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



"인간다워지고 싶은 반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2012년에 동일 제목으로 기출간되었던 <반인간선언>은 리커버로 재출간되었다. 또한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원작 소설이다. 인간이기 위해 인간이길 거부한 '반인간선언'이라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흡인력으로 소설이 읽힌다.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소설의 끝으로 사정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 이르러서야 무기력해진 주인공과 마주한다.



정치와 기업의 유착의 무서움과 자신들의 영역 침범에 대항해 비윤리적인 행태를 자행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만났던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 말미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현실을 담았다는 점이 아닐까. 불합리, 불의에 대항하여 크레인에 올라선 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서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온전히 보존된 한 구의 사체가 아니었다. 잘린 손, 그 하나였다. 손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흡사 밀랍으로 빚어진 느낌이었다. 부검대 위에 놓인 잘린 손을 보며 서희의 머릿속은 아득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제대로 실감되지 않았다.

p15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젊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서희와 연쇄 살인 사건의 뒤를 쫓는 강력 2팀의 민서, 이 두 시각으로 사건은 진행된다. 광장에서 발견된 사체의 손은 서희의 전남편 정상훈의 것으로 추청된다. 사체의 손에 끼워진 반지는 CS 기업에서 특별히 기여한 사람에게만 수여되는 반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건의 속으로 들어왔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훈이 남겼다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필 서명을 남겨 자신이 쓴 글임을 확인받으려고 한 의지가 다분한, 그 글을 서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새롭게 올라온 유다의 숙명이라는 종교적 고해의 글과 상훈이 남긴 글이 기묘한 리듬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80

상훈의 흔적을 따라 하나씩 파헤치는 과정에서 상훈의 오피스텔을 찾은 서희. 그리고 우연히 그의 블로그에서 글을 발견하고 무언가 숨겨진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정상훈이 남긴 유서에 씌인 글과의 유사성에 궁금증이 더해만 간다. 정상훈은 왜 유서를 남겼고 이런 흔적을 남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시원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전말에 얼마나 대단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이 점점 올라갔다. 이 모든 것들이 사건을 능동적으로 접근해 나가도록 돕는 장치였다는 점에 놀라웠고 매우 흥미로웠다.

두 손이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다. 오른 손목이 잘려 나갔으며, 오른 발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장과 장기들이 정교한 솜씨로 파헤쳐진 채였는데, (중략) 무엇보다 서희를 경악하게 만든 건 사체의 목이었다.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잘려 나간 것이다.

p155

매우 끔찍한 장면을 마주한다. 손, 발, 장기, 머리가 잘려나간 사체가 욕조 위에 매달려 있다. 전남편 상훈의 사체를 직접 확인하며 놀라움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가 살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녀의 희망이 산산히 무너지는 순간이다. 상훈을 이렇게 만든이는 과연 누구일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범인일까? 이 참혹한 공간으로 서희를 끌고 온 자는 과연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잘려 나간 한 사람의 신체, 그 몸의 주인이 지금 민서에게 사건의 진실을 목도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강요를 받아들인 당사자로 하여금 아무것도, 최소한의 다른 여지도 모색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요. 그것은 처절했다.

p218

서희와 민서는 이 모든 것들이 CS 그룹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처음부터 혼재된 단서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마지막 종착지에 다가감을 느낀다. 그 과정에 이들을 방해하는 세력의 움직임이 있다. 상훈의 비밀스러운 실험, 의문의 죽음들, 검찰의 유착 등 드러나는 과거와 검은 손의 움직임이 팽팽히 맞선다. 이들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의 결론에 나는 멍했다. 매우 무기력해졌다. 반인간선언의 대표 주자인 상훈의 선택과 높다란 크레인에 오르는 한 여인 서희의 모습에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울부짓는 그들의 모습에 증오감을 느낀다. 그저 흔한 소설과 다르게 대비되는 마지막 결말은 책을 모두 읽고난 후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하게 불편함을 심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