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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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이것은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혹적이다

- 톰 행크스(배우)





시종일관 차분하게 소설은 진행된다. 스토너의 1인칭 시점으로 나는 스토너의 일생을 함께 했다. 마치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스토너의 입장에서 함께 느끼고 생각했다. 스토너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곱씹고 그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올곧은 스토너처럼 헌신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울 수 인생일 수 있을까란 생각에 잠겼다.



스토너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 소신과 신념을 갖는다.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한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바르게 나아간다. 어쩌면 지극히도 평범한 스토너의 일생이 우리의 모습과 닮았고 우리가 살아가려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삶이 맞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책을 읽다보니 어느 덧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p6

윌리엄 스토너에 대략적 설명으로 책은 시작한다. 단 몇 줄에 이 책의 줄거리가 제시되고 있다. 그저 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선 스토너의 이야기는 무엇하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도 평범해 보이는 스토너가 이 책의 주인공인지 어리둥절했다. 이 첫 문단을 읽고서도 딱히 책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읽어보자는 심산에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참 설명하기 힘든 묘한 끌림이 나를 매료시켰다. 평범한 스토너의 모습에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그를 응원하고 함께 분통해 하며 가슴 아파하고 답답해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랑비에 옷이 젖는 서서히 이 소설에 젖어 들었다.

그는 대학 도서관의 서가들 속에서 수천 권의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죽, 천, 종이로 된 책들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마치 이국적인 향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책을 한 권 꺼내서 커다란 손에 잠시 들고 있었다. 아직 낯선 책등과 표지의 느낌, 그의 손길에 전혀 반항하지 않는 종이의 느낌에 손이 찌릿찌릿했다. 그러고는 책을 뒤적이며 여기저기에서 한 문단씩 읽어보았다.

p23

문학이라는 주제는 이 소설을 관통한다. 영문학 교수인 스토너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자 대학에 진학했지만 문학의 맛에 빠지게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가난한 무일푼의 성실한 스토너의 시작에서 우리는 스토너를 응원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냈다. 그간 열심히 부모를 도왔고 자신의 본분을 다했으니 원하는 공부를 시작할만 했다. 그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고 그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문학만 아는 바보같은 사람이었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 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p249

매우 인상깊은 대목이다. 겉치레 뿐인 무의미한 결혼 생활, 이디스의 손아귀에서 무기력한 딸 그레이스, 척을 지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로맥스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노력을 하지만 알아주는 인정도 명성도 없다. 스토너에게 다가올 사랑이 그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이 사랑도 결국 고통으로 끝날 지언정 그에게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의 불륜이 다른 이의 눈에 정당화 될 수 없지만 스토너의 편에서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스토너의 불륜을 응원하고 있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p270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문구들이 이 소설이 문학의 정수임을 일깨운다. 흔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시기적절하게 스미듯 배치된 이 문장들이 스토너의 삶과 연관된다. 다른 이들을 가르키는 박사인 스토너가 마흔셋의 나이에 깨우치는 것들에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배우고 또 배워도 부족한게 사랑과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윌리엄 스토너는 과연 성공한 인생일까 실패한 인생일까. 누군가는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스토너가 나름 선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저명한 학자가 된것도 아니고 길이 기억될 사람도 아니다. 백점을 줄 인생은 아니지만 뒤늦게나마 사랑을 했고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었으며 인생에 후회될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없이 잘 살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아직 젊은 나에게 윌리엄 스토너의 삶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이 밀려왔다. 나의 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의 기분이 스토너에 물들어 한동안 지속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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