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지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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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일기

카나리아 섬에서의 자유와 소소한 행복

1970년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 전보를 보내 서로 연락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전보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것 말고는 딱히 지금과 그 시절의 크게 구분되지 되지 않는다. 아,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생활의 불편함을 제외하면 사람사는 이야기가 다 거기서 거기다. 즉, 그녀의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게도 큰 귀감이 되는 내용들이 많다. 그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찬찬히 돌아보게 했다.

스페인 남자인 남편 호세와 타이완이 고향인 중국 여인 싼마오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싼마오의 시각으로 담겨 있다. 뭔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 조합의 이 부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고, 이야기들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하구나'였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사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지역에서 살다가 전쟁을 피해 카나리아 섬으로 이주했다. 낭만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카나리아 섬의 생활은 낭만도 있지만 현실이 마주하고 있었다.

산문집이다. 열 두가지 일상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그런데 마치 소설처럼 시트콤처럼 재미있다. 일상을 재미나게 바라보는 싼마오의 글담이 뛰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듯한 그녀의 일상이 글을 통해 생생하고 살아있는 현실의 소설과 같은 재미난 이야기로 탄생했다. 은근하게 재미나고 그 끝이 궁금해지는 그녀의 필력에 왜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인지를 실감한다.

인생의 끝자락에도 봄날이 있고 희망이 있고 자신감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향한 끈질긴 사랑 그리고 진실하고 지혜로운 삶의 태도가 빚어낸 기적처럼 눈부신 만년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나라는 사람을 확실히 모른다. 남은 내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내가 한물간 폐물로 여기던 노인들, 그들은 내게 그 어떤 교실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바닷마을 이웃들 (p28)

청소부 할아버지는 웃통을 벗고 반바지에 맨발로 다닌다. 어느 누가 관심도 가져주지 않고 돈을 버는 일도 아니지만 청소부를 자처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또 다른 노인이 있다. 에릭 할아버지는 퇴직 후 이웃을 위해 이러저런 잡일을 해주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데 돈은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이웃 집의 할머니 애니와 에릭 할아버지는 함께 살기로 했다고 한다. 서로의 과거를 이해하고 사랑의 환희가 넘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데 카나리아 섬의 노인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살아간다. 물론 돈이 의미없는 나이가 되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게 무엇인지에 대해 인생의 끝자락에 맞닿은 노인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한다.

이런 가정생활은 어떤 토대 위에 세워진 걸까? 생각하지 않으련다. 내일 아침 눈을 떠보면 푹신한 내 침대 위에 있을 테니까. 라면만 먹어도 되고 케이크 따위는 안 만들어도 된다. 억지로 미소 짓지 않아도 되고 깔깔대며 맘껏 웃어도 된다. 가정생활의 토대고 뭐고 깊이 따지고 들 이유가 없다.

나의 가정생활 ( p107)

스페인에서 온 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족이 한달동안 싼마오 집에 머무른다. 시댁 가족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 싼마오는 해방감을 맞는다. 그 환희가 글 밖으로 튀어나오려 한다. 세상 어느 곳이나 시댁과 며느리의 갈등은 동일한가보다. 싼마오는 매우 순종적인 며느리다. 그간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건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마음 헛헛한 며느리의 모습이 이 짧은 이야기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스페인 남자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나보다. 눈치없고 아내를 나무라는 호세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내 모습이 혹시나 그랬을까 조심스레 되돌아 본다.

대한민국의 며느리 마음을 공감해 주었던 <82년생 김지영>이 한때 핫했던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비슷하게 엄마이자 며느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엇기 때문이리라. 싼마오의 '나의 가정생활'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세지와 같다. 공감만큼 큰 위로도 없다.

"그건 말이야, 하느님이 아이들을 천사에게 맡기기 전에 천사 심장을 애들 몸속에 몰래 넣어 놨거든. 그래서 천사는 아이를 만나기도 전부터 자기가 지킬 아이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감동해서 울기 시작해."

수호천사 (p151)

'수호천사'는 끝부분을 읽기 전까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이웃집 아이 토미도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토미와 싼마오의 대화는 천사가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싼마오는 천사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토미는 천사가 없다고 말한다. 싼마오는 천사는 잘 울기도 하고, 아이에게 몽땅 좋은 것을 내주고 지켜준다고 말한다. 그 천사를 떠나면 아이는 늙은 천사를 그리워 한다. 하지만 자신도 천사로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눈치채지 못했고 비로소 마지막 한 줄을 읽고 나서 '우와' 감탄사를 내뱉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 없이 이번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꼈던 내 자신이 뭔가 한심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수호천사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덧 날개가 돋아 난 내 모습이 보였다.

사하라 사막을 떠나온 우리는 북아프리카 부근 대서양에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터를 잡았다. (중략) 스페인령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북유럽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거나 퇴직하고 여생을 보내는 안락한 땅이었다. 스페인 사람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은 1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고 햇살이 따사로워 사계절이 봄과 같았다.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 (p239)

싼마오는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여성작가로 1943년 중국에서 태어나 1948년부터 타이완에서 살았다.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세계를 떠돌았다. 1973년 스페인 남자 호세와 결혼해 북아프리카 서사하라에 정착했다. 1979년 남편 호세는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갔고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라니아 섬으로 이주하여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책 <허수아비 일기>에 담겨 있다. 카라니아 섬으로 오기 전 싼마오는 사하라 지역에서 남편을 만나 서사하라에서 호세와 결혼하고 살았다. 이 신혼 이야기는 <사하라 이야기 1,2>에 담겨 있다. 싼마오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더욱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조만간 <사하라 이야기 1,2> 를 구해 읽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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