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문명>에 이은 <행성>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에 발을 들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익히 유명해 별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다들 친숙하게 작가 이름을 알고 있다. 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직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당황스러웠다. 이토록 친숙한 작가임에도 단 한 권도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니 부끄럽기도 했다. 오래 알고는 지냈지만 결코 말을 튼 적이 없는 상대와의 실질적인 첫 만남인 셈이다. 뭔가 마음이 셀레어 온다.
<고양이>, <문명>, <행성>까지 총 3부작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굳이 선택이 가능하다면 시리즈의 처음인 <고양이>부터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사전 정보 없이 <행성>을 먼저 읽었으나 다행히 큰 이질감은 없었다.
<행성> 소설의 설정이 참 독특하고 신선하다. 소설의 배경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암울하다. 전쟁, 테러, 전염병으로 세상은 파괴되고 쥐들로 점령되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설의 내용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양이가 주인공라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베르베르가 그리는 세상이 애니메이션 <마이 펫의 이중 생활>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암울한 느낌보다 활기차고 재기발랄한 여행의 느낌이랄까. 물론 나만 그런 것일수도 있다.
소설은 이 배에 몸을 싣고 있는 암컷 고양이 바스테트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세계관과 더불어 또 하나의 독특한 소설의 설정이 등장한다. 동물들은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수리에 장착된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로 실시간 통역이 되기 때문에 고양이와 사람이 대화가 가능하다. 고양이는 인터넷에 접속해 지식을 쌓고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다. 특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있다.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하는 거대한 배가 있다. 이 범선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향한다. 이 배에 몸을 싣고 있는 이들은 사람, 고양이, 돼지, 개, 앵무생 등이다. 이미 쓰레기와 쥐로 뒤덮인 유럽에서 떠나왔다. 이들은 쥐들과의 전투를 피해 이곳 아메리카로 건너왔다. 하지만 이곳 아메리카도 쥐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눈 앞에 다다랐을 때 수많은 쥐떼가 헤엄을 쳐 배를 공격해 왔다. 아메리카 쥐들은 바다 수영까지 가능한 것이다.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곁가지로 등장한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장소를 언급한다거나 힐러리 클린턴이 등장해 연설을 하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 약 10~20년 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74세인 그녀가 84~94세이니 연설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아무튼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4만명의 사람, 8천 마리 고양이, 5천 마리 개가 건물을 갉아 먹는 쥐에 맞서 한 건물 안에 모였다.
고양이의 아이디어로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인간은 우매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의 설정이지만 인간은 무기력한 모습이 낯설지 않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이니 소설적 허용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인간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전염병으로 온 인류가 고통받는 동시에 인간의 나약한 민낯이 드러나고 또한 많은 피해를 당했다. 과거의 패스트와 같이 쥐들에 의해 옮겨지는 바이러스는 언제고 수많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고양이가 사람과 같이 사고하고 지식을 쌓게 되면 인간도 같은 시각으로 볼 듯 하다. 사회가 형성되고 다수결로 의결하며 계층이 생겨나는 모습 등이 우리가 살아온 인간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게 인간이 생존해 왔기에 당연한 순리일 수도 있겠다.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소설 안에 녹여내고 있어 놀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