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트
아네 카트리네 보만 지음, 이세진 옮김 / 그러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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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트

우리 내면을 감동으로 채우는 소설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심리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 '아네 카트리네 보만'의 첫 소설 '아가트'를 만났다. 이 소설은 2019 스크리베레 페르 아모레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의 무기인 심리학은 이 소설에서 한껏 빛난다. 소설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 내면의 그 무엇을 건드리는 작은 꿈틀거림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자극적이거나 극적인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 흘러가듯 시간이 되어 저물어가는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과 같은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72세의 정신과 의사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 막연하게 은퇴 후의 해방감을 기대하며 남은 진료 횟수를 세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새로운 환자인 '아가트 지메르만'을 만나게 되고 평온한 그의 삶이 흔들린다.

"나의 눈동자, 대략 그런 뜻이에요."

"또는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겠군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짚고 넘어갔다. "이제 내 진료실에서 당신 자신에게 쌍안경을 돌려보세요."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계핏가루를 뿌린 사과가 오븐에서 익어가는 냄새, 내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었던 요리의 냄새였다.

p47

아가트는 주인공이 기다리는 은퇴 계획에 느닷없이 끼여든 존재다. 세상을 촉감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가트는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잃은 존재다. 그저 귀찮은 손님에 지나지 않았던 아가트지만 나중에 다른 의사에게 넘기려는 생각은 주인공은 탐탁지 않은 심리 상담 시간을 갖게 된다. 그래도 아가트의 이야기에 성심 성의껏 심리 상담에 응하게 되고 서서히 그녀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 투영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공허한 가슴을 채워주는 작은 기적이 된다.

환자들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의 판에 박힌 일상에 코웃음 치고 남몰래 그들의 어리석은 근심 걱정을 비웃은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은퇴하고 나면 진정한 삶, 즉 이 지리멸렬한 일에 대한 보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상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가 된다고 해서 내 삶에 과연 즐길 만한 보람이 있는 그 무엇이 있을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확실한 것들이라고 해봤자 두려움과 외로움이 아니겠는가? 비참한지고. 나도 결국은 내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p50

현재 나의 생각과 마음을 대변하는 글이 아닌가 싶다. 현재의 나의 삶에 마음 속 깊이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그저 미래에 대한 보상을 기다리며 보낸다. 보람이 있는 삶일지 아닌지에 대해 깊은 관찰을 하기는 커녕 넋두리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가트는 이러한 우리의 삶에 던지는 돌멩이와 같은 존재다.



또한 옆집 남자 에피소드는 특히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피아노를 치는 옆집 남자에게 이웃으로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이웃 남자에게 다가가는데 그 이웃이 귀머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웃에게 자신이 직접만든 사과 케이크를 선물하는 모습은 인간관계에 대한 망설임을 깨부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알메다 부인이 정말로 나아지고 싶어 한다면 내가 보기에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게다가 그 두 방법을 조화롭게 병행해야 합니다. 하나는 평소 하는 일을 줄이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부인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그 무엇을 찾아 행하는 겁니다. (중략) 있잖아요.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좀 이상해요. 저 자신도 늘 그렇게 생각해왔거든요.

p130

사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 자신을 옥죄고 살아가고 있다. 내 자신을 의미있게 하는 그 무엇을 찾는 일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일을 등한시하며 살아간다. 삶의 권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소설 안에서 참 묘한 감정을 느낀다. 지금 보다 어린 나이에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 생활이 익숙해지고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의구심이 생겨나는 서른 중후반의 내가 이 책을 읽노라니 소설이 가슴에 스며 들어온다. 내가 좀 더 사회를 경험하고 더 성장한 이 후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 더 이 책이 전하는 감동을 진하게 느낄 것이라 믿는다.


같이 들어가실래요, 아니면 어떻게 할까요?

p158

마지막 이 말을 그냥 읽었을 때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구절을 읽고나니 이 마지막 멘트가 매우 의미심장한 말로 다가왔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그 선택을 하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 지금 하는 선택이 나의 미래를 좌우하며 이 선택에 따라 미래를 결정짓는다. 아가타가 주인공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건네는 말이 아닐까? 삶의 권태에 빠져 있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에 망설이지 말자. 그 선택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으며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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