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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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파리대왕

인간의 어두움을 끄집어 내는 처절한 과정





이 투표라는 장난은 소라에 버금가는 신나는 것이었다. 잭이 항의했지만 아이들의 고함은 대장을 뽑자는 일치된 소망에서 랠프를 대장으로 뽑자는 갈채로 돌변했다. 이런 이유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소년은 아무도 없었다. 지혜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준 쪽은 새끼돼지였고, 리더십을 두드러지게 발휘한 쪽은 잭이었다. 그러나 앉아 있는 랠프의 모습에는 그를 다른 아이들과 구별 짓는 묵언의 힘이 있었다. 덩치도 그렇고 그의 용모는 매력적이었다.

소라의 소리 (p31)

윌리엄 골딩 (1911~1993)

부커상, 노벨문학상 수상


<파리대왕>(1954) 원고는 출판사에서 스물한 번의 거절을 받았고 이 소설은 결국 세상에 나왔다. 소설 <상속자들>(1955), <핀처 마틴> (1956), <자유 낙하>(1959)는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첨탑>(1964), '땅끝까지'의 첫번째 작품 <통과 제의>(1980)로 부커상을 수상,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땅끝까지'의 두번째 <밀집 지대>(1987), 세번째 (심층의 불>(1989) 출간 후 1988년 영국 왕실 화하위 훈작사를 받았다.

윌리엄 골딩의 작품들과 수상이력을 이렇게 적는 이유는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다. 부커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사실은 <파리대왕>을 읽고 나니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럴만 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탄탄한 스토리와 생생한 표현력은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감흥이 오래 남았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순수하게 책 제목과 시놉시스 때문이었다. 우연히 책 내용을 전달하는 숏츠를 보게되었고 읽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런데 무려 부커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니, 그저 이 책을 만났다는 사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 뒤로는 은빛 달이 수평선을 벗어나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원숭이 같은 것이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숲속에서 바람이 포효하고 어둠 속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그러자 그 생물은 머리를 쳐들더니 핼쑥한 얼굴을 그들 쪽으로 돌렸다.

그림자와 큰 나무 (p193)



파리 대왕 줄거리

랠프, 새끼돼지, 잭 그리고 사이먼

외딴 섬에 불시착한 '랠프'와 '새끼돼지'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여러 소년들은 하나둘 모이더니 하나의 단체를 형성했고 섬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랠프는 모두의 지지를 받아 대장으로 선출된다. 민주적인 절차와 합리적 선택을 하는 랠프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며 이치에 맞고 훌륭한 대장의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천식도 있고 통실한 몸을 가져 소년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새끼돼지'는 남다른 지혜를 가진 소년이었다. 랠프를 도와 단체의 민주적인 방향성을 지지하고 조언한다.

'잭'은 성가대원의 리더로 리더십을 겸비한 소년이다. 자츰 민주적 절차를 고수하는 '랠프'의 방식이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랠프와 잭의 대립구도는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대장 랠프는 구조 신호의 역할을 하는 봉화의 불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반면 잭은 무리를 이끌어 멧돼지 사냥을 하는데 온 관심이 쏠려있다.

랠프와 잭의 갈등으로 인해 잭은 무리에서 빠져나온다. 잭을 따르는 소년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른 그룹을 형성한다.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 잭의 무리는 더욱 하나로 뭉치게 되며 야만성이 켜켜히 쌓여 올라간다.

짐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내용은 좀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들이기에 미지의 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저 오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낙하산을 타고 불시착한 성인 남자를 짐승으로 오해했다. 소년들은 짐승의 존재로 인한 두려움으로 하나로 뭉치는 듯 했으나, 그 두려움은 오히려 독이 되어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겉잡을 수 없는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인간의 어두움과 야만성을 끌어내다

옳은 것이 항상 승리하지 않는 극한의 현실 반영

해골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랠프를 바라보았다. 메스꺼운 공포와 분노가 그를 엄습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추악한 것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그것은 장난감처럼 흔들흔들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와선 그의 얼굴에다 대고 씽긋 웃으며 있었다.

사냥꾼의 소리 (p293)

과연 무엇이 이 소년들을 야만인으로 만들었을까. 잭의 무리와 랠프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잭의 무리는 인간 본연의 어두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멧돼지를 사냥하고 자신이 마음에 안드는 무리를 처단하는 야만인의 면모를 과감히 드러낸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쿠테타를 하는 셈이다.

마지막까지 랠프를 잡기 위해 잭의 무리는 커다란 돌을 굴리는가 하면 섬을 불로 태우는 일까지 하게 된다. 섬을 불로 태우면서 발생한 연기는 봉화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고, 해군들에 의해 소년들은 발견되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단지 모든 것이 사고였을까. 마지막 랠프가 느낀 공포는 나에게까지도 전해졌다. 야만성이 극에 달해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잭의 무리, 그들을 피해 도망가는 랠프의 모습은 상당히 처량하다. 선하고 바른 랠프는 보호받지 못하는 야속한 현실 반영이 안타깝고도 애석하다. 이런 아이러니하고도 이율 배반적인 현실의 이치,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그 과정들, 극한의 상황과 피할 수 없는 사고들까지... 소설을 모두 읽고 나서도 나의 마음 한 켠에는 그 무언가 찝찝하고도 불쾌한 자투리가 남아 있었다.

"너는 바보 같은 애구나" 하고 파리대왕이 말했다.

"그저 무식하고 바보 같은 애야."

사이먼은 부르튼 혀를 움직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너도 네가 바보라는 것을 잘 알지?"하고 파리대왕이 말했다.

어둠에게 주는 선물 (p225)

파리대왕의 존재가 등장하는 유일한 부분이다. 사이먼은 짐승의 존재를 인식하고 소년들에게 이를 알리고자 했으나 오히려 짐승으로 오해를 받아 살해당한다. 멧돼지 머리에 파리들이 가득 들러 붙어 있는 기괴한 모습이 떠오른다. 사이먼은 파리대왕 즉, 환영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마치 암덩어리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파리대왕은 어쩌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모가 발현된 하나의 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그간 만나지 못했던 인간 본연의 어두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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