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9초

섬세한 심리 스릴러의 매력이 듬뿍 담겨있다.





주인공 세라 헤이우드 박사는 대학 강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세라의 시각에서 그녀의 심리를 세세하게 다루는 심리 스릴러 <29초>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분명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은 여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라? 책의 작가 'T.M.로건'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전업 작가다.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리얼 라이즈>도 참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기대감도 컸는데 읽으면서 여자 작가로 착각할 정도다.

"내게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이름을. 내가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지. 당신을 위해서."

p135

앨런 러브록은 세라의 상사다. 경험도 많고 능력도 있는 세라는 전임 강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앨런은 세라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으며 호시탐탐 그녀를 넘보고 있다. 가족을 나몰라라 하는 남편은 멀리 떠나있고 두 아이를 책임진 세라는 어떻게서든 전임 강사가 되어야하는데 앨런의 행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앨런이 세라의 크나 큰 걸림돌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망의 상황에서 나에게 커다란 제안이 들어온다. 내가 원한다면 한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겠다는 제안이다. 세라는 앨런이 떠오르지만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사라지게 해준다는 그 말은 그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지 않은가.



"결과에 대한 책임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는, 평생 한 번 있을 기회라는 거지." 로라는 잔에 남은 와인을 마저 마셨다. "야, 알게 뭐야 젠장. 나라면 하겠어."

p189

세라의 상황이 매우 이해가 된다. 앨런만 아니라면 무난하게 전임 강사가 되었을테지만 그의 만행으로 인해 자신의 희망이 무산되고 힘든 나날을 보낸다. 앨런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한 또 다시 1년을 기다린다고 될 것 같지 않다. 제안은 아직 유효하다. 무난한 인생을 살았고 무탈하게 지냈다면 이 제안은 당연히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제안을 무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앨런만 없다면 자신의 인생은 잘 풀릴 것 같다.

그럴 리가 없어. 목까지 차오르는 당혹감에 세라는 휴대폰의 연락처와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하나의 번호, 한 번의 통화. 어제 오후 5시 27분, 29초간. 세라의 발신 통화였다.

p223

한 통의 전화, 그 29초간의 한 통화로 부터 모든 게 변했다. 화가 치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화를 걸었고 이름을 말했다. 29초라는 그 짧은 시간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긴장되며 걱정되며 초초하며 안절부절하는 세라의 두근거림이 내게까지 전해진다. 정말 일처리가 제대로 되는 것일까.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자신과 앨런과의 연결고리는 전혀 드러나지 않겠지.





"만약 이 모든 게 잘못되면, 아빠와 너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이 일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을 반박할 휴대폰 기록도 없을 거야. 혹시 몰라서 선불 전화 두 대의 번호를 가지고 있는 거지만, 일이 어떻게 되든 내일이면 이 전화기 두 대는 템스강으로 가는 거야. 다시는 눈에 띄지 않는 거지."

p430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후반부인 3부부터 매우 휘몰아 친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연거푸 일어나면서 좀처럼 진행 방향이 그려지지 않았다. 독자를 철저하게 속이는 작가의 함정 장치가 매우 세밀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철저하게 속았다. 세라가 중심이 되어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이 땀을 쥐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내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들키면 어떻게 하나.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데.. 하면서 세라를 응원하고 있었다. 마지막 통쾌한 반전의 순간은 쾌감을 가져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으면 바로 작가 소개란을 다시 읽는다. 이 책 역시 그러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이기에 기억해두고 싶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T.M.로건'은 기억해 두고 작가 이름만으로 책을 선택해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리얼 라이즈>와 <29초>에서 이미 그의 능력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