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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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시체 주변 식물을 분석해 범인을 찾는 직업 '법의식물학자'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분야 혹은 세상을 우리는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간접 경험하는 책은 언제나 흥미롭다. '법의식물학자'라는 직업 자체가 매우 낯설다. 평생 살면서 절대 만나볼 수 없을 '법의식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남달리 꽃과 식물에 관심을 가졌던 아이가 평생 식물과 함께 했으며 이제는 시체 주변의 식물을 탐구하고 있다. 식물에 강한 애정을 가진 '마크 스펜서'는 수생균류 진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2년간 런던자연사박물관에서 표본실 큐레이터로 일했다. 어느 날, 범죄 현장의 시체 주변 식물이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시작으로 프리랜서 법의식물학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시체 주변 식물에 새겨진 현장의 흔적을 탐구하는 그 과정이 녹록치는 않다. 스펜서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내가 마치 법의식물학자가 된 느낌이 들게 했다. 그와 함께 범인을 잡으러 떠나보자.

하우프트만이 체포되기에 앞서 쾰러는 그 사다리를 검사해 테다소나무로 만든 것임을 식별해냈다. 또한 현미경을 이용해서 목재 표면에 있는 기계의 흔적이 분당 2,700회 회전하고 분당 78미터의 속도로 목재를 절단할 수 있는 칼날로 생긴 것임을 확인했다. 솔직히 그가 이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나도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어쨌거나 정말 똑똑했나 보다!

5장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p116)

하우프트만 사례는 저자의 경험담은 아니지만 사례 자체로 매우 놀랍다. 쾰러는 나무의 재질과 절단 방식을 분석해 범인을 잡았다고 한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분석이 가능하다는 자체로도 놀랍고 이를 통해 범인을 실제 잡았다는 사실도 놀랍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참 매력적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조작할 수 없고, 나무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다.

내가 블랙베리덤불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장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블랙베리덤불은 맡은 임무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중략) 영양분을 크게 탐하는 종이고, 인간이 공급하는 과잉의 영양분은 이 덤불의 입맛에 잘 맞는 것들이다.

4장 블랙베리덤불은 시체를 먹고 자란다 (p87)

저자가 좋아하는 만큼 블랙베리덤불이 책에서 많이 언급된다. 시신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추정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블랙베리덤불을 볼 기회가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 속에도 이 블랙베리덤불이 많은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숲 속을 거닐면서 블랙베리덤불이 무엇인지 찾아보련다. 단, 블랙베리덤불을 보면 시체가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함이 솟을 듯 하다.

피해자의 주장을 입중해줄 환경 증거가 필요했다. 양쪽 장소에서 표본을 채취하고, 피해자와 고인의 옷에서 표본을 채취해보니 피해자의 주장과 일치하는 유형의 꽃가루와 균류 포자가 검출됐다. 숲에서 나오는 균류 포자는 아주 독특했기 때문에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 숲에 있었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11장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증거들 (p245)

옷의 표본에서 꽃가루와 균류를 채취해 장소를 특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또한 재판에서 법적 근거로도 채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극히 과학적이며 거짓말을 하는 이를 잡아낼 수 있다. 일반인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꽃가루로 범인을 잡는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 작은 균류를 관찰함으로써 범인을 특정한다는 사실이 매우 매력적이지 않은가.

법의환경학의 미래는 전도유망하고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공공 부문과 연구 부분에 만연한 재정 문제를 극복할 때라야 그런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중략) 새로운 접근방식은 범죄 현장의 식물을 식별하는 능력, 이들이 증거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기술과 반드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전해야 한다.

13장 복잡한 생태계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p298)

인간보다 더 오랜 기간 생존해온 다양한 식물들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그 식물을 분석해 범인을 잡는 법의식물학자라는 직업은 매우 생소했으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식물 죽이기 전문인 나에게 식물을 잘 아는 직업 자체가 신기했다.

법의식물학자가 직접 실제 범인을 잡을 수는 없고, 시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혹은 범인을 특정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식물과 관련한 부분들에 도움을 주는 직업이다. 범인을 잡는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은 실패의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법의식물학자의 조언에 의해 범죄 수사의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는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의 이해관계로 인한 저자의 배려가 이해가 되긴하지만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는 살짝 아쉬웠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매력적이라서 충분히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덱스터>가 떠올랐다. 마이애미의 혈흔 분석가의 정체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설정이 법의학적 접근과 스릴러가 더해져 참 재미있었다. 물론 그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법의식물학자의 이야기 역시 사건 현장을 분석하는 그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중에 마크 스펜서의 일화를 다룬 영화 한편이 나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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