 수상
2023년 <블랙라이더> '2014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 제5회 'AXN 미스터리 싸우는 베스트 텐' 1위
2015년 <류> '제 153회 나오키상' 수상 - 20년 만에 한 번 나올만한 걸작이라는 최고의 호평
2016년 <죄의 끝> 제 11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
2017/8년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오다 사쿠노스케상, 요리우리 문학상,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 수상
대만태생의 일본 작가라는 이력이 재미있다. 다수의 작품과 더불어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들을 하나씩 읽어볼 생각이다.
이번에 읽은 <죄의 끝>은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 색다르다. 번역도 상당히 매끄러워서 처음엔 한국 작가가 쓴 소설로 착각할 정도였다. 풍부한 표현과 범접할 수 없는 상상력이 가미된 웰메이드 SF 소설로 강력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SF영화나 드라마는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 나의 독서편식의 이유로 SF장르의 소설은 이제껏 멀리했다. 글로 표현된 SF세상을 나의 상상력으로 펼쳐내지 못할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작용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장르가 SF임을 모르고 펼쳐들었다. SF소설임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터다. 모르고 읽었던게 약이 되었던 듯 한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완벽하게 창조된 미래의 인물인 '너새니얼 헤일런'을 정말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의 매력에 한 껏 매료되었다.
소행성 충돌로 인해 모든 문명이 파괴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을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지역은 아메리카 대륙이다. 미국의 문화를 안다면 반가운 내용들도 더러 등장한다. 캔디선 내부와 외부로 구분된 세상, 캔디선 외부는 물, 식량, 전기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무법지대다. 그렇기에 그저 생존을 위해 살상과 식인이 벌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문명은 2173년 6월 16일에 종말을 맞는다. 이후 200년의 세월은 사람들이 뉴럴 네트워크를 잊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VB 의안 수술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위대하나 어떻게 그런 일을 옛날 사람들은 해낼 수 있었는지 모를 만큼 불가해한 영역에 들어서고 말았다.
VB 의안은 첨단 기술로 수술을 통해 의안을 안구에 넣어 시신경과 연결한다. 신경과 뇌세포가 연결되고 뉴럴 네트워크와 통신을 하면서 첨단 기술이 적용된다. VB의안에 기반해 C건과 어썰티드X를 활용하면 최고의 전투 요원이 된다. 위험 상황을 즉시 판단하고 표적에 C건이 자동 조준되어 전투력이 최고에 이른다. '너새니얼 헤일런'의 엄마 '미아 헤일런'의 가슴 아픈 과거는 VB의안에 대한 집착으로 남았고, 자신의 둘째 아들 '너새니얼 헤일런'에게 VB의안 수술을 받도록 했다.
블랙라이더 전설 '너새니얼 헤일런'과 그를 따르는 '대니 레번워스'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가 등장한다. 캔디선 밖의 메시아적 존재로 예수의 재림과도 같이 추앙받는 인물이다. 어떤 연유로 이런 인물이 탄생했는지 소행성 충돌 이전의 상황에서부터 소행성 충돌 이후의 상황까지 세심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자신의 형과 엄마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불행하고도 처절했던 과거, 교도소에서 복역 중 소행성 충돌로 인해 세상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무리를 이끌어 타운을 이루는데까지의 그 과정은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았다.
이 소설은 액자 구성을 띄고 있다. '네이선 발라드'는 '대니 레번워스'를 추격한다. 백성서파의 일원으로 임무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를 뒤쫓으며 자연스레 '너새니얼 헤일런'에 대해 정보들을 접하면서 궁금증이 생겨난다. 어떻게 신화적 인물로 불리고 탄생하게된 과정이 무엇인지를 글로 적는다. 그를 쫓아 가는 험난한 과정과 만나는 주변 인물들, 생생한 증언들이 더해져 조금씩 '너새니얼 헤일런'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종단에 드디어 그 실체를 만나게 된다.

'한 번 얕보이면 이곳 생활은 아주 힘들어져.' 그러자 너는 이렇게 대답했어. '설사 산 채로 잡아 먹히더라도 지그보다 힘들지 않을 거야.' 만약 그대로 세계가 계속되었다면 나는 네게 환멸을 느꼈을지 몰라. 하지만 너는 이 새로운 세계에서 그때의 말을 증명하고 있어. 나이팅게일 소행성조차 네 말을 흔들 수 없었어.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너는 정반대의 방법을 취할 수도 있었어. 너는 그 귀도라는 남자에게 베푸는 대신 죽일 수도 있었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부정하고 있는 거야. 자신의 존재까지 포함한 세계를 말이야. 그런 존재를 나는 신이라 불러."
'대니 레번워스'가 '너새니얼 헤일런'에게 한 말이다. 왜 자신을 따르냐고 묻는 말에 이런 대답을 했다. 대니 레번워스는 살인귀로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고 식인을 했기에 백성서파가 제거를 위해 쫓는 대상인 것이다. '너새니얼 헤일런'의 말과 행동에서 빛을 보았고 신으로 추앙하기에 이른다. 처참한 세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부정하는 그만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나 역시 '너새니얼 헤일런'에 매료되었다. 그의 과거에 대한 내용을 알고 걸어온 길을 보니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배고픔의 단계를 넘어선 존재 즉, 신이 이렇게 탄생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소설에서 예수와 그를 비교하는 부분이 나온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그의 행적과 예수의 다른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험난한 세상에서 영웅이 등장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혼돈의 시기에 등장하는 난세의 영웅과도 같은 존재로 비춰진다.
이 소설을 읽기가 좀 오래 걸렸다. 내가 책을 좀 천천히 읽는 것이 첫째, SF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 낯선 단어가 나올 때마다 주춤 거렸던 탓이 두번째, <죄의 끝>이 그린 SF세상에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심리적 작용이 바로 세번째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니 좀 멍해졌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그 감흥을 좀 더 부여 안고 싶었다. <죄의 끝>에서 그려지는 세상과 가장 비슷한 것을 꼽으라면 영화 <매드맥스>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주인공, 광활한 죽은 세상을 누비는 처절함,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이 광기 어린 서사로 그려졌고, 그 느낌이 매우 닮아있다. 나중에 영화화되면 꼭 챙겨볼 것 같다.
SF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를 발견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독서 편식에서 벗어난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방구석에서 조용히 재미난 소설을 읽고 싶은 분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