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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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마치 헌책방에서 찾은 귀한 책처럼


삶에서 지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멍하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상황에서 도망쳐 피할 수 있는 나만의 도피처가 있다면 어떨까. 지금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 아무 생각없이 나를 충전하고 싶을 것이다. 여기 퀴퀴한 곰팡내가 은은하게 퍼지는 오래된 헌책방 모리사키 서점이 있다. 서점의 2층에는 몸을 웅크리고 깊은 잠에 빠진 스물다섯 살 다카코가 있다.

스물다섯 살 다카코는 착실하게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회사에서 사내연애를 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하고 같은 회사의 다른 여자와 결혼 약속을 했다고 한다. 다카코는 남자친구의 배신의 충격으로 회사도 그만두고 도피한다. 이런 다카코에게 우연히 외삼촌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자신의 헌책방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인생은 가끔 멈춰서 보는 것도 중요해. 지금 네가 이러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행 중에 갖는 짧은 휴식 같은 거지. 여기는 항구고 너라는 배는 잠시 여기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잘 쉬고 나서 또 출항하면 돼."

p56

'인생의 휴가'라는 표현이 좋았다. 학생들에게는 방학 기간이 그러하고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에게 적절히 휴가가 재충전의 기회가 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제대로된 휴가를 즐기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쉽지 않은 현실에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카코에게 모리사키 서점은 최고의 휴식처다. 스스로 그 헌책방이 자신을 위로하고 휴식이 되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진보초 헌책방 거리에서 만나는 가게며 사람들을 통해 스스로가 치유됨을 느낀다.

소설은 두개의 장으로 나뉜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과 '모모코 외숙모의 귀환'이다. 다카코가 모리사키 서점에서 치유를 받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이야기를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에서 다뤘다. 그리고 헌책방의 주인인 외삼촌을 두고 5년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버린 외숙모와의 이야기를 다룬 '모모코 외숙모의 귀환'은 또 다른 방식의 감동을 선사한다.

그래, 여기야. 우리의 작고 허름한 모리사키 서점. 큰 뜻을 품고 세계로 뛰쳐나갔는데 결국 도달한 곳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았던 장소라니. 웃기지?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곳으로 돌아온 거야. 장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어.

p88

외삼촌은 외숙모가 훌쩍 떠나버린 5년의 시간동안 묵묵하게 서점을 지켰다. 그러다 갑작스레 돌아온 외숙모는 그 전과 다름없이 밝고 쾌활한 모습이다. 외숙모의 5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외삼촌과 다카코는 궁금하지만 외숙모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외숙모는 다카코에게 여행을 제안하고 둘만의 여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베일에 싸여있던 외숙모의 속마음을 듣게되고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열리게 된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외숙모의 행보는 숨겨있던 사연을 알게되면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물론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 무책임한 모습이 선뜻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모모코 외숙모는 그 나름의 사투를 벌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관계는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이뤄낼 수 없다. 외숙모, 외삼촌, 조카 다카코 모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를 위해 이해하고 보듬고 노력했다. 결국은 서로에게 힘이되고 하나가 되었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은 헌책방 서가에서 우연히 찾은 귀한 책과 같다. 다카코가 돌연 힘을 얻고 한 걸음을 내딛은 계기 역시 책 한권을 읽고서였다. 그 책 한권은 마중물이 되어 다카코를 독서의 세계로 이끌었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용기도 생겨났다.




"글쎄다. 어디를 돌아다녀도, 아무리 책을 읽어도,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거겟지. 늘 방황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다네다 산토카의 하이쿠에도 있잖니? '헤치고 들어가도 들어가도 푸르른 산'이라는 구절 말이야."

p57

문득 문득 구절 하나 하나가 툭툭 나를 건드린다. 인생에 대해 말하는 외삼촌의 말들을 곱씹을 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고민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것이 인생이거늘. 다카코가 어쩌면 외삼촌의 진심어린 대화 속에서 힘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다카코의 모습이 우리에겐 사치부리는 어린 아이의 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또한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혹은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다카코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 머물고 가라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사치와도 같다. 누리고 싶어도 누릴 수 없는 호사라는 의미다. 나도 모리사키 서점과 같은 숙식 제공되고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외삼촌 있었으면 좋겠다. 현실적으로는 너무 먼 느낌이게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펼쳐보고 싶다.



2009년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로 데뷔하였고, 2010년 해당 원고를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은 앞서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블루엘리펀트, 2013)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된 바 있는 해당 소설을 새롭게 옮긴 책이다.

저자 야기사와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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