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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음과 양의 극렬한 대비로 일본의 어두운 불편함을 마주한다'
이 책의 중반부까지는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턱턱 막혀왔다. 한 남자의 삶이 그려지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힘듦이 있었다. 책을 읽기 힘든 것 뿐 아니라 그 남자의 삶 자체의 힘듦과 담담하게 불어닥치는 폭풍과도 같은 불행들까지 정말 어렵고도 힘든 상황들이 한 순간이 몰아쳤다. 그 기구한 삶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마도 나는 그 감정에 책장이 쉽사리 넘어가지 못했나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들에 나 또한 멍해졌다. 그 혼란함이 나에게로 전해졌다.
중반부터는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된다. 왜 이 책이 각종 상을 수상하며 43만 부 이상 판매되고 베스트셀러인지 알게 된다. 왜 뉴욕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인지를 알게된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문학적으로 생생하게 여실히 우아하게 작가답게 책에 담았다.
서쪽 하늘은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비치고 있었지만 동쪽 하늘에는 언제 다시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비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 구절이 참 와 닿는다. 문제는 일본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된다. 비가 내리는 곳이 있다면 비가 내리지 않는 해가 쨍쨍한 곳은 분명 존재한다. 밝은 곳이 있다면 분명 어두운 곳이 있다. 얼마나 사회가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외면하고 모른척 하는 사회가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재일한국인 2세 유미리 작가는 당당하고 우아하게 일본 사회를 비판한다. 하늘의 햇빛과 비구름 이야기를 한다. 황제 페하가 지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노숙자의 모습을 비춘다. 올림픽 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그 젊은 가장을 말한다. 이 어두운 면을 가만히 바라본다.
경제 고도성장기에 도키와선이나 도호쿠본선의 야간열차를 타고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집단 취직으로 도호쿠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이 맨처음으로 내려서는 곳이 우에노역이었고 명절에 귀향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짐을 짊어지고 기차에 올라탄 곳도 우에노역이었다.
도쿄의 우에노 스테이션을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과 닮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돈을 벌기 위해 각 지역에서 모여드는 기차의 종점. 주인공도 돈을 벌기 위해 우에노 스테이션에 내렸다.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삶을 포기한 채 노숙의 삶을 택한 이들이 공존하는 곳,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밝음과 어둠, 햇빛과 비구름이 공존하는 장소다.
밤에 숙소로 돌아갔더니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모리씨, 아드님이 잘못됐다고 부인이 전화하셨어요, 라는 것이었다. 겨우 며칠 전에 세쓰코에게서 고이치가 엑스레이 기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던 참이라 무언가 잘못들었겠지 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고이치가 자취하던 목조 아파트에서 자다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경찰에서 변사를 의심해 검시 중이라는 것이었다.
삶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불행은 운이 없다고 치부될 수 있는 것인가. 그저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던 이에게 들려온 소식은 정말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불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행은 점차 퍼져 나가 주변을 잠식한다. 하나의 불행만으로도 끔찍한데 결코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올림픽 유치를 계획하고 있는 도쿄도가 천황가 행차를 빌미로 우에노공원에 사는 노숙자 5백 명을 공원에서 쫓아내려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천황가 사람들이 황거나 아카사카에 있는 황실 관련 시설에 들어간 이후에도 몇 시간이나 천막집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밤이 되어 원래 위치에 돌아가보면 출입금지 간판이나 울타리, 화단이 꾸며져 있어 노숙자들은 공원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게 된다.
강제 퇴거 조치에 항거조차 할 수 없는 거리의 노숙자들은 천막을 거둔다. 모리는 한 때 도쿄올림픽 경기장의 토목공사의 인부로 돈을 벌었으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올림픽으로 인해 천막집의 딱딱한 바닥에서 마저 쫓겨난다. 이런 절묘한 대비는 일본 사회의 명암을 명확히도 보여 준다. 올림픽 준비로 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숙인들은 청소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과 같은 73년 전-, 같은 1933년 출생이니 틀릴 수가 없다, 천황 폐하는 곧 73세가 되신다. 1960년 2월 23일에 태어나신 황태자 전하는 46세-, 고이치도 살아 있었다면 46세가 된다. (중략) 나와 천황 황후 양 폐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고작 줄 하나다.
천황 황후 양 폐하의 차가 지나간다. "도전하거나 욕심내거나 방황하거나 하는 일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인생(p171)"을 살았으리라. 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황 폐하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사는 노숙자 하나가 서있다. 아들 고이치와 아내 세쓰코를 싸늘한 주검으로 떠나 보내고, 딸 내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스스로 노숙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가 서 있다. 공교롭게도 그 둘의 나이도 그 아들들의 나이도 같다.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너무나도 이질적인 삶이다. 그 무엇이 이렇게도 다른 삶을 만들어 낸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