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참으로 유명한 고전 추리 소설의 대가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특히 유명한 듯 한데 아직 읽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챕터를 가장 먼저 펼쳐봤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와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비교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셜록 홈즈를 이해하기에 자연스럽게 미스 마플에 대해 그려졌고 더욱 그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도시를 누비는 셜록 홈즈와 대비되는 미스 마플의 정적이면서도 안분자족하고 싶은 마음을 볼 수 있다.
크리스티의 정신적 퇴행의 풍경을 감상한 어느 평자는 추리소설을 '도피문학'이라 규정했다. 도시적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표현한 모더니즘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이다. (p51) 현대 예술이나 전통적인 규칙을 거부하고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는다는 '도피문학'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적인'은 그리스 신화의 술,미술,음악,춤,열정 등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신과 관련된 것으로 '열정이 넘쳐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모더니즘'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통적 형식과 규칙을 거부하고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 문학,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 운동이다.
개인적인 식견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 문장을 읽자마자 온전히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문맥상으로는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으나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멈칫거리게 됨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강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 지식이 풍부하다면 읽는데 큰 무리가 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멍한 당혹감을 맛볼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원본이 없는 곤혹스러운 형국이 아닌가. 가면 밑에 또 다른 가면이 숨어 있을 뿐이라면 범인을 찾아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성립할 것인가? (p53) 애거사 크리스티와 니체의 철학의 연결짓는 부분이다. 니체는 원본 따위의 세계란 없다고 주장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의 <죽은 자의 어리석음>을 통해 가면 뒤에 감춰진 살인자의 본모습 역시 가면의 모습이라면 어찌할 것이냐는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