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기억
티나 바예스 지음, 김정하 옮김 / 삐삐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의 기억

할어버지와 손자의 따스한 기억



섬세한 시적 표현들이 나의 감정을 자극한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짧은 대화와 그 상황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 전한다. 미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아주 세세한 설명일수도 있지만 시처럼 함축적인 단어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조안(Joan)과 그와 함께하는 손자 잔(Jan)의 대화와 일상을 잔의 시각으로 담아낸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어린 손자의 시각으로 서술되어 진행하기 때문에 상당히 절제된 표현들이 사용되며 모든 상황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한 소년이 아름드리 나무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할아버지는 조금씩 모든 것을 잊어갔다. 할아버지가 살아왔고 배워왔던 모든 것이 지워지고 있었다. 낫지 않는 병이었다. 몇 년 전에 알게 되어서 병이 진행되지 않도록 약을 먹었다. 병이 천천히 진행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바르셀로나에 와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제 할머니 혼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121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사는 날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 손자 잔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아빠와 엄마의 표정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잔의 하교 길에 할아버지가 마중을 나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할아버지는 우화를 들려주었고, 나중에 버드나무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병을 알게되고 할아버지의 흐린 눈을 보게 되고 어느 날부터는 할아버지 혼자 더 이상 마중을 나올 수 없음을 알게된다.




"나무들이 모든 답을 갖고 있다고요."

"그러면 내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물어봐야겠구나."

할머니가 '내일'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조금 더 지워진 듯했다. 그때 나는 다시는 할아버지 혼자 나를 데리러 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병이라는 구멍 속으로 할아버지의 기억이 없어지듯 할아버지가 길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p161

할아버지와 버드나무의 일화는 매우 신비로웠다. 물론 할아버지의 주관적 관점에서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 한켠이 따스해짐을 느낀다. 나무의 기억은 상당히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나무, 어쩌면 그 나무 자체가 할아버지와 동일시되는 그만큼 애정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병을 치유해준 나무이자 손길을 내밀어준 나무. 어쩌면 작가는 할아버지의 기억이 나무에게로 전해지고 오래도록 손자 잔에게 남아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게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