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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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문학 그리고 두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





캄보디아 소설을 처음으로 만났다. 휘트니어워드에서 최우수소설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에 기반해 탄생한 이 소설의 배경인 스퉁 민체이의 쓰레기 매립지는 2009년 폐쇄 되었다고 한다. 책의 말미에 소설의 배경과 인물들의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어 사실감을 더한다.



캄보디아의 스퉁 민체이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사는 주인공 '상 리'는 남편 '기 림'과 함께 아들 '니사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쓰레기 더미에서 돈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 팔아서 근근이 살아간다. 가난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최하층민의 삶을 살아간다. 하루 밥벌이도 힘든데 아들 니사이는 병약하다. 아들은 설사와 고열을 달고 살기에 '상 리'는 고민과 걱정을 달고 살아간다.



렌트 콜렉터(Rent Collector)는 집세 수금원이다. 항상 술에 취한 거구의 여인 '소피프 신'은 암소라는 별명을 가졌다. 괴팍하고 집세를 받아가기에 사람들이 좋아할리 만무하다. 소피프는 상 리의 집에서도 집세를 받아간다. 이 의문의 여인 소피프는 과거 9년 간 프놈펜국립대학 문학부 선생님이었다.

나도 글을 읽는 게 약을 대신한다거나 몸을 낫게 해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뭔가를 기대하게 하고 무언가와 맞서게 하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아이가 용기를 얻을 거라 믿고 싶어요.

p61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동화책을 계기로 상 리와 소피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상 리는 소피프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무엇때문에 소피프는 상 리의 부탁을 들어 주었을까. 이 순간부터 두 여인의 수업은 시작된다. 책과 글을 통해 쓰레기 산에서 벗어나고 싶은 상 리와 쓰레기 산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소피프는 수업을 통해 서로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문학은 많은 장난감을 넣어 구운 케이크랑 비슷해. 그러니까 장난감을 모두 찾는다 해도 그것들을 찾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그런 걸 두고 헬러라는 미국 극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어. '그들은 문학에 대해 모든 걸 이해했지만 단 하나, 문학을 즐기는 법만큼은 알지 못했다.' 라고."

p159

문학에 대한 소피프의 말을 기억해 두고 싶어 적었다. 쓰레기 더미 안 세상에서 소피프는 대학 강의실에서 들을 법한 진귀한 보석과 같은 교육을 받게 된다. 나도 이 책을 통해 덩달아 소피프의 문학 강의를 엿듣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과연 문학을 제대로 즐기면서 책을 읽고 있는가란 생각을 하게 했다. 그저 서평을 쓰기 위해, 지식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아무런 목적없이 그저 읽기만 하고 있는게 아닐까란 의구심이 일었다. 문학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문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참 어렵고도 재미난 친구다.

상 리, 상타깝게도 역설적이고 혼란스러운 측면이 하나 있어. 우리가 모든 문학 작품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현실에서조차 멋진 왕자님과 함께 하는 삶을 기대한다면, 책을 덮고 나서 산산이 부서진 꿈만 확인하게 될 거야. 반면에 이런 이야기의 의미를 문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여긴다면 삶을 바꿀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을 놓치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문학의 존재 이유까지도 사라지고 마는거지.

p219

백설공주로 익히 알고 있는 사란 이야기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사란 이야기가 책을 모두 읽은 뒤 다시금 생각났다. 물론 꿈과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렌트 콜렉터 소설도 역시나 꿈과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화에 기반했으나 소설이기에 어디까지 실화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의구심이 드는 순간 사란 이야기와 더불어 소피프가 전한 이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이미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재미를 느꼈고 문학적인 느낌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난 셈인데 이 책의 잠재적 힘을 등한시 했다.

...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침묵해버렸어. 그 후로 내내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지.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좋든 나쁘든.

나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받아주게, 상 리. - 자네의 스승, 소피프 신.

p380

책의 중후반부의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감있게 읽었다. 소피프의 과거사에 대한 내용과 소설의 훈훈한 결말이 담겨있다. 소피프의 지난 과거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졌던 사건과 자신만이 살아남게 된 경위는 현재의 소피프가 선택한 삶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소피프를 찾기 위해 단서를 찾아 가는 과정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문학 안에 남겨 놓은 소피프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 상 리가 소피프의 마지막 숙제를 하는 것만 같았다. 소피프의 숙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상 리 뿐이었다. 그녀였기에 소피프가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동안 많은 단어와 문장을 배웠음에도 이런 감정을 어떻게 멋지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다. 더럽고 오염된 곳인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주변이 온통 하얗고 깨끗한 담요로 뒤옆여 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랄까. 불결하고 불확실하고 두려웠던 모든 감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에 에워싸인 안도감이랄까.

p450

소피프의 마지막 사랑은 어떤 것일까. 괴팍한 암소 취급 받았던 한 여인을 이제는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자신이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신의 대가를 치러내며 살아왔다. 본인의 선택으로 속죄의 인생을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분명 주인공은 상 리 였으나, 책을 모두 읽고난 뒤 이 책의 주인공은 소피프로 달라져버렸다. 참 신비한 책이다.



가독성이 높아 책을 읽어 나감에 큰 무리가 없었다. 중반부까지는 쓰레기 더미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을 보는 느낌이었다면 중후반부에서는 숲을 헤매다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던 그 곳이 꽃이 만발한 곳임을 깨우치는 느낌이 들었다. 매우 문학적 표현이며 은유적인 표현이니 곧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왜 이 책이 휘트니어워드에서 최우수소설상을 받았는지 책을 끝까지 읽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분명 이 책에 상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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