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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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빛바랜 추억을 꺼내 감성을 나누다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김종관의 에세이다. 2012년 출간했던 <나는 사라지고 있습니까>의 개정 증보판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는 빛바랜 사진을 꺼내어 과거를 회상하는 아련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저자 김종관의 감수성이 잘 드러나는 글들은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옛 동네를 산책하듯 저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다. 그저 흘러가는 일상의 가락을 잡고 들춰보다 다시 그 일상을 흘려 보낸다. 어쩌면 보잘 것 없는 일상의 특별함이 지금은 더 아름다게 나에게 다가온다.

사람은 어떤 낯선 공간에서도 자기의 기억 속 무언가를 꺼내어 일치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일본의 지하철 안에서 별안간 군대 내무반 냄새가 나는 식으로.

Holding on to Yesterday (p78)

전혀 연관성 없는 낯선 공간과 냄새가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는 기억의 소환을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길을 지나다 문득 깡통을 보고 옛 사랑을 끄집어 내듯, 아침 햇살의 달콤함에 쓰디 쓴 아메리카노를 떠올리 듯, 우리는 닮은 듯 서로 다른 기억 속 무언가를 일치시키며 일상을 흘려 보낸다. 이 세상은 결국 나의 기억 안에서 존재하기에.

완벽하게 좋은 순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스러져가는 환영을 일어버리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일루셔니스트> (p136)

우리에게 언제나 올 수도 있지만 항상 오지는 않는 '완벽하게 좋은 순간'. 일상의 한 자락에서 그 순간이 찾아 올 수도 있고, 여행지에서도 문득 올 수도 있는 그 순간. 그 순간 내 옆에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정말 천운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걸까. 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고 싶다.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보기, 책 읽기, 청소하기 등 일상의 사소한 것들까지도 함께 하고 싶다. 스러져가는 환영이 아닌 내 옆에 만질 수 있는 사랑을 영원토록 나누고 싶다.

난 이곳에서 가끔 라디오를 산다. 오천 원짜리든, 만 원짜리든, 새롭지는 않지만 멋스러운 그냥 싸구려 라디오를 사서는 선심 쓰듯 친구들에게 선물한다. 주파수를 받아내 변변치 못한 스피커로 증폭시키는 작은 라디오를 친구들과 나누어 가지는 것이야말로, 황학동에서 발견하는 진짜 행복이다.

선물 (p152)

이 글을 보고 황학동에 가보고 싶어졌다. 과거의 유물들을 구매하면서 부리는 사치의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지인에게 이런 추억의 선물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추억이 깃든 선물을 하는 입장에서는 여튼 만족스럽다. 상대가 만족스러운 선물을 하기란 참 어렵다. 그렇다면 선물을 하는 입장이라도 좀 만족 스러우면 그리고 행복하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기억을 한다는 게 대수인가 뭐...

우리가 이렇게 다시 한 번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밤을 걷다 (p235)

누군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꿈 속에서나마 만나보는 일. 상대가 기억하는지는 사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비록 이미 죽어 아무도 모른다 할지라도 그저 한 번 만나 같이 있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그 마음.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에 우리는 너무 집착하며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저 그 순간 좋은 것이면 만족스러운 것인데.

*****

카페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옆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에 그저 행복함이 샘솟는다.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 주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보인다.



내 안에서 잠자는 감수성을 끄집어 냈다. 유독 이 책을 읽고 추억이 떠오르고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다독인다. 언제나 나오고 싶던 마음 속 감성이 건들여지는 순간 한껏 풍부해진다. 가을 날 공원에서 읽고 싶고 나누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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