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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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평범함 사람들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들




중국 작가들의 소설들 중에서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작품들이 많다. <9천 반의 아이들>이 나에게는 딱 그러했다. 우리에게 이질적인 중국 문화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과의 정서가 비슷한 듯한 그들의 문화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서 공감, 희망, 좌절,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1997년의 일이다. 둥베이 지역의 교육 제도에 변화가 있었다.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략) 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받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과 달리 시험에서 1등을 한다 해도 별도로 9000위안을 내야 입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학교를 '9000반'이라 불렀다.

9천 반의 아이들 (p11)

총 10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그 중 단연코 책의 첫 번째 소설 <9천 반의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중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리모의 시선에서 그러지는 중학생 시절이다. 안더례라는 독특한 친구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뇌가 너무 뛰어나 현실 세계가 받아 들이지 못하는 듯한 안더례의 천재성은 가히 놀랍다. 수학적 사고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축구에는 젬병인 안더례다. 안더례의 도움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한 리모에게 해외 유학의 기회가 찾아온다. 허나 선생은 불법 과외 중인 쑤이페이페이를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1등으로 만들어 해외 유학을 보내려 한다. 이를 눈치 챈 안더례는 리모를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간다.



60페이지 정도 되는 내용이지만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고 감정 이입이 되었다. 가장 낮은 시선에서 불의에 대항하고 투쟁하지만 거를 수 없는 모습이 중국 사회의 현 상황을 적절한 비유로 반영한 듯 싶었다. 사회 주의 아래 자본 주의 사항이 결합된 독특한 중국의 모습이 잘 투영되었다.

내가 열한 살 때 신민 지역에서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와 장기를 뒀다. 그는 두 시간 시외버스를 타고 아버지가 자주 가는 커다란 나무 아래까지 아버지를 찾아왔다. "깜장 털 형님, 신민에서 형님 소문을 듣고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그자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서른도 안 돼 보였다. 아직 학생인 듯했다.

대사 (p170)

눈썹 꼬리 부분의 사마귀로 인해 '깜장 털'이란 별명이 있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 같은 자리의 사마귀를 가진 똑 닮은 아들. 이 부자의와 장기의 이야기를 그린 '대사(大師)'는 읽는 내내 매우 흥미진진했다. 희대의 장기왕 아버지는 뛰어난 장기 실력자다. 대결에서 삼세판을 두며 2판을 이기고 1판을 져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결코 내기 장기를 하지 않으며 선물도 일체 받지 않는다. 이런 확고한 철학으로 장기를 두는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가 기력이 쇠하여 다시는 장기를 두지 않는다 한다. 아버지의 실력을 빼닮은 아들은 다리 한쪽이 없는 낯선 이와의 장기 대결에서 패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서게 된다.



장기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 갈 수 있음에 놀라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연과 필연이 겹치는 만남과 그 운명의 마지막 대결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왔다. '깜장 털'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그 간 얼마나 노력을 하며 장기 실력을 다져 왔을까 싶다. 짧게 이야기가 끝나는 것만 같아 아쉬웠다. 할아버지에게 밤새 옛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



기차에 올라 옆자리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 신장 결석이 다 나아 다시 막힐 일이 없으니 내일이면 출근할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가방을 샤오미 방에 놓고 왔다. 안에 기차에서 처리할 업무 파일이 들어 있었다. 할 일도 없어졌기에 라오샤오가 내게 남긴 원고를 꺼냈다.

긴 잠, 이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긴 잠'이라고?

긴 잠 ( p232)

굉장히 독특한 소설 '긴 잠'이다. 허무맹랑 하기도 하고 마치 꿈 속에 다녀온 듯하기도 하며 신화의 내용을 담기도 한 듯한 오묘한 스토리가 기억에 남는다. 샤오미는 전 애인이다. 샤오미와 바람난 랴오샤오는 시인이자 내 친구였다. 랴오샤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의 유언에 따라 나는 샤오미에게 가는 길이다. 그리고 랴오샤오가 삼킨 사과를 지키기 위해 총알이 난무하는 샤오미의 집에 있다.



소설 말미에 '긴 잠'이라는 시를 계속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서 알듯 말듯하면서도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시를 나는 계속 읽게 되었다. 엄청난 일을 겪은 와중에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업무와 회사를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여운을 길게 가져가고 싶다.






* '9천 반의 아이들', '대사', '긴 잠' 이외에도 '평원의 모세', '절뚝발이', '건달', '기습', '큰길', '그라드를 나오다', '자유 낙하' 까지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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