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반스 스타일의 미술 에세이




맨부커상 수상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새로운 책이다. 13권의 장편 소설, 3권의 소설집, 4권의 범죄소설를 썼고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했다. 이제는 미술이다. 그의 미술 에세이 <줄리언 반스의 아주 지적인 미술 산책>은 매우 흡인력 있는 이야기 전개에 놀라웠고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 미술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다가가 읽을 수 있으며 책을 읽고 난 뒤 다양한 이유로 정말 미술관에 가서 직접 그림을 보고 싶어 졌다. 소설인듯 에세이인듯 그의 이야기에 홀렸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걸려 있던 그 누드화의 밋밋함에 대해 내가 느꼈던 바가 옳았다면, 미술의 엄숙함에 대한 나의 추론은 틀렸다.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가끔 더 큰 기능을 한다. 미술은 바로 그 전율이다.

서문 (p18)

미술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것을 '의식적으로 본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관심이 생겨난다. 궁금증이 샘솟는다. 그래야 비로소 본질을 보게 되고 알게 된다. 그래야만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렇기에 미술이 어려운 예술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이며, 아는 만큼 전율을 느끼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그저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지금은 전율을 동반한 작품들로 변모했다.


*****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이 그림에 대한 기반 지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본다. 이 뗏목은 왜 메두사호일까. 무언가 갈망하고 혼란스러운 뗏목의 모습에 기괴함과 공포, 희망이라는 메세지가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뿐이다. 추정을 할 뿐이다.



좌초되는 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매우 절박한 상황이다. 뗏목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어 다리가 바닷물에 잠긴 상황, 부족한 물자로 인해 서로 싸움이 벌어졌다. 수일 동안 먹을 것이 모자라 소변을 마셔야 하는 상황, 모든 먹을 것이 소진되어 결국 인육을 먹어야 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림에서 표현된 상황은 멀리 희망의 배가 나타난 시점이다. 실제 그 시각 멀리 있던 배는 뗏목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들은 수일이 지나서야 살아 돌아왔다. 살아남은 15명 중 5명은 오래 살지 못했다. 이 재난 상황을 제리코는 그림으로 남겼다. 이러한 스토리를 한 장의 그림으로 담아내야 했다. 물에 잠긴 뗏목은 물 위에 있어야만 했고, 굶주리는 상황을 표현해야 했으며, 복잡하고도 다양한 이 상황과 심리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상세한 기반 지식과 배경을 알고 다시 보는 제리코의 그림에서 전율을 느낀다.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기대감이 커진 탓일까. 아니면 실제 그림을 마주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세잔에 대한 내용을 읽고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현대 미술의 시작을 열었으며, 세잔의 작품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찬사들이 오고가는 중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인물이 실제 있는 것처럼, 실제 인물을 직접 만난 듯한 느낌의 밀도, 실물과 대등한 그림을 그렸다는 세잔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봤다. 식견이 부족한 나로서는 좀처럼 어려웠다. 그 전율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여느 평범한 그림으로 다가온다. 직접 이 그림을 본다면 내 생각이 달라질까.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드가, <국화 옆의 여인>

드가에 대해 다양한 평가 존재한다. 드가는 여성 혐오자라는 의견과 여성 관찰자라는 평가 중 어떤 것이 실제 드가에 가까울까. 편견이 작용해서일까. 여자와 꽃다발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드가의 호기로움은 그의 '국화 옆의 여인' 그림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별다르게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여인보다 국화가 돋보이는 독특한 구조는 당시에도 논란이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여자를 싫어했다면 여자 그림을 왜 그렇게 많이 그렸을까. 나도 모르게 그림을 계속 쳐다보게 된다. 국화 한 번, 여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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