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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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마음 따뜻해지는 인간미 넘치는 소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니 당장 캄보디아의 원더랜드로 떠나고 싶다. 캄보디아의 랜드마크인 앙코르 와트와는 비록 버스로 7시간, 비행기로 1시간이나 떨어진 프롬펜이지만 원더랜드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곳이다. 저자 문은강에서 박지우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가 실제 방문한 캄보디아에서 탄생한 이 소설은 마치 실제 존재하는 원더랜드를 책이 옮겨 놓은 듯 하다.



편견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할 때 의도하지 않더라도 편견이 작용한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발동하고, 무리에 어울리기 위한 내 안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작동한다. 이러한 편견과 가면이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정녕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박지우의 맘도 모른 채 고복희는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간다. 인사도 건네지 않고 쌩하니 지나친다. 걸음도 어찌나 빠른지. 말을 걸 틈도 없다. 정말 생전 처음 보는 캐릭터다. 생긴 것부터 만화 같다. 똑 떨어지는 단발에 눈썹이 진하다. 입가의 주름은 붓펜으로 뚝딱 그려놓은 것 같다. 성격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제껏 경험한 어른들 중 제일 이상하다.

p86

로보트처럼 똑부러지는 무생물같은 캐릭터 고복희는 감정이 메마른 듯 보인다. 이 여인은 어떠한 이유로 이 먼 타국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것인가. 타협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그녀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교민들과의 관계도 그리 원만하지 않으며 그저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는 고복희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을 더해갔다.



고복희를 중심으로 캄보디아 교민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게 된다. 그들의 삶이 어느 하나 순탄하지 않다. 각자 나름의 고충과 힘든 시기가 있고 그 고행은 현재 진행 중이다. 현지인이면서 한국말이 능숙한 브레인이자 원더랜드의 매니저 린, 무계획으로 캄보디아에 한 달 살기로 원더랜드의 첫 장기 손님 박지우, 김인석 아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어눌한 안대용 등 각자의 삶에서 살아 숨쉬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큰 공감을 불러왔다.

고복희에게는 비교적 편안한 노후가 남아 있었다. 정년퇴직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직 후에는 다달이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면 됐다. 오전은 수영장에 가고 오후엔 테니스를 즐기며 주말에는 여유롭게 공원을 산책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쩌다 원더랜드라는 골치 아픈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는가.

p161

왜 그녀는 편안한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캄보디아의 원더랜드에 있는 것일까. 장영수와의 이야기는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훌쩍 떠나자 말했던 장영수의 고백은 늘 무뚝뚝한 고복희의 마음을 녹였다. 이 먼 타지에서 장영수를 추억하며 지내고자 했을 것만 같다.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던 장영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장영수는 미처 오지 못했지만 고복희는 따뜻한 이 곳에서 장영수를 추억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춤을 추지는 않지만 디스코를 좋아하는 고복희는 장영수와의 추억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박지우가 떠난 후 한동안 101호실을 쓰는 손님은 없었다. 그간 손님들을 다른 호실로 안내한 까닭은 그 멍청이가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이토록 오래 원더랜드에 묵었던 손님은 박지우가 처음이었다. 시간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정박했던 공간은 흔적을 남기 마련이니까. 생생한 지문이 마모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충분하지 않지만, 이제 객실 문을 열어야 했다. 내일이면 새로운 손님이 온다.

p252

박지우가 다녀간 원더랜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똑같은 자리에서 우뚝 서있는 원더랜드는 고복희처럼 변함없이 손님들을 대하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고 한다면 박지우가 쓴 블로그를 보고 한국에서 손님들이 찾아 온다는 것? 박지우가 두고 간 원숭이 티가 원더랜의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



화려하거나 멋드러지지는 않지만 원칙을 준수하고 정의가 살아 있는 불의의 사도 고복희의 원더랜드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곳이다. 나도 훌쩍 박지우처럼 캄보디아로 떠나고 싶다. 그리고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편견없는 고복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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