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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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하버드의 명강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2장에서는 '공리주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것을 쉽사리 선택하기 힘든 모순이 되는 상황을 제시하고 공리주의 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강의를 통해 '공리주의'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익히 알고 있는 '공리주의', 현대지성에서 출판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만났다. 자칫 간단하며 쉬워 보일 수 있는 공리주의는 생각했던 이상으로 어렵게 다가왔다. "<공리주의>를 처음 읽은 독자들은 문장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이하기 위하여 대화 형식을 취하면서 구체적 사례를 많이 제시하는 해설을 마련해보았다. (p175)"라는 말로 시작되는 역자 이종인님의 작품 해설이 '공리주의'를 이해하는 큰 도움이 되었다.



<공리주의>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어렸을 때부터 영재로 비범한 삶을 살았다. 3살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8살에 라틴어를 배우고 라틴어 고전을 읽었으며, 12살에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다. 13살은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14살에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며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각종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한 일반적이지 않은 영재 출신 밀은 <논리학 체계>, <정치경제학 원리>, <자유론>, <대의정부론> 등의 저서를 냈다.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옳은 행동이 되며, 만약 불행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그른 행동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어떤 의도된 쾌락이며,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반면에 불행은 쾌락 없음과 고통을 의미한다.

제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 쾌락과 행복: 공리주의의 기본 전제 (p21)

개인의 행복과 쾌락이 연결되어 있으며, 쾌락이 없고 고통인 상태가 불행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쾌락이 높은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된다는 의미가 되는데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이 과연 맞는가란 의문이 생겨난다.



쾌락에도 종류가 있다. 양적 쾌락을 우선시한 벤담의 공리주의와 질적인 쾌락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창한 밀의 공리주의는 비슷하지만 지향하는 바가 다른 공리주의다. 벤담은 밀의 스승으로 공리주의의 포문을 열었다면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밀은 돈이나 권력의 물질적 질낮은 양적 쾌락보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질적으로 높은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리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은 광적인 황홀함의 삶이 아니다. 몇 안 되는 일시적인 고통과 다수의 다양한 쾌락들로 이루어진 인생에서,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고, 전체 삶의 밑바탕으로서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간들, 바로 그런 순간들을 가리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차분한 삶은, 운이 좋아 그것을 얻은 사람들에겐 언제나 행복한 인생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제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반론 (p33)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고, 차분한 삶을 살아감을 의미하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밀 역시 돈이 행복의 수단 중 하나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 자체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경고하고 있다. 공리주의 철학의 이론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고 공리주의 사상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반박들에 대해 그렇지 않음을 상세히 설명으로 해명하고 있다. 그 과정이 자칫 어렵게 다가오기에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나 차분하게 다독을 한다면 그 세세한 부분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대상이 눈에 보인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사람들이 그 대상을 실제로 본다는 것이다. 소리가 들린다고 할 때 그 소리의 유일한 증거는 사람들이 그것을 듣는다는 것이다. 인간 경험의 다른 증거들 역시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내 생각에,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바란다는 사실로 증명할 수 있다. (중략) 왜 일반 행복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

제4장 공리의 원리는 어떤 증명을 내놓을 수 있는가? / 욕망은 행복의 존재 증명 (p74)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맞는가란 의문이 있다. 행복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없다고 밝힌다. 행복이 최고 목적이 되는 것임은 그냥 그러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바로 행복이기에 그 자체가 증거가 되다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의미가 없이 모든 사람이 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 정당화 된다고 말한다.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다들 행복의 추구라고 대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일률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중략) 밀의 <공리주의>는 의무보다 행복을 더 강조합니다. 물론 밀의 의무를 행복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는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작품 해설 / 춘향이 숲에서 만난 사람 (p182)

갑과 을의 대화를 통해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일률적 적용은 어렵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기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행복을 강조하는 밀의 주창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과 찢어지게 가난한 대가족의 장녀의 인생에서 의무와 행복 중 어느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무시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장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합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젊은이는 그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는데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은 이런 사정을 참작해 정언명령의 실천이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는 공리주의 철학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작품 해설 / 정언명령은 지하철 속의 사건 (p185)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가진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정언명령을 모두 지키며 살아가기란 실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거짓말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 인생사는 모순이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일상의 사례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게 된다. 작품 해설에서도 모순이 되는 상황들을 제시하고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이런 철학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철학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떤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이 맞는가,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내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상의 철학을 하도록 만드는 <공리주의> 철학에 흠뻑 젖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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