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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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샤르트르의 모든 사유는 <구토>에서 흘러나왔고, <구토>로 흘러든다"

장 폴 사르트르의 프랑스 고전 소설 <구토>를 만났다. 20세기 프랑스 대표 지성, 샤르트르 사상의 출발점, 문학 창작의 교차로 등 다양한 수식어구가 이 책 <구토>에 붙는다.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30세 빨간머리의 '앙투안 로캉탱'의 이 책의 주인공이다. 연금으로 인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 간다. 카페, 호텔, 도서관을 다니며 홀로 지낸다. 자유롭지만 고독함 영혼의 로캉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존주의에 대해 이해하고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듯하다. 실존주의란 "인간 존재와 인간적 현실의 의미를 그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시 파악하고자 하는 사상운동"이라 한다. 친절한 설명인데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 책이 씌였을 당시 20세기 독일과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철학 사상 운동이라고 한다.

이제 알겠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히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 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p34

이 소설을 관통하는 단어인 '구토', 이 단어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았다. 일맥상통하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며, 불현듯 어떤 사물들을 통해 로캉탱은 구토증을 느낀다. 현실 세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의식한다. 현실에 부적응하는 듯 비춰지며 불안감이 나에게 전해진다. 그러다 불연듯 구토로 혼미해진다. 책을 읽는 동안 지속적인 불안감이 나에게 전해진다.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꿈인지 현실인지 망상인지 구분하기가 힘들고 모호해진다.

우리가 살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배경이 계속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여기에 시작은 결코 없다. 날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날들에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끝나지 않는 단조로운 덧셈이다.(중략) 여기에는 끝도 없다. 어떤 여자, 어떤 친구, 어떤 도시를 단번에 떠나는 법은 절대로 없다. 그리고 모든 게 비슷하다. 상하이도, 모스크바도, 알제도, 보름만 지나면 똑같아진다. (중략) 이게 바로 사는 것이다.

p100

이 소설을 읽으며 느낀 점과 이 구절이 매우 닮아 있어 이곳에 적었다. '우리가 살 때'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사는 것'은 '끝나지 않는 단조로운 덧셈'이라는 표현이 매우 멋드러지고 시적이다. 소설의 진행은 로캉탱의 시각에서 시적인 표현들과 묘사가 서로 얽혀 표현되고 있다. 주변 사람과 지나는 풍경의 묘사가 단조로운 덧셈의 형태로 나타난다. 무언가 무기력한 로캉탱이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그러한 듯하다.

서로 사랑하고 있었을 때, 우리는 가장 작은 순간 하나도, 가장 가벼운 고통 하나도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뒷전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중략) 우리는 쉬지 않고 그것들을 즐기고, 그 고통을 현재형으로 겪었다. 추억 하나 남아 있지 않다. 그늘도, 물러섬도, 피신처도 없는 가차 없고도 뜨거운 사랑이 있을을 뿐이다. 동시에 현재로 존재하는 3년, 우리가 헤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 무게를 견딜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

p154

로캉탱과 안니의 사랑과 헤어짐을 표현한 구절이 매우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또한 매우 공감된다. 서로 사랑하기에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작은 것들 조차도 품어 안고 간다. 하지만 이것때문에 서로 힘들어져 떨어져 나가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닥친다. 뜨거운 사랑이었으나 무게를 견딜 힘이 서로에게 부족했다고 표현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일종의 고통스러운 강박관념을 유지하는 것은 나다. 바로 나다. 몸은 일반 한번 시작되면 저 혼자 살아간다. 하지만 생각을 계속 유지하고, 생각을 전개해가는 것은 나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 그러니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다. (중략) 존재하는 것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 이것들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나를 존재 가운데로 밀어 넣는 방식들이다.

p234

매우 심오한 철학이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이란 표현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상태에 집중해본 적이 있는가. 이 심오하고도 복잡한 표현들이 어지러운 상태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한 두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복잡미묘한 심리와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자유다. 이제 살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시도해본 이유들은 다 실패했고, 더 이상 다른 이유들을 상상할 수 없다. 난 아직 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하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하나? 가장 극심한 두려움과 가장 끔찍한 구토가 찾아왔을 때, 안니가 날 구해줄 거라고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 과거도 죽고, 롤브봉 씨도 죽었고, 돌아온 안니는 내 모든 희망을 앗아갔을 뿐이다. 나는 정원들에 둘러싸인 이 하얀 도시에서 혼자다. 혼자고 자유다. 하지만 이 자유는 조금은 죽음과 비슷하다.

p362

부빌에서 로캉탱은 파리로 가기로 한다. 존재에 대한 그 의미를 탐구는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 듯 싶다. 독학자는 사회학자이자 휴머니스트다. 하지만 독학자와의 대화는 오히려 고독을 불러 일으킨다. 6년 전의 연인 '안니'는 로캉탱에게 만나자고 제안하고 로캉탱은 기대감을 안고 안니를 만난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것일까 안니와의 만남은 오히려 허왕되고 쓸쓸하다. 구토의 의미를 찾아다니는 이 과정이 녹록치 않았고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해설을 살펴보면 "형이상학적 진리와 감정을 문학적 형태로 표현"했다고 한다. 현상학보다 더 현상학적인 구토의 철학적 표현은 높은 차원의 문학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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