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의 환상적인 세상





작가 '쓰네키와 고타로'의 작품을 두번째로 만난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만났던 소설은 <야시>다. 당시 사람들의 추천이 많아 <야시>를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었고 독특한 이 작가만의 세계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다. <야시>는 단편 소설집이었으나 비슷한 세계의 설정으로 마치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나는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고 당시 나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가을의 감옥>은 '쓰네키와 고타로'의 작품이라는 말에 고민없이 선택했다. 이 작가만의 독특함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총 3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익숙한 설정인 듯하면서도 정말 새로운 '쓰네키와 고타로' 작가만의 세계관은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어떻게 이런 상상력으로 소설을 쓰는지 신비할 따름이다. 마치 전래 동화, 구전 동화, 일본 요괴들과 같이 매우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판타지적 요소는 그 신비함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각 단편은 약 70페이지 정도인데 단편 하나 읽겠다고 자기 전에 책을 펼쳐보지 않기를 권한다. 책을 모두 읽을 때까지 책을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경솔하게도 자기 전에 책을 펼쳤고 마법에 홀린듯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 책을 덮을 수 없었다.

11월 7일 수요일은 계속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내가 지금 몇 번째 돌아온 것인지 헤아렸지만 곧 헷갈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기억 말고는 모든 것이 아침 상태로 회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록도 남길 수 없으니 내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었다. 일곱 번째 11월 7일인지 여덟 번째 11월 7일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가을의 감옥 (p19)

한 여대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11월 7일의 하루를 반복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어김 없이 11월 7일 아침 같은 시간 자신의 자취방에서 깨어난다. 기록을 남길 수도 없고 매일 다시 리셋되며 자신이 했던 행동은 오로지 자신의 기억에만 남는다. 그러다 자신과 같이 11월 7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하루 안에 갇히는 시놉시스는 이제 조금은 익숙한 스토리다. 그런데 이 스토리가 2007년에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익숙하지만 읽다보면 그 전개 방식은 매우 새롭다. 신비한 아우라를 풍기는 요괴와 같은 형상을 한 존재가 등장하는데 정체를 쉽사리 알려주지 않는다. 가을의 감옥 즉 11월 7일 안에 갖혀 버린 이 여대생은 과연 그토록 염원하던 내일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단편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마치 자기 전 할머니가 해주시는 이야기를 밤새 듣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는 특별한 집이오. 우리 마을이 수백 년 전부터 대대로 비밀리에 지켜온 신역이라고 이해하면 될 거요. 내가 예순이 되면 마을 소년 중에 후계자를 택하여 물려주게 되어 있었지. 그러면 나는 해방되는 것이고, 이런 방식이 내 대까지 내려온 오래된 관습이었고, 당연히 그렇게 될 줄로 믿고 있었소. 우리 마을에서는 이 집에서 지킴이 임무를 마친 노인은 살아 있는 신으로 숭앙하니까, 지킴이로 선택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라오.

신의 집 (p84)

한 남자가 우연히 공원을 거닐다 초가집을 만났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공간과 초가집이 낯설다. 그 집에서 오키나 가면을 쓴 남자가 나와 말을 건넨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그 남자는 할아버지로 보인다. 자신을 붙잡고는 이 집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는 사라진다. 그렇게 이 남자는 이 공간에 갖힌다. 그 할아버지가 나를 지킴이로 두고 떠나간 것이다.



일정한 주기로 공간이 옮겨지는 설정은 <야시>의 세계관 설정과도 닮아 있다. 미지의 공간과 현실의 연결과 그 통로의 설정이 절묘하다. 이 공간에 갖혀버린 남자의 심리가 변해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신의 집을 지키는 지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의외의 반전도 흥미로웠다.

할머니는 때때로 리오에게 신비한 힘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꽃을 피우거나 종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움직이게 했다. 리오는 할머니가 부리는 신비한 재주를 그저 감탄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중략) 리오는 청개구리를 바라보았다. 보석처럼 밝은 초록빛 몸에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개구리가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보고 있는 동안에 개구리는 작은 돌멩이가 되었다.

환상은 밤에 자란다 (p151)

여우귀신의 힘으로 환술을 부리는 할머니,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는 작은 소녀 리오. 할머니는 이 환술때문인지 마녀 취급을 받는다. 이 환상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주변인들의 욕심이 화를 불러 온 것일까 할머니의 집은 불에 타게 되고 리오는 살아서 원래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환술을 부릴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환술로 인해 감옥과도 같은 공간에 갇힌 리오는 파도를 통해 그 힘이 증폭된다.



리오의 심리적 변화와 일대기를 함께 하면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정의의 편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들과 마치 환술에 갖쳐 버린 듯한 오묘한 혼란은 갈수록 증폭된다. 리오의 능력은 다시금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 모두 여기에 갇혀버렸어

이 소설은 환상 그 자체다. 단편이라 정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야기꾼에게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더 이상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정말 속상하다. 그래서 '쓰네키와 고타로' 작가의 다른 책들을 모조리 읽어버릴 생각이다. 벌써 <야시>와 <가을의 감옥> 2권이나 읽었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야시>는 데뷔작으로 제12회 일본호러소설대상(2005년) 수상작, 제134회 나오키상 후보작

<천둥의 계절>은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2006년> 후보작

<가을의 감옥>은 제29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2007년) 후보작

- 2007년에 출간되었고, 2008년 한국에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어 수많은 독자들의 재출간 문의로 재출간됨.

<금색기계>는 제67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2014년) 수상 - 당대 최고 작가들이 거쳐간 미스터리 분야 최고 권위상.

<멸망의 정원> 제9회 야마다 후타로상(2018년) 후보작 - 그해 출간된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에게 시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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