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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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스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입장에서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었다. 140페이지 남짓하는 짧은 분량, 고작 9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는 책이기에 사실 조금 의아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에세이들은 상당한 분량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책 한 권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에세이집이라 하면 다양한 즐길거리를 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에세이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읽자마자 놀랐다. 이 작가가 보통의 흔한 작가가 아니구나. 첫 에피소드에서 그 내공을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그닥 어렵지 않은 단순한 문장과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에세이에 담긴 메세지가 상당히 깊이 있고 철학적이며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아우르고 있음에 감탄했다.

시대를 관통한다는 의미를 체감한다. 1940년대에 씌여진 이 글들은 지금 읽어도 우리의 삶과 시대에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저자의 통찰력과 식견이 시대를 불문하고 통한다는 의미이기에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한 자질을 이미 갖춘 작가라 여겨진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허름한 홋차림의 그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늘 한결같이 쾌활하고 태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을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필요한 만만 대가를 받고 능력이 닿는 한 힘껏 돕는 이 청년처럼 모두가 산다면, 부조리가 반복되어 '사회문제'가 되는 우리의 복잡한 경제 시스템도 어쩌면 해결될지 모른다.

p22


첫 에세이는 '안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고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아가는 안톤은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롭다. 주변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던 이 남자 안톤을 통해 저자는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한 해답을 보고 있다.

이런 진짜를 알아보는 저자의 식견 또한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안톤과 같은 사람을 보고 그저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치부했을 것만 같다. 오히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주제넘는 조언을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돈의 굴레 아래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안톤과 같은 삶의 자세가 어쩌면 정말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스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첫 에세이를 읽자마자 나는 '스테판 츠바이크'에 대해 궁금했다. 내가 잘 모르는 작가이기도 하고 시대적으로 오래된 인물이기에 그 당시의 상황과 작가가 처했던 당시 시대를 이해하면 그의 글을 이해하기가 더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극작가, 전기작가로 다양한 작품활동을 했다.

  • 전기: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에라스무스>, <마젤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발자크>

  • 중,단편 소설 : <체스 이야기>, <아모크>, <낯선 여인의 편지>, <감정의 혼란>, <연민>

  • 회고록 : <어제의 세계>

유대인으로 나치의 압박을 받았다. 나치에 의해 자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 자유를 갈망하고 평화주의를 주창했다. 9개 에세이 중에서 마지막 '거대한 침묵', '이 어두운 시절에', '하르트로트와 히틀러'를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 및 프랑스 문학을 전공, 1901년부터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1942년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돈의 가치가 떨어질 수록 삶의 오랜 가치(일, 사랑, 우정, 예술, 자연 등)가 더욱 중요해졌다.

p42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스테판의 일화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한다. 돈이 가진 가치가 사라진 세상이 끔찍하게 변할 것이란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은 다른 더 중요한 가치들의 소중함을 보게 된다. 돈에 얽메어 돈을 바라보고 돈을 벌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일화는 멈칫 뒤를 돌아보게 한다.

그저 묵묵하게 삶을 살아가는다는 표현이 맞을까. 모두가 해냈다. 시인과 작곡가는 계속해서 작품을 창작했고, 젊은이들은 산으로 하이킹을 가고, 댄스홀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새로운 기업과 공장의 집이 빠르게 늘었다고 한다. 돈의 미친 죽음의 춤이 3년간 지속되었고 정상화되었지만 사람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돈이 주인이 아니며, 우리 삶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작업실에서 머물렀던 그 한 시간에 나는 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모든일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선하고 유효할 수 있는지 알았다. 자기 자신과 모든 목표 및 목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p77

천재 조각가 로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데 로댕을 만난 경험 역시 남다르다. 자신이 존경하는 로댕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고, 로댕은 약속을 다시 잡아서 친절히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다. 어느 한 순간, 로댕은 작품에 몰입하여 스테판 츠바이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 그 시간과 공간에 게의치 않고 오로지 작품 완성에 약 한시간 가량 빠져있었다.

로댕은 작품 세게에서 빠져나와 스테판을 보고 놀란다. 작품을 완성하는데만 온 정신이 몰두해 있어서 다른 모든 요소를 잊은 것이다. 천재의 집중력이 이러한 걸까. 어쩌면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오히려 스테판은 인생 최대의 교훈을 얻는다. 작품에 완성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몰두하고 몰입하는 그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에술이 아닐까.

스테판에게 로댕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영광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봤을 때, 이렇게 자리에 앉아 스테판의 귀중한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영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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