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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돈키호테, 스페인 그리고 음식"
이 책을 읽고 세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돈키호테', '스페인' 그리고 '음식'. <돈키호테의 식탁>은 이 세 단어가 잘 버물어진 맛있는 에세이집이다. 소설가 천운영이 쓴 에세이라 더 맛깔난 표현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돈키호테가 매우 궁금해졌다. 훌쩍 스페인으로 떠나고 싶어졌고, 책에 소개된 스페인 음식 및 한국 음식들의 맛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천운영 저자의 친숙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참기름, 북어, 토토리 묵, 홍어, 가지 등과 연관된 저자의 에피소드가 먼저 소개되고 자연스럽게 스페인 음식 혹은 돈키호테 이야기로 연결된다. 어떤 방식으로 그 둘이 연결되는지도 이 책의 묘미다.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지만 사람 사는 방식은 다 비슷하다.
스페인은 돈키호테에 나온 음식들이 일종의 관광 상품처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돈키호테를 읽고 그 음식들을 공부한 뒤 스페인을 여행하면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이 책을 다시 읽으면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좀 미친 짓이었다. 돈키호테와 같았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 내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선다는 것. 그건 어떤 외국인이 전주에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고서는 그게 '홍길동전'에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전국팔도를 누비며 홍길동의 자취를 쫓아 조선 시대 음식을 찾아다니는 일과 비슷했다. 반벙어리 까막눈 주제에. 무려 400년 전 음식을 먹어 보겠다니. 그런데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저자의 용기가 참 대단하다. 스페인어도 잘 모르는데 돈키호테의 흔적을 찾아 스페인을 돌아다닌다니. 여차저차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렇게 책을 냈으니 성공적인 여행이 되었나보다. 책에서는 한국 및 스페인의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는데 설명만으로 그 음식들을 떠올리려니 참 고역이다. 사진이 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에 상상하는 재미가 나름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 음식들을 나중에 직접 확인한다면 즐거움이 더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돈키호테를 위한 영혼의 음식이자 진정한 묘약은 피에라브라스 향유가 아니라, 기름 잘잘 흐르는 말린 청어인 듯하다. 최악의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사르디나스 아렌케, 염장 청어. 잘 바른 살도 아니고 소박하게 대가리 두 개.
염장 청어가 무엇인가. 우리의 과메기. 그러니까 그 순간 돈키호테는 과메기가 생각났다는 것이지.(중략) 마음 같아서는 돈키호테에게 구룡포 과메기 짝짝 찢어 마늘, 파 넣고 미역에 싸서 초고추장 푹 찍어 한입 먹여 주고 싶은데.
저자가 경험한 염장 청어는 짜고 비린데 고소해 과메기와 비슷했다고 한다. 염장 청어는 청어를 소금에 절여 훈제 건조 방식으로 만든다. 사르디나스 아렌케라 부른다. 구운 야채와 함께 빵에 올려 먹기고 하고 올리브유에 담가 먹기도 하는 스페인 음식이다. 유명한 음식인데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이유는 우리와 맞지 않는 독특함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유명한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니겠지? 과메기와는 분명 그 맛이 다를 것이며 염장 청어의 비린 맛에 한 입 베어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 염장 청어가 궁금하고 한 번 맛보고 싶다. 최악의 순간, 돈키호테가 떠올린 음식이라니. 아쉬우니 과메기라도 먹어볼까.
스페인에서 '무화과나 먹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엿이나 먹어라', '감자나 먹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략) 나라면 이 섹시한 무화과를 그 천박한 비유에 갖다 붙이지 않았겠지만. 섹시함과 천박함은 한 끗 차이니까. 무화과는 말리면 쭈글쭈글해지는데, 그 모양 때문에 늙은이에 비유되기도 한다.
천운영 저자의 음식 이야기가 참 재미나다. 자신만의 이야기와 경험을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음식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그래서 스페인 음식들 이야기가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스페인 음식들이 친근한 음식으로 바뀌는 신기한 필력이다. 어린 시절에는 무슨 맛인지 잘 몰랐으나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맛을 깨달았다는 무화과, 나 역시도 그러하다. 이 무화과가 스페인에서는 욕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라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스페인 사람에게 '무화과나 먹으라'고 말할 일이 이 생을 살면서는 절대 없겠지만 기억해두어도 나쁘지 않을 상식이다.
야 이 평생 마늘만 먹고 살 양반아. 내가 널 붙잡아서, 어머니가 낳아 주신 모습 그대로 홀딱 발가벗겨서, 나무에 꽁꽁 묶어 놓고, 삼천삼백 대가 아니라 육천육백 대를 때려 주고 말 테다. 나한테 말대꾸할 생각일랑 마라. 아주 혼이 쏙 빠지게 제대로 때려 줄 테니까.
돈키호테 이 양반, 점잖은 줄 알았더니 욕 한번 제대로 날리신다.
한국에서만 마늘을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도 않나보다. '알리올리'라는 소스를 익히 들어봤듯 스페인에서도 마늘을 주재료로 한 음식들이 상당하다. 마늘 스프, 마늘 가스파초, 감바스 알 필필, 감바스 알 아히요 등 마늘없는 스페인 음식은 상상하기 힘든 정도라나. 산초가 총독으로 떠나기 전 마늘과 양파를 먹지 말라는 당부를 하는데 이는 마늘 냄새가 비천한 신분을 드러내기 때문이라 한다. '평생 마늘만 먹고 살 양반아'라는 말이 돈키호테에 나온다니 우리나라와 표현은 다르지만 저주를 퍼붓는 그 의미는 전달이 되는 듯 하다. 음식과 배경을 이해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참 재미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