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 뮤지컬 <붉은 정원> 원작 소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6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김학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첫사랑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다시금 불러오다"

'첫사랑'이란 단어만으로 사람의 마음이 흐물거리는 느낌이다. 아련하고 갈망하지만 잡을 수 없었던 그 아득한 '첫사랑'의 감정이 올라온다. 제목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꼈던 그 복잡한 감성, 감성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흩날렸다. 그 첫사랑의 감성을 제대로 가지고 놀 줄 아는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고전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다.

러시아 고전소설 <첫사랑>은 투르게네프(1818~1883)의 작품으로 천재적인 문호로 대우받는 작가다.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작가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 묘사, 세밀하고 세련된 표현들이 일품이다.

<첫사랑>, <아아샤>, <밀회>, <사랑의 개가>까지 총 4작품이 담겨있다. 밀회는 단편이며 나머지 3작품은 중편의 길이다. 그 중 나는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첫사랑>이 단연 기억에 남는다. 특히 첫사랑에 빠져 허우적 거렸던 경험이 있는 남자가 이 소설을 읽으면 큰 공감을 할 것이라 자부한다.

싱싱하고도 아름다운 그녀의 몸 전체에는 교활함과 어수룩함, 기교와 단순함, 조용함과 활발함, 이런 것들이 뒤섞인 특이한 매력이 넘쳤다. 그녀의 말 한마디, 그녀의 일거일동에는 미묘하고 경쾌한 아름다움이 넘치고, 그녀의 모든 것이 독특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쉴 새 없이 변화하여, 언제나 표정이 풍부했다. 그것은 냉소와 수심과 정열을 거의 동시에 나타냈다.

p54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 '지나이다'는 주변의 남성을 거느리듯 어장관리 능력치도 상당하다. 우리의 주인공 볼리데마르 역시 이 어장의 물고기가 된다. 주인공은 지나이다를 처음만난 그 순간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보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대며 그녀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녀도 안다. 남성들이 자신에게 홀딱 빠져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아래에서 허우적거리는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을 마음을 거느릴 줄 아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주인공은 지나이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키스를 하는 등의 여지를 주며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게 더욱 빠져들 뿐이다. 그러다 지나이다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정말 사랑에 빠져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세세하고도 비합리적인 행동과 감정을 소설에 잘 담아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의 본인의 경험을 이 소설에 녹아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바로 자기 자신과 같다고 말한다. 제대로 날 것의 감정이 천재적 문호의 글로 탄생된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첫사랑의 감정 표현과 섬세한 묘사가 인상깊었으나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스토리다. 지나이다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이며 이를 주인공이 알게 된다는 부분은 매우 충격적이다. 소설을 진행하면서 이 부분을 암시적으로 알려주고 있지만 설마 설마 했던 그 일을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 다른 서평들을 읽다보니 이 소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음에 더욱 재미를 느꼈다. 이 소설을 중편의 길이로 열린 결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뭔가 알려줄 듯 하지만 속시원하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고 소설이 마무리된다. 그렇기에 실제 내막은 알 수 없으며 대략적인 추측을 할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지나이다의 관계가 부적절한 관계일수도 있으나 혈연 관계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설득력이 전혀 없지 않고 충분히 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그녀의 가슴은 바로 내 가슴 가까이에서 호습하고, 그 손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갑자기 - 아아, 그때 나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그녀의 부드럽고도 싱싱한 입술이 내 얼굴 전체에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내 입술에도 닿았다. (중략)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그때 내가 경험한 행복감은 내 일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달콤한 아픔이 되어 내 전신에 넘쳐흘렀고, 급기야는 환희에 찬 도약과 부르짖음이 되어 용솟음쳐 나왔다. 참으로 나는 아직도 어린애였던 것이다.

p76

책을 읽는 나 역시도 매우 혼란스럽다.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건가 아닌건가. 아주 혼을 쏙 빼놓는다. 좋아하는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밀당을 하는 건지 당췌 알 수가 없다. 그런 주인공의 심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된다. 그러면서도 싱글벙글한 주인공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뭔가 부럽기도 하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또 하나 이 소설이 빛나는 한 부분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상황이다. 주인공이 첫사랑 지나이다를 다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뭔가 실망스럽지 않을까. 살이 쪄서 후덕해졌을 수도 있고, 예전의 매력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물론 예전의 모습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첫사랑은 첫사랑의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처럼 아득하게 첫사랑의 추억으로 남겨둔 것이 이 소설을 더욱 빛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역할을 다 했다.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해 푹 빠져 읽었다. 수많은 찬사를 받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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